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이상하게 전인지(20·하이트진로·사진)를 보면 짠합니다. 아마 제가 처음 골프 취재를 시작했던 2013 시즌 김효주(19·롯데)와 신인왕 경쟁을 벌이다 부상으로 자진 탈락한 게 마음에 걸리나 봅니다. 게다가 제가 처음 직접 취재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대회였던 2014 하나·외환챔피언십 연장전에서 역전패하는 걸 지켜봤던 것도 영향을 줬을 겁니다.

그래서 2015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개막전에서 또 준우승을 했다니 어딘가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2014 시즌 마지막 대회였던 조선일보 포스코챔피언십 우승자라는 사실을 머리는 기억해도 가슴으로는 잊은 거죠. 전인지는 14일 중국 광둥성 선전 미션힐스 골프장 월드컵코스(파72·6387야드)에서 끝난 현대차 중국여자오픈에서 최종합계 12언더파 204타로 김효주에 2타차 준우승에 그쳤습니다.

전인지는 이날 최종 라운드 경기에서 8번홀(파3)부터 12번홀(파4)까지 다섯 홀 연속으로 버디를 낚으며 김효주를 위협했습니다. 13번홀에서 김효주가 보기를 적어낸 사이 14번홀(파4)에서 버디를 적어내며 공동 1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6번홀(파5)에서 공을 벙커에 빠트렸고, 18번홀(파4)도 보기로 마무리하며 끝내 경기를 뒤집지는 못했습니다.


고향 충남 서산 주름잡던 수학 영재


KLPGA 홈페이지에서 정인지를 찾아 보면 자기소개 마지막 줄이 특이합니다. "학창시절에는 개인적으로 수학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운동 선수가 일반인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수학을 좋아했다니요. 그런데 충남 서산이 고향인 전인지는 실제로 대진초 재학시절 전국 단위 수학 경시 대회를 휩쓸 정도로 뛰어난 '수학 영재'였습니다. 그러다 골프채를 잡으면서 인생이 바뀌었죠.

아버지 전종진 씨(55)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골프채를 잡았는데 그해 수학경시대회에서 덜컥 대상을 받아온 거예요. 그래도 저는 골프를 시키고 싶어 했는데 학교 선생님은 공부를 하는 게 낫겠다고 하더라고요. 선생님과 말다툼도 여러 번 한 끝에 겨우 골프를 시킬 수 있었습니다"라면서 "처음 클럽 쥐어주면서 연습 한번 해보라고 했는데. 세 시간 후에 애를 보니까 손이 다 짓물러 터졌어요. 안 아프냐고 물으니 안 아프대요. 재미있냐니까 재미있대요. 그래서 '아, 근성이 있다'고 생각했죠"하고 회상했습니다.

전인지는 "수학하고 골프 중 어떤 게 더 쉽냐고 물으신다면 주저할 것도 없이 수학"이라면서 "수학은 공식이 있어서 계산만 잘하면 답이 나와요. 반면 골프는 언제 어디서 해야 할지 그때그때 달라요. 그래서 골프는 감각이 더 중요해요"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수학 공부를 하다 보면 모르는 문제를 내가 해냈다는 쾌감이 있잖아요. 골프에서도 잘 안됐을 때 끝까지 연습해서 내 걸로 만들었다는 그런 쾌감이 있어요"라면서 웃었습니다.


그녀가 '덤보' 별명 얻은 이유


지금은 프로 골프 선수가 됐지만 수학적 탐구심은 여전합니다. 전인지는 "저는 호기심이 왕성해요. 안 먹어본 음식은 다 먹어 봐야 하고, 안 해봤던 게 있으면 그걸 꼭 다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거든요"라면서 "그래서 주위에서 '팔랑귀'라고 놀릴 정도로 남의 말을 유심히 듣는 편이죠. 디즈니 만화 캐릭터 덤보(Dumbo)는 큰 귀로 날아다니잖아요. 그래서 덤보라는 별명이 붙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박원 코치는 "(전)인지는 누가 어떤 말을 하면 그걸 듣고 한참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서 질문을 퍼부어요.궁금한 걸 항상 명쾌하게 정리해줘야 하죠. 머릿속에서 정리가 끝나면 자신 생각에 절대 흔들림이 없는 아이가 인지에요. 그 생각이 강한 신념으로 변해,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스타일입니다. 마치 코끼리 덤보처럼 말이죠"하고 거들었습니다.

이렇게 우직한 성격은 위기를 헤쳐 나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전인지는 "저는 힘들 때면 '투명한 버블(bubble) 속에 갇혀있다'고 생각을 해요. 외부와 완전히 단절한 채 직면한 문제에만 집중하려고 하는 거죠.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는 있지만 거기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어떻게 하면 그 문제를 즐겁고 신나게 풀어갈 수 있을까' 고민을 하는 편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당장 LPGA 진출보다 꾸준히 성장하는 게 목표"


전인지는 조선일보 포스코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학교(고려대)에 다니고 기말고사를 보면서 정신 없이 시간을 보내느라 현대차 중국여자오픈 대비를 충분히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라이벌 선수들이 내년 시즌 대거 LPGA 무대로 진출하는데 퀄리파잉스쿨(Q스쿨)에도 나가지 않은 건 다소 뜻밖의 선택.

전인지는 "이번 대회뿐 아니라 새 시즌 내내 결과보다는 과정을 염두에 두고 꾸준하게 성장하는 게 목표"라면서 "최종 Q스쿨에만 가면 됐지만(LPGA 투어 출전 시드를 받을 수 있었지만) 골프하면서 스트레스 해소하려고 친구들 만나고, 학교 가는 것도 저에겐 중요한 일이에요. 그런데 외국에서 투어를 뛰면 학업을 병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졸업을 하고 가도 된다고 결론 내렸어요. 당분한 국내 투어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 뒤 "내년에도 타이틀 획득에 대한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잖아요. 집중해서 경기를 하다 보면 타이틀은 따라오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라면서 "제 목표를 한 번도 밝힌 적이 없어요. 마음속에 새기고 저만 간직하고 있다가 이루게 되면 말씀드릴 예정이에요. 매해 꾸준히 성정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은 게 욕심"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본인 말처럼 꾸준히 늘 조금씩 더 성장하는 전인지를 보고 싶습니다. 그는 "지난해 어깨 부상을 당한 뒤로 드라이브 비거리가 많이 줄었어요. 무리하면 스윙이 망가져서 부드럽게 쳐야 하니까 아쉬울 때도 있죠. 겨울 훈련 때는 비거리를 늘리는데 더 집중할 계획입니다"하고 오프 시즌 일정을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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