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2023 한국 프로야구 챔피언 LG 트윈스. 연합뉴스

LG가 1994년 이후 29년 만에 한국 프로야구 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LG는 1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안방 경기로 열린 2023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KT를 6-2로 물리쳤습니다.

 

LG는 이날 승리로 시리즈 전적 4승 1패를 기록하면서 5경기 만에 한국시리즈를 마무리했습니다.

 

LG는 그러면서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한 지 41일 만에 통합 챔피언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2023 한국시리즈 마지막 플레이. TV 중계화면 캡처

거의 30년 만에 한국 챔피언이 됐지만 LG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모드입니다.

 

염경엽(55) LG 감독은 "이제 시작이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달리겠다"고 말했습니다.

 

LG 주장 오지환(33)도 "우리는 분명히 왕조 시기를 누릴 것"이라고 거들었습니다.

 

오지환은 이날 기자단 투표에서 93표 중 80표(86.0%)를 받아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로 뽑혔습니다.

 

2023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LG 선수단. 동아일보DB

스포츠에서 왕조(dynasty)라는 건 관용적으로 쓰는 말이라 정확한 정의가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보통은 쓰리핏(three-peat) 그러니까 3년 연속으로 챔피언결정전에서 승리했을 때 왕조라는 표현을 씁니다.

 

프로야구에서 이에 해당하는 팀은 1986~1989년 한국시리즈 4연패에 성공한 해태(현 KIA)와 2011~2014년 같은 기록을 남긴 삼성밖에 없습니다.

 

삼성 왕조 이후 9년 동안에는 3연패는 물론 2연패를 차지하는 팀을 만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왕조가 사라진 시대

한국시리즈에서 2연패를 차지한 건 2015, 2016년 챔피언 두산이 마지막입니다.

 

이후 2017년부터 올해까지 7년 동안 해마다 한국시리즈 챔피언이 바뀌었습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전까지는 1998~2003년까지 6년간 해마다 챔피언이 바뀐 게 최장 기록이었습니다.

 

▌2015년 이후 한국시리즈 챔피언과 언론이 붙여준 리더십 별명
 연도  우승팀  감독  리더십
 2015  두산  김태형  뚝심 리더십
 2016  두산  김태형  뚝심 리더십
 2017  KIA  김기태  동행 리더십
 2018  SK  힐만  존중 리더십
 2019  두산  김태형  뚝심 리더십
 2020  NC  이동욱  형님 리더십
 2021  KT  이강철  경청 리더십
 2022  SSG  김원형  준비된 리더십

 

해마다 한국시리즈가 끝나면 언론 매체에서는 '이 감독 리더십이 이렇게 뛰어나다'고 상찬(賞讚)하기 바빴지만 유효 기간이 딱 1년이었던 겁니다.

 

팀을 한국시리즈 챔피언으로 이끌었다는 건 감독으로 정점을 찍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로 내리막길을 걷는 게 아주 이상한 일이라고 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시리즈 우승 팀 사령탑 가운데 여전히 그 팀 지휘봉을 잡고 있는 건 2021년 챔피언 KT 이강철(57) 감독뿐입니다.

 

▌피타고라스 기대 승률 .600 이상 팀 감독 경질 사례
 연도  구단  기대 승률  전임  후임
 2019  키움  .644  장정석  손혁
 2020  LG  .642  류지현  염경엽
 1986  삼성  .611  김영덕  박영길

 

피타고라스 승률을 기준으로 하면 팀 전력을 가장 탄탄하게 구축한 상태에서 감독석을 비워야 했던 건 2019년 키움(.644) 사령탑이던 장정석(50) 감독이었습니다.

 

장 감독이 자리를 내놓은 건 당시 구단 내 권력 변동 때문이었지 뒷돈 요구나 지휘력에 물음표가 따라다녔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다음이 바로 지난해 LG(.642) 지휘봉을 잡았던 류지현(52) 감독입니다.

 

염 감독으로서는 한국시리즈 정상을 차지했던 2018년 SK(.564)보다 더 좋은 팀을 물려받은 셈입니다.

 

우승은 정점

프로야구가 10개 구단 체제를 갖춘 2015년부터 한국시리즈 우승 이듬해 피타고라스 승률이 올라간 건 2015년 두산과 2019년 SK뿐입니다.

 

두 팀은 정규리그 1위 팀을 꺾고 우승했다는 그러니까 '업셋'에 성공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반면 통합 우승 팀은, 이미 전력이 정점을 찍은 이후라, 피타고라스 승률이 내려오는 게 일반적입니다.

 

2020년 NC도, 올해 LG와 똑같이, 피타고라스 승률 .608을 기록했지만 2021년 .503으로 내려왔습니다.

 

어리고 또 어렸던 팀 두산

2015년부터 7년 연속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두산은 왕조는 몰라도 '명가'로는 충분히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2015년 두산은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내국인 선수 평균 나이(27.7세)가 가장 적은 팀이었습니다.

 

이듬해에는 홍성흔(당시 41)이 빠지면서 표준 편차(3.1세)도 최소치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두산은 '유망주 집단' 그 자체였던 셈입니다.

 

2023 한국시리즈 우승 확정 후 마운드에 모여 기쁨을 나누는 LG 선수단. LG 제공

올해 LG는 평균 나이(29.1세)는 최저 4위, 표준 편차(4.7세)는 최고 3위 팀입니다.

 

올 시즌에 한정하면 신구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는 뜻이지만 왕조로 가는 길에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대목입니다.

 

염 감독이 "매년 어린 선수들을 한두 명씩 더 키워낸다면 지속적인 강팀으로갈 수 있다"고 강조한 것 역시 이를 알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LG는 이제 젊은 선수를 가장 잘 키우는 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이 목표가 아주 불가능해 보이지도 않습니다.

 

2023 한국시리즈 정상을 차지한 뒤 눈 스프레이를 뿌리며 기뻐하는 LG 선수단. 뉴스1

종합하자면 2010년대 중후반 이후 한국 프로야구는 춘추전국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혼란기를 틈타 제9 구단 NC와 제10 구단 KT까지 모두 우승을 경험했습니다.

 

29년 만에 우승 한을 푼 LG가 과연 앞으로 천하통일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제 응원팀) 롯데는 도대체 언제쯤 되어야 우승이라는 걸 해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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