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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지난해 장원삼은 가장 구원투수 덕을 보지 못한 투수 가운데 한 명이었다.(사진 제공=현대 유니콘스)

지난해 8월 18일 수원구장. 현대 신인 장원삼은 2-1로 앞선 7회말 2사 1, 2루에서 구원투수 신철인에게 공을 넘겼다. 신철인은 첫 타자 박재홍을 외야 플라이로 잡는 듯했지만 공이 바람을 타면서 2타점 역전 2루타를 내줬다. 현대는 결국 SK에 3-5로 졌고 장원삼이 남겨 놓은 주자 2명은 고스란히 2자책점으로 기록됐다.

방어율은 선발 투수의 능력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 가운데 하나다. 구원 투수에게 물려 준 주자의 득점에는 선발 투수의 책임도 크다는 게 현재 방어율 규정의 해석이다. 그러나 이미 마운드를 떠난 장원삼이 신철인의 투구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은 전혀 없다. 그런데도 결국 실점의 책임은 본인의 몫이 된다. 불운을 탓할 수 밖에. 그러나 불운만 있는 건 아니다. 1사 만루에서 등판한 구원투수가 병살타를 유도해 이닝을 마무리하는 장면은 드물지 않다. 선발 투수는 이런 행운도 누릴 수 있다. 긴 야구 시즌에서 불운과 행운이 반복된다. 그렇게면 행운과 불운이라는 요소를 통계적으로 제거해 본다면 어떨까.

기본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다. 올해 아웃카운트, 주자별 상황 24개에서 각각의 평균 득점을 구한다. 다음으로 선발 투수가 남겨놓은 주자를 24개 상황 별로 정리해 평균 득점에 기반한 '조정 자책점'을 구한다. '조정 자책점'이 실제 자책점보다 높은 선발 투수는 불펜의 동료들 덕을 자주 본 셈이다. 반대라면 구원투수들이 미울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선발투수 A가 2사 2루에서 마운드를 내려왔다. 2006년 시즌의 경우 이 상황에서 평균 득점은 0.31점이었다. 따라서 만약 마운드를 이어받은 구원투수 B가 2루 주자에게 실점을 허용한다면 선발투수 A는 자책점에서 1-0.31=0.69점의 손해를 본 셈이다. 거꾸로 실점없이 이닝을 끝낸다면 A는 0.31점의 이득을 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계산을 위한 자료는 SPORTS2.0의 야구 자료 제공자 김범수씨의 도움을 받았다.

이 방법에 따르면 지난해 가장 불운했던 선발투수는 장원삼이다.(표1) 장원삼은 '평균적인 구원투수'들의 뒤를 이었을 때보다 3.26점만큼의 자책점을 더했다. 롯데 염종석, 삼성 임동규, LG 정재복, KIA 세스 그레이싱어도 불운한 투수였다. 반면 KIA 한기주, 한화 류현진과 정민철, SK 윤길현, 삼성 전병호 등은 구원투수 덕을 봤다.

그럼 선발 투수를 가장 잘 도와 준 구원투수는 누구였을까. SK 정우람이다. 그는 선발투수들의 자책점을 6.58점 줄여줬다. 현대 이현승, 한화 차명주, KIA 윤석민과 이상화도 좋았다. 반면 KIA 신용운은 거꾸로 4.01점을 더했다.

'조정 자책점'에 따라 2006시즌 방어율 순위를 다시 정리해 보자. (표2) 류현진의 방어율은 이 계산법에 따르면 2.23에서 2.48로 올라간다. 그래도 1위 자리를 지켰다. 역시 '괴물'은 숫자 놀음 따위에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5위 장원삼은 2위, 10위 그레이싱어는 4위로 올라갔다. 8위 배영수는 순위에서 빠졌고 3위 손민한은 7위로 추락한다.

(SPORTS2.0)

이 분석은 아마 자신을 불운하다고 믿는 투수의 연봉 협상에 도움이 될지 모른다. 물론 반대 경우의 투수라면 잊어버리는 게 상책이다. 가장 행운을 누린 투수와 가장 불운한 투수의 차이는 자책점 9점 정도이다. 9점의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

SPORTS2.0 제 34호(발행일 01월 15일) 기사

황규인(스포홀릭 편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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