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야구는 왼손잡이를 위한 운동이다.


강속구 '왼손 투수'는 지옥에 가서라도 데려와야 한다. 또 공식적으로 왼손타자는 1루와 가까운 쪽 타석에 들어선다.


물론 1루수를 제외한 내야는 오른손잡이 세상이다. 주자들이 반시계방향으로 진루를 하기 때문에 왼손잡이들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럼 이들과 반대방향을 보고 서 있는 포수는 오히려 왼손잡이가 유리한 게 아닐까?



_3루에 공을 못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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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잡이 포수가 없는 이유로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은 3루 송구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2007 시즌 프로야구에서 3루 도루 시도는 모두 112번밖에 되지 않는다. 달리 말해 각 팀이 9경기에 한번 꼴로 3루 도루를 시도한다는 이야기다.


2루로 뛰든 3루로 뛰든 주자는 27.43m만 뛰면 된다. 포수는 2루 도루를 막으려면 38.82m를 던져야 한다.


오른손잡이 포수가 도루를 억제하고 있다기보다 이론적으로 3루 도루가 어렵기 때문에 시도 자체가 적은 것이다.


만약 2루 주자가 1루로 '도루'를 할 수 있다면 이 문제에 대한 직접 비교가 가능하겠지만 야구 규칙은 이를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3루 송구 때문에 왼손잡이 포수가 없다는 주장은 별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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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2루 송구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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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루 송구 역시 문제가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른손잡이 타자가 더 많기 때문에 왼손잡이 포수는 송구에 방해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지난 시즌 오른손 타자 타석 점유율은 67.5%였다.


또 오른손 타자가 타석에 있을 때 2루 도루 저지율은 34.7%, 왼손 타자는 30.6%였다. 4%p 정도 차이는 한 시즌으로 환산할 때 팀당 3개 정도 차이밖에 안 된다.


그런데 왼손 투수들 2루 도루 저지율은 38.0%인데 비해 오른손 투수는 31.3%밖에 되지 않는다.


또 2루 도루가 가능한 상황에서 주자들은 좌투수를 상대로 10.1번, 우투수를 상대로는 9.5번당 한 명 꼴로 도루를 시도했다. 역시 1시즌으로 환산하면 팀당 8개 정도 차이다.


타석 방향보다 투수가 어느 쪽을 보고 서느냐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게다가 왼손잡이 포수는 1루 견제가 더 쉽기 때문에 타석 방향이 그리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슬라이스' 현상 때문에 왼손잡이 포수는 2루 주자를 잡는데 애를 먹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기는 하다.


도루가 아무리 '찰나 싸움'이라지만 농담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시지 않는지? 오른손 포수 '제구력'이 천차만별인 것처럼 왼손 포수 역시 당연히 그렇지 않을까?


사료(史料) 역시 송구 문제 때문에 왼손잡이 포수가 없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아래는 메이저리그에서 유일하게 1000게임 이상 왼손 포수로 출전한 잭 클레먼츠(Jack Clements)에 대한 당시 기사의 일부다. (당시는 도루, 도루자가 공식 기록으로 집계되지 않았다.)


송구가 워낙 뛰어나 주자들은 도루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안타가 계속 터지거나 상대가 실책을 저지르지 않는 이상 주자들은 자기 베이스에 꽁꽁 묶여 있어야 했다. (his fine throwing held runners so closely to their bases, that they could not get around unless by consecutive hitting or through errors by the fielders.) - 1890, Philadelphia Ledger

2루 송구 때문에 왼손잡이 포수가 없다는 것 역시 그리 납득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_블로킹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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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레이트 블로킹 때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왼발로 3루 파울라인을 밟고 있는 상황에서 몸을 반 바퀴 돌려 태그를 하는 게 쉽지 않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2007년 홈플레이트에서 태그로 상대팀 주자를 죽인 건 총 37번, 팀당 4.6번 꼴이었다.


크다면 큰 차이지만 n-2-3 병살을 시도할 때 왼손 포수가 유리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상쇄할 만한 수준이다.



_왼손 포수가 없는 건 왼손 투수 때문?


그렇다면 도대체 왼손 포수가 없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왼손 투수다.


지옥에 가서라도 데려와야 하는 왼손 투수가 18.44m 앞에 앉아 있는데 지도자들이 가만 둘 이유가 있겠는가. 포수 역시 강견으로 따지자면 투수 못지않은 존재다.


또 투수들이 어색해하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사실 미트를 오른손에 끼우고 있으면 오른손 투수 변화구를 받기에 더 유리하다. 빠져 나가는 공을 '쫓아가서' 잡는 대신 '마중 나오듯이'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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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투수들은 왼손잡이 포수를 상대로 공을 던진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예민함으로 따지자면 생리증후군에 걸린 여자보다 더 까칠한 투수들에게 이 어색함을 굳이 강요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왼손 포수가 없는 이유는 왼손 포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밖에 ;


• 메이저리그에서 단 한 게임이라도 뛰었던 왼손 포수는 모두 33명이다. 이 가운데 단 한 경기에서 마스크를 썼던 선수는 10명이다. 100경기 이상 출전한 왼손 포수는 5명, 1000 경기 이상은 위에 소개된 잭 클레먼츠뿐이다.


• 어린 시절 베이브 루스도 곧잘 포수를 봤다. 그때나 지금이나 왼손 포수 미트가 없었기 때문에 루스는 왼손으로 공을 받은 뒤 미트를 빼고 왼손으로 공을 던졌다.

• 인터넷 서핑을 하다 보면 곧잘 왼손 포수들이 마이너리그에 곧잘 등장하다가 빅리그에서 몇 게임 못 뛰고 포지션을 바꾼 것처럼 소개되고는 한다. 하지만 데일 롱(Dale Long)이나 마이크 스콰이어스(Mike Squires), 가장 최근(1989년)에 오른손으로 공을 받았던 베니 디스테파노(Benny DiStefano) 모두 커리어 중간에 '땜빵용'으로 포수 마스크를 썼던 것뿐이다.


그러니 지섭아, 희망을 잃지 말거랍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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