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하 주연의 드라마 <M>이 전국을 강타하던 1994년 여름, 그 해 여름은 공중전화 사용을 놓고 빚어진 사소한 다툼 때문에 살인사건이 벌어질 정도로 불쾌지수가 높았다. 사상 최고의 더위, 불볕, 그리고 짜증.
이 더위를 뚫고 인천의 한 중학교 운동장에서 키 작은 꼬마가 부지런히 언더핸드 스로우로 공을 던지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초등학생 아이가 장난친다고 생각할 정도로 꼬마는 너무도 형편없이 작았다. 하지만 이 꼬마는 중학교 3학년짜리 야구부 선수였다.
작은 체구 때문에 이 꼬마가 투수로 성공하리라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게 사실. 그렇지만 고등학생이 된 이후 꼬마는 더 이상 꼬마가 아니었다. 꼬마는 오버핸드로도 공을 시원스레 뿌릴 수 있는 투수가 되었다.
이후 꼬마는 야구 명문 인천고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이제 사람들은 안경잡이 꼬마 대신 인천고 김수경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높은 타점에서 날카로운 슬라이더를 던지는 투수 김수경으로 말이다.
김수경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진가를 드러낸 건 '96년 봉황기 준결승전. 현재 시애틀 매리너스 소속의 백차승과 불꽃 튀는 투수전을 벌였다. 결국 인천고 김대영이 끝내기 홈런을 터뜨렸고, 김수경은 당시 최고 투수 백차승을 꺾는 주인공이 됐다.
비록 정대현의 군상상고에 막혀 인천고는 봉황기 우승에 실패하고 말았지만, 현대 유니콘스에게 김수경의 발굴은 보물 발견 그 자체였다. 이제 막 태평양을 인수한 현대에 무엇보다 필요했던 것은 위재영 같은 프랜차이즈 유망주였기 때문이다. 결국 고교 졸업과 동시에 김수경은 2억 1천만원의 계약금을 받고 현대와 계약하게 된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프로 새내기 김수경은 '98 시즌 총 32 게임에 나서 160이닝을 던지며 12승 4패 2세이브를 기록했다. 탈삼진은 168개. 신인왕이 김수경에게 돌아갔음은 물론이다.
김수경의 맹활약은 포스트시즌에서도 계속됐다. 인천 야구에 첫 번째 한국 시리즈 트로피를 안긴 '98 한국 시리즈 6차전. 정민태의 환호와 이숭용의 포구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 된 이 경기의 승리 투수가 바로 선발 김수경이었다.
입단 첫해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은 얻은 김수경, 소포모어 징크스 역시 그에게는 남의 일이었다. 4.14의 평균 자책점은 만족스러운 수준이 못 되지만 '99 시즌은 유례없는 타고투저 시즌이었다. 김수경은 184⅔이닝을 던져 184개의 탈삼진을 솎아 내며 이 부분 1위에 우뚝 섰다.
그리고 마침내 2000 시즌, 김수경은 생애 최고의 한 시즌을 맞이한다. 195 이닝을 던져 방어율 3.74, 탈삼진 172개. 이해 김수경이 거둔 18승은 같은 팀 소속 정민태, 임선동과 같은 공동 1위 기록이었다. 그런데 김재박 감독은 한국 시리즈 1차전 선발로 김수경을 내세운다. 이 셋 가운데 가장 믿을 만한 투수가 김수경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 해 김수경은 시드니 올림픽 대표로 뽑히는 영광을 누리기도 한다. 결과는 동메달. 그렇게 만 21세의 김수경은 프로 무대에서 이미 40승을 거둔 투수가 됐고, 병역 문제까지 해결하면서 승수 쌓기에 본격적인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됐다. 차세대 국가 대표 우완 에이스의 희망이 김수경에게서 느껴졌다.
하지만 3년 평균 180이닝 정도를 던진 것은 확실히 무리였다. 특히 축족에 무리가 가는 투구 폼을 가진 투수라면 더더욱 그랬다. 2001 시즌 김수경은 데뷔 이후 처음으로 100이닝 투구에 실패했고, 연속 10승 기록 역시 끊기고 말았다. 이후 3년간 솔리드한 선발 투수로 활약한 건 사실이지만 차세대 국가 대표 우완 에이스의 이미지는 퇴색되어 가고 있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역시 탈삼진. 데뷔 이후 3년간 김수경은 9이닝당 평균 8.7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던 삼진 머신이었다. 하지만 2001년부터 이후 3년간 이 기록은 6.71로 나빠졌다. 제구도 문제였지만, 구위 자체가 나빠진 것이다.
결국 구위 향상을 위해 투구 폼에 손을 댔지만 찾아오는 건 부상뿐이었다. 1군 마운드에서 공을 뿌릴 때도 예전 같은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모양새. 어느 팀엔가 김수경은 피해가는 투구를 하기에 급급한 투수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김수경이라는 이름은 '믿음'이라는 낱말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지난 겨울 FA 자격을 얻었지만 달리 오라는 팀도 없었다. 현대는 김수경에게 '1+2 계약'을 제시하며 그를 눌러 앉혔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 눈치였다. 무더위 속에서 공을 던지던 꼬마는 어느 덧 새신랑이 됐지만, 어쩌면 그에게는 그 해의 무더위보다 지난 겨울의 추위가 더욱 답답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본인 역시 '2군에 내려가지 않는 게 목표'였다고 밝힐 정도로 김수경의 이번 시즌 전망도 그리 밝은 편은 못 됐다. 실책이 끼긴 했지만 첫 등판에서 4이닝 6실점으로 무너진 투수라면 누구라도 기대를 하긴 어려운 일이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4월 20일 김수경은 7이닝 동안 탈삼진 11개를 기록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유독 선발 투수들에게 승운이 따르지 않는 게 올해 현대의 모습. 하지만 김수경은 차근차근 승수를 쌓아나갔다. 행운과 함께 '믿음'이라는 낱말이 다시 김수경을 따라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 2일 롯데戰에서 시즌 10승 달성에 성공했다. 2004 시즌 이후 3년만의 10승, 프로 통산 100번째 승리였다. 김수경이 역대 18번째 100승 투수가 되는 순간, 모처럼 김수경의 환한 웃음이 카메라에 잡혔다.
다승왕 트리오가 해체되고 현대가 자랑하는 신인왕 출신들이 모두 어디론가 숨어버린 현재, '투수왕국'이던 현대 유니콘스의 옛 영화(榮華)를 재현하고 있는 선수는 김수경뿐이다. 그래서 김수경의 미소가 현대 팬들에게는 각별한 의미로 와닿았을지도 모르겠다.
김수경은 올해로 프로 10년차,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서른이 된다. 야구 속담에 투수가 어깨에서 힘을 빼는 데만 10년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남자에게 서른이란 확실히 가슴에 책임감이 느껴지는 나이다. 그런 의미에서 통산 100승은 20대 김수경의 마침표였다.
과연 김수경의 30대는 우리에게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물론 이 대답은 신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김수경을 응원해 온 한 사람으로서, 그의 30대에는 더 크고 빛나는 마침표가 찍히길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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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서 갈아탄 SK팬이지만 현대선수들의 소식엔 여전히 관심을 갖게 되는군요.
올 시즌 시작전 김수경 선수를 잡자고 구단 팬포럼에 글 썼다가 아주 복날 개 맞듯이 맞았던
기억이 머리를 문득 스쳐가네요...
어쨌든...김수경선수 100승 정말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김수경 선수는 끝까지 현대에 남았으면 합니다 ^^
물론 본인이 가고 싶다면 별 수 없지만 -_-;
어쩌다 인천을 떠나서 참 ㅡㅡ;
저도 삼성에서 배영수가 빠진 선발진을 위해 은근히 김수경 선수 잡기를 바랬는데^^
암튼 올해 옵션도 걸려있는 걸로 알고있는데 좋은 활약 보여주고 있어서 기분이 좋네요.
은근히 김수경 선수를 노리는 분들이 꽤 있었군요
역시 예전의 명성 때문인가요? ㅎㅎ
그나저나 진웅이는?
같은 소재의 글이라도 누가 쓰는지에 따라 깊이가 이렇게 달라지는군요. 잘 봤습니다. :)
그럼요. 압사마 님의 글이 훨씬 깊이가 있죠 -_-)b
저도 야구 끊었다가 2003년 시즌때 분위기도 모르고
SK게시판에 정민태 영입하자고 했다가 인터넷에서 다구리란 말이 어떻게 쓰이는지 절감했죠.
당시 팀을 이끌만한 노련한 에이스가 없던 SK에 딱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민태에 대한 SK팬들의 여론은 이미 확립되어 다른 방향은 생각할 수 없던 싯점이란걸
3년간 야구를 외면했던 저는 몰랐던거죠..
비록 당시 한국시리즈때 이후로 쭉 SK를 응원하게 되긴했지만,
양구단 사이에 얽힌 여러 인천선수들....
김경기 정민태 김수경 위재영...
인천출신은 아니지만 박재홍 전준호 이숭용 조웅천...
또 인천과 현대를 모두 떠난 박진만 권준헌 이재주 최원호...
장명부 양승관 박정현 최창호 정명원 김동기 김홍집 등등 은퇴한 영웅들
최근에 팀을 바꾼 조중근 채종국 까지..
양구단의 팬들은
이런 선수들이 기억속에 존재하는 한
프로야구를 볼 때면 언제나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아쉽고 아련한 마음을 떨치기 힘들것 같습니다.
앞으로 현대문제가 어떻게 해결될지는 모르나
어떤식으로든 간에 완전히 마무리가 되고 난 연후엔
그간 앙숙이 되어버린 양구단과 양구단의 팬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같이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분위기가
더욱더 많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네요..
저도 문제가 긍정적으로 해결 되어서
추억을 따뜻하게 공유하는 사이가 되길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그런데 이미 뭐랄까요? ㅡㅡ;
극단적인 표현을 하자면
'구멍동서'가 돼 버린 듯한 느낌이라
너무 안타깝고 그런 날이 요원해 보이기만 합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