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에 의해 우리가 된다. 


이것은 인간의 부조리한 행동에 관한 귀납적인 설명이다. 즉 한 인물의 성격이 미리 정해져 있어 그 성격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는 행동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성격을 알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과연 금복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기적 같은 행운이 찾아온 것일까? 아니면, 그런 행운이 찾아왔기 때문에 그녀가 주인공이 된 것일까?'와 마찬가지로 이야기 바깥에 존재하는 불경스런 질문이며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것처럼 까다로운 질문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적어도 금복의 행동을 설명할 수는 있게 되었다. 그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금복은 늪지대에 벽돌공장을 지음으로써 무모하고 어리석은 여자가 되었다. 


천명관 소설 '고래'을 읽다가 한국 야구 대표 선수들은 과연 무얼하고 있을까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 삿포로(札幌)에서 대만 타이베이(臺北)로 향하는 에바항공 비행기 안이었습니다. 비행기 안에는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 12 한국 대표 선수들이 함께 타고 있었습니다.


진짜 궁금했던 건 과연 책을 읽는 선수가 있을까 했던 것. 선배 기자 분들께 많이 들었거든요. '대표팀 비행기 안에서 독서하던 친구들이 나중에 보면 좋은 지도자가 돼 있더라.'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무도 없었습니다. 적어도 이코노미석에서, 제가 관찰하고 있는 동안, 종이 책을 읽고 있는 선수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예상하시는 것처럼 모두들 스마트폰 또는 태블릿PC 화면을 지켜보고 있기 바빴습니다.


책을 읽는 선수가 보고 싶었던 또 한 가지는 이유는 일본 대표팀 오타니 쇼헤이(21·大谷翔平) 때문. 그가 하나마키히가시(花卷東) 고교 재학 때 쓴 '모쿠효닷세이요시(目標達成用紙)'에 '책 읽기(本を讀む)'가 들어 있었습니다. 물론 오타니하고 같은 비행기를 탈 일이 없어 실제로 그가 실제로 책을 열심히 읽는지는 확인하기 어려웠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재미있는 건 그가 '책 읽기'라는 목표를 적어 놓은 칸 제목이 운(運)이었다는 것. 그는 자신에게 행운이 따라올 수 있도록 하는 요소로 독서 이외에도 △인사(あいさつ) 잘하기 △쓰레기 줍기(ゴミ拾い) △방 청소(部屋そうじ) △도구 소중히 사용하기(道具を大切に使う) △심판을 대하는 태도(審判さんへの態度) 공손하게 하기 △긍정적인 마인드(プラス思考) △응원 받을 만한 사람 되기(應援される人間になる) 등 일곱 가지를 꼽았습니다.


한국 언론에서도 소개해 널리 퍼진 이 '목표달성표'는 사실 10대 소년이던 오타니 혼자 만든 건 아닙니다. 운이라는 요소를 넣은 게 어쩌면 어른 손을 탔다는 힌트겠죠. 만약 정말 혼자서 이렇게 생각한 10대 소년이 있다면 당연히 더욱 칭찬해줘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말입니다. 


이 용지는 2001년 코치로 이 학교 야구부와 인연을 맺은 사사키 히로시(佐佐木洋) 감독(39·사진) 작품. 사사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제게도 프로야구 선수라는 꿈이 있었지만 꿈과 목표 그리고 결의를 구분하는 법을 몰라 꿈을 이루는 비결도 알지 못했다"면서 "예를 들어 '살이 많이 쪘다. 빼야겠다'고 생각하는 건 목표가 아니라 결의다. '오늘은 몇 칼로리만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사키 감독은 "사실 나부터 시속 160㎞를 던져본 적이 없으니 오타니에게 어떻게 하면 그렇게 던질 수 있는지 가르칠 수 없었다. 하지만 지도자가 가르쳐야 할 건 타격이나 투구가 아니라 생각하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신체 능력을 잃을 수는 있어도 생각하는 법을 잃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이건 덧셈, 곱셉보다 초등학교에서 더 중요하게 가르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한국에도 이런 학교가 있(었)습니다. 서울 봉래초교에서 비슷한 작업을 하고 있(었)거든요. 교육팀 기자 시절 2009년 이 학교 졸업식을 찾았을 때 4년 동안 졸업생이 꿈을 적어 만든 타일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 학교 6학년 학생들은 졸업 전 '100일간의 행복여행'이라는 책을 받아 빈 칸을 적으며 자기 꿈을 구체화합니다. 그때 기사를 쓰면서 미국 예일대 사례를 인용했습니다.


1953년 예일대는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자기 인생에 얼마나 확실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조사했다. 27%는 '아직 아무 목표가 없다'고 했고, 60%는 '뚜렷하지는 않지만 막연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10%는 '구체적인 목표를 항상 생각하고는 있지만 글로 남긴 적은 없다'고 했다. '꿈을 구체적인 글로 적어 간직하고 있다'고 답한 학생은 겨우 3%였다. 예일대는 20년 뒤 졸업생들을 추적했다. 구체적인 꿈을 글로 적은 학생 3%는 엄청난 재산가가 돼 있었고, 이 3%의 재산 총합이 나머지 97%의 재산을 합친 것보다 많았다.


나중에 니컬러스 크리스토프가 뉴욕타임스(NYT)에 쓴 칼럼 '교사의 가치(The Value of Teachers)'를 보고 봉래초교가 떠올랐습니다. 물론 사사키 감독 역시 이 칼럼을 떠오르게 만드는 인물입니다. (사사키 감독은 사회 선생님이기도 합니다.) 크리스토프는 이 칼럼에 "(초등학교 4학년 때) 좋은 교사를 만난 게 평생 학생에게 (금전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컬럼비아대, 하버드대 공동 연구 결과를 소개했습니다. 굳이 돈을 더 벌고 덜 버는 걸 떠나 '꿈을 구체적인 글로 적어보기' 같은 사소한 차이가 학생 인생에 큰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겠죠?


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에 의해 우리가 되는 법이니까 누군가는 이렇게 꿈과 목표를 적어 보는 것만으로 정말 그 꿈이 될 겁니다. 아래 오타니가 썼던 것하고 똑같은 용지를 PDF 파일로 첨부합니다.

 

goal.pdf


물론 이번에도 누군가는 내려받아 쓰고 그 꿈을 이루고, 누군가는 내려받기만 하고, 누구는 내려받지도 않는 걸로 그 누군가가 되겠지만요. 아, 선수 시절 책을 열심히 읽었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전해 들은 건 류중일 현 삼성 감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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