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페이스북에 재미있는 동영상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얼핏 보면 그냥 피겨스케이팅에서 나온 멋진 장면만 편집해 올린 하이트라이트 영상입니다. 제가 재미있다는 표현을 쓴 건 맨 처음 등장하는 백플립(back flip·위 GIF) 기술 때문입니다.


이 동영상 속에서 비발디 '사계' 가운데 겨울에 맞춰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선수는 수리야 보날리(44·프랑스). 보날리는 1988년 나가노(長野) 겨울올림픽 때 저 말도 안 되는 기술을 구사한 뒤 점수도 확인하지 않고 (선수가 연기 후 채점 결과를 기다리는) 키스앤드크라이존을 떠났습니다. 백플립은 국제빙상연맹(ISU)에서 금지하고 있던 기술이었습니다. 그러니 저 동영상이 재미있다는 겁니다.


보날리라고 저 기술이 금지됐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아니,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백플립을 실전에서 처음 사용한 선수가 바로 보날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ISU는 선수 보호를 이유로 백플립을 금지시켰습니다. 보날리는 자기가 백인이었으면 이 기술이 금지당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보날리의 불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보날리는 다섯 번 유럽 챔피언에 올랐지만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은메달만 세 개를 차지했습니다. 보날리는 이 역시 자신이 흑인이라 채점 과정에서 차별대우를 받았다고 믿었습니다. 두 번째로 준우승한 1994년 지바(千葉) 세계선수권 때는 시상대에 오르는 것조차 거부했습니다. 관중 야유에 떠밀려 겨우 시상대에 올랐지만 메달을 받자마자 풀어버렸습니다.



나가노 대회는 보날리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올림픽이었습니다. 보날리는 첫날 쇼트프로그램을 마친 뒤 흡족한 표정으로 키스앤드크라이존에 앉았지만 이번에도 영국 심판 점수가 많이 짰습니다. 보날리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키스앤드크라이존을 나섰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이튿날 프리스케이팅 연기에서 백플립을 구사한 건 '엿먹어, ISU 놈들아'하는 항의표시였던 것. 그는 대회를 마친 뒤 곧바로 프로 전향을 선언했습니다.


보날리 이후로도 흑인 피겨스케이팅 선수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피겨스케이팅은 백인이 흑인보다 동양인을 덜 무시하는 몇 안 되는 분야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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