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별보며한잔 님 자료를 보시면, 투구 이닝 분담율이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내용 가운데 하나입니다. 국내 리그 형편상, 선발진과 중간 계투진은 몇몇 불펜 에이스급을 빼놓고는 질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안정적이고 예정된, 즉 예측가능한 필승조 투입용 투수 교체가 아니라 선발 투수 혹은 구원으로 올라간 투수의 갑작스런 난조로 인한 조기강판 등은 감독의 경기 운영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될 게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원시적인 야구를 좋아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선발 투수의 완투가 제게는 가장 의미가 크고, 그 다음은 선발-마무리로 이어지는 라인. 중간에 필승 셋업맨 한 명 정도도 괜찮겠죠. 자주 원포인트 릴리프를 투입해서 풀어가는 경기는, 감독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하더라도,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경기 스타일입니다. 선발 투수는 등판 간격을 확실하게 지켜주는 대신, 혹사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능 한 오래 끌고 가는 게 좋다는 게 저의 기본적인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건 이상이고, 현실은 다르죠. ^^ 그래서 제가 이닝 이터들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MLB 워싱턴의 리반 에르난데스 선수는 그렇게 어마어마한 이닝을 먹어준다는 점만으로도 제게는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이번 시즌 171이닝을 던지며 리그 3위를 기록 중입니다만, 1․2위에 올라 있는 로이 오스왈트, 크리스 카펜터 선수 등은 에르난데스 선수보다 불과 아웃 카운트 1, 2개를 더 잡았을 뿐입니다. 투구수는 어떨까요? 오늘 현재까지 2803개의 공을 던지며 리그 수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닝당 투구수는 16.4개로 리그 25위권, 그렇게 높은 수준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K/BB가 1.74로 리그 71위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제구력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WHIP 1.42 역시 칭찬할 만한 수준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투구수가 많다고 말한대도 할 말은 없을 일입니다. 하지만 13승 4패, 3.47의 방어율을 보이는 투수가 이렇게 어마어마한 투구수를 보이면서도 많은 이닝을 먹어준다면 칭찬해 줄만한 일이 아닐까요? 팀 전체 이닝의 17.14%를 먹어준다면 말입니다.

한번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세이버쟁이들의 관점에 의하면, 안타를 맞는 건 투수의 잘못이 아닙니다. 게다가 실책도 순전히 야수의 책임이죠. 즉, 투구수가 많아지는 게 순전히 투수만의 잘못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럼, 만약 투수가 평균적인 투구수만으로도 타자를 상대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수비진들을 뒤에 두고 공을 던졌더라면, 몇 이닝을 던졌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가정을 세워볼 수 있을 것입니다.

공식 유도 역시 간단합니다.

IP × (투수의 이닝당 투구수 / 리그 평균 이닝당 투구수)

리보의 경우, 171이닝 동안 2803개의 공을 던졌으므로 이닝당 평균 16.39개의 공을 던진 꼴이 됩니다. 한편 NL 전체에서의 이닝당 평균 투구수는 16.14개입니다. 그럼 리보의 경우 171 × (16.39 / 16.14) = 173.6 정도로 약 2 2/3 이닝 정도를 더 던질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는 정확한 접근이 아닙니다. 반대로, 리보가 보통 투수들보다 투구수가 많았기 때문에 오히려 적은 이닝밖에 소화하지 못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보다 논리적인 접근일 것입니다. 비록 방법론적인 접근은 같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실제 직관에 좀더 부합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제 개인적인 판단입니다. 투구수가 많아지는 걸 보면서, 아 저건 내가 잘못했기 때문이구나, 하고 느끼는 야수는 그 이닝에 실책을 한 야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 좀 빨리 승부 좀 하지, 하는 생각은 팬들이나 야수나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봅니다.

적은 투구수로 효과적인 피칭을 하는 ‘매드 독’ 그렉 매덕스의 경우, 1996년 245이닝을 던졌지만, 같은 방식으로 환산해 보면 194 이닝을 던진 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효과적인 투구로 51이닝을 더 던질 수 있는 수완을 발휘한 셈입니다. 이것은 개인 성적은 물론이거니와 팀을 꾸려가는 데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됐다는 것은 재차 언급할 필요가 없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해 애틀란타 브레이브스는 비록 월드시리즈에서 양키스에 패했지만, 내셔널리그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그럼 이러한 접근법을 가지고 한번 우리나라 투수들을 보겠습니다.

2003년까지, 그리고 2004, 2005년은 물론이거니와 앞으로도 깨지지 않을 거라고 보입니다만, 지금껏 국내 리그에서 한 시즌에서 가장 많은 투구수를 기록한 선수는 1983 시즌의 장명부 선수입니다. 무려 5,886개의 공을 던졌습니다. 2위 기록은 최동원 선수의 4,348개입니다. 차이가 정말 엄청납니다. ^^ 특이할 만한 건 2001년 에르난데스 선수, 무려 4,144개의 투구수를 기록했다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같은 팀의 이승호 선수마저 3,754개를 보탰습니다. 그 이후 단일 시즌에 한 투수가 3,500개 이상을 던진 적은 없습니다. 다음은 한 시즌 3,500개 이상의 공을 던진 투수들의 명단입니다.



프로 초창기에, 이른바 투수 혹사가 심했던 시절의 투수들이 대부분입니다. 특정 감독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각 시즌 별로 감독님들의 이름을 떠올려 보시면, 역시 알려진 소문 그대로 투수들을 혹사했다는 사실이 다소 드러나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이어서, 이닝수를 한번 보겠습니다. 역시나 단일 시즌 최다 투구 이닝을 기록한 선수는 너구리 장명부 선수입니다. 427 1/3 이닝. 2위 기록인 최동원 선수의 투구 이닝이 284 2/3 이닝이라는 사실에 비춰볼 때, 정말 돈 1억이 좋긴 좋았던 모양입니다. 저렇게 엄청난 투구수와 이닝을 던질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정말 놀라울 지경입니다. 생뚱맞지만, 그래서 고인의 쓸쓸한 죽음이 다시 한번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한 시즌 200 이닝 이상 공을 던진 투수들의 명단을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투수들의 분업화가 이루어진 시기와 그렇지 못했던 시기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군데군데 비교적 최근의 시즌도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프로 초창기의 확실히 많습니다. 71.4%의 기록이 '95년 이전의 기록입니다. 2000년대 기록은 역시나 2001 시즌의 에르난데스 선수가 가장 많은 이닝을 기록했습니다. 2위 역시 SK의 이승호 선수, 왜 안타까운 생각이 들까요? 하지만, 지금 SK에 이승호 선수까지 있었다면, 헉 ^^

그럼, 각 투수의 이닝당 평균 투수와 리그 평균 이닝당 투구수의 비율로 조정된 이닝(Adjust IP)을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조정 이닝으로 200 이닝을 넘긴 투수들의 명단입니다.



실제 투구 이닝과 조정 이닝을 비교해 보면 아시겠지만, 어떤 선수는 실제 이닝보다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할 수 있었음을 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어떤 선수는 기대치보다 더 많은 이닝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1983년 장명부 선수의 경우 427 1/3이닝을 던졌지만, 투구수로 이닝을 환산해 볼 때 391 2/3이닝밖에(?) 던지지 않은 게 됩니다. 그만큼 승부를 오래 끌지 않았다는 뜻이 됩니다.

변동에서 ↑, ↓가 의미하는 것은 실제 이닝과 조정 이닝 사이의 순위 변화입니다. ↑의 경우, 이닝당 많은 투구수를 던졌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될 것이고, ↓의 경우는 그 반대로 해석이 될 것입니다. 장호연 선수 225이닝을 던져 전체 27위에 해당하는 이닝을 던졌지만, 실제로 선수가 느끼는 부담은 201 2/3이닝을 던지는 수준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승부를 빨리 가져갔다는 의미로 볼 수 있겠네요.

반면, 김시진 선수는 1984 시즌 215이닝을 던졌지만, 실제로 느끼는 부담은 235 1/3 이닝을 던지는 선수와 맞먹었습니다. 해당 시즌 김시진 선수는 K/9 6.45, BB/9 4.69를 기록했습니다. 그만큼 공을 많이 던졌기 때문에 리그 평균을 던졌을 경우 먹어줄 수 있는 이닝보다 적은 이닝밖에 소화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순위 변화만으로는 실제로 선수가 얼마만큼 차이를 보였는지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범위를 100이닝 이상 던진 투수로 확대해, 각각 얼마 정도의 이닝을 더 던졌는지, 혹은 적게 던졌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이 그 결과입니다. ;



고독한 황태자 윤학길 선수의 이름이 유독 눈에 들어옵니다. 100완투가 가능한 이면에는 바로 이런 배경이 숨어 있던 것입니다. 1992년의 염 주장은 비록 실제 이닝보다 많은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참 안타깝습니다. 손민한 선수야 뭐, 늘 ^^

그럼 이닝에 비해 피로가 많을 선수들은 ;



위에서도 설명 드렸지만, 안타를 많이 맞는 것도 원인이겠습니다만, 볼넷과 삼진이 많은 것도 큰 까닭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번 Diff 상/하위 20위 선수들의 K/9 + BB/9을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상위 20위 ;



이어서 하위 20위 ;



상위 20위권에서는 임창용 선수를 제외하고 이 수치가 10이 넘어가는 선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위 20위권 선수들은 평균이 11.21입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추가 이닝을 계산할 경우, 많이 던지면 당연히 더 많은 이닝을 줄였다고 나오는 결과를 얻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실제 던진 이닝과 조정 이닝 사이에 몇 %의 차이가 있는지를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상위 20, 하위 20위의 명단입니다.



드디어 선동열 감독의 이름이 등장했습니다. K/9가 11.68인데도 이득을 보다니요. -_-; 삼진 안 잡을 땐 도대체 어떻게 해결했단 말입니까.



구대성 선수는 K/9가 9.52정도 되니까 손해를 봐도 무방하리라고 봅니다. 그런데 K/9가 11.75였던 1997 시즌에 오히려 손해를 덜 본 게, 아무래도 타자들이 삼진 당할까 두려워 일찍 맞추는데 급급했던 걸까요? ^^;

사실 이 글은 아래서 본 기사에 모티프(?)를 두고 있습니다. 이닝별 투구수와 팀 성적 사이의 상관관계를 다룬 내용 말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올해에만 국한된 내용인지, 아니면 일반적으로 꾸준히 그래왔는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시즌별 이닝당 평균 투구수 변화 추이입니다.



갈수록 투수들이 이닝당 많은 공을 던지고 있습니다. 투수들의 컨트롤 문제일수도 있겠지만, 지난번에 알아본 바와 같이 삼진과 볼넷, 그리고 홈런수가 전체적으로 늘어나는 데에도 그 원인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피안타율 역시 마찬가지로 고려되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피안타율 추이 그래프입니다.



안타를 많이 맞으면, 투구수도 일정 부분 늘어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상대해야 할 타자가 늘어나니 당연한 귀결이겠죠. 하지만 '82 시즌과 '04 시즌의 피안타율은 1리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공은 1개 이상 더 던집니다. 즉 연관성을 갖은 채 어떤 경향을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삼진과 볼넷, 그리고 홈런이 더 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합니다. 타자가 몇 구째에 타격을 시도하는가 하는 건 타자의 선택이지만, 삼진과 볼넷에는 적어도 각각 3, 4개의 투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초구에 안타 하나 맞고 그 다음 타자를 병살로 돌려 세우면, 겨우 2개의 투구만으로도 처리가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또한, 홈런의 증가는 아예 판을 새로 짜게 만들기 때문에, 홈런이 늘어난 건 확실히 투수들의 투구수가 많아지게 된 한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투구수와 팀의 성적이 비례한다는 기자의 주장을 검증해 보겠습니다. 다음 표는 지난 23년간 이닝당 최저 투구수 순위와 팀의 최종 순위 누적 횟수를 정리한 표입니다.



먼저 최종 순위와 이닝당 최저 투구수의 순위가 정확히 일치하는 경우를 살펴보면, 전체 171가지 경우의 수 가운데 31번밖에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즉, 18.1%밖에 일치하지 않습니다. 연관성이 떨어지죠. 물론, 이 정도의 확률은 거의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 수준입니다. 따라서 무시하겠습니다.

그럼, 최종 순위 상위 네 팀이 이닝당 최저 투구수 순위에서도 상위 4위 안에 속한 경우는 어떨까요? 마찬가지로 전체 171가지 경우 수 가운데 62번밖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36.2%입니다. 이 정도면 맞아 떨어진다고 해야 할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만.

반대로, 최종 순위 하위 네 팀이 이닝당 최저 투구수에서도 하위 4위를 차지한 경우는 어떻겠습니까? 이 경우엔 171가지 경우의 수 가운데 60번밖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35.1%입니다. 역시나 이 정도면, 연관이 깊구나 하는 생각이 드십니까?

표본이 겨우 23년간의 자료뿐이라고 말씀하신다면,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하지만, 국내 프로 야구 역사 전체를 통틀어 이 이상의 자료를 얻어낼 수 없다는 안타까움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투수에게 투구수가 늘어나서 좋을 건 하나도 없습니다. 그건 수비하는 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공격은 길게, 수비는 짧게, 하는 말이 괜히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투구수의 증가가 곧바로 팀의 성적과 직결된다는 말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게 저의 결론입니다. 물론 수비하는 선수들의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다음 공격에서 피해를 보는 측면이 존재하는지는 또다른 접근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누적된 통계치를 통해서는 그러한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시즌 7월 31일까지, 이닝당 평균 투구수는 16.81개입니다. 규정 이닝을 채운 투수 가운데 손민한 선수가 17 1/3이닝을 절감한 효과를 누리고 있고(13.44%), 김해님 선수가 15.06%를 절감한 효과(14 2/3 IP)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드리며 글을 마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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