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Q. 아래는 사람 이름에서 유래한 질병 목록이다. 성격이 다른 것을 고르시오.
①루게릭병 ②알츠하이어병 ③크룬병 ④파킨슨병 ⑤한센병

정답은 ①입니다. 다른 건 모두 병 원인을 발견한 의사(과학자) 이름을 땄지만 루게릭병은 환자 이름을 땄기 때문입니다. 루게릭병의 정식 명칭은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이라고 하는데요, 17년 동안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 타선을 이끌었던 루 게릭(1903~1941·사진 오른쪽)이 이 병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해서 흔히 루게릭병이라고 부릅니다. 요즘 아이스 버킷 챌린지 때문에 인지도가 올라가고 있는 그 병이 루게릭병입니다.

게릭은 2130경기에 연속 출장하며 철마(The Iron Horse)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때는 헬멧처럼 타자 몸을 보호하는 장비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저 아파도 참고 뛰는 게 연속 경기 출장을 이어가는 비결이었죠. 어느 날 X선 촬영을 했더니 왼손 뼈에 금이 갔다가 저절로 아문 흔적이 17군데나 나올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운동신경 세포가 파괴돼 근육이 힘을 잃는 병에 걸리자 철마도 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붙박이가 된 지 14년 만에 처음으로 1938년 2할대 타율(0.295)을 기록했고, 이듬해에는 경기에 나서는 것 자체가 벅찰 정도로 몸이 나빠졌습니다. 게릭은 시즌 8번째 경기였던 4월 30일 경기가 끝나자 코칭스태프에게 출장을 중단하겠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평범한 땅볼 타구를 처리한 자신에게 박수 갈채를 보낸 관중이 자극이 됐던 거죠. 그게 그의 생애 마지막 경기였습니다.


그가 은퇴하면서 메이저리그에는 '영구 결번'이라는 전통이 생겼습니다. 양키스에서 그가 달고 뛴 등번호 '4'를 앞으로는 아무도 달 수 없도록 정한 겁니다. 양키스에서만 17년을 뛰면서 통산 타율 0.340, 493홈런, 1995타점을 남긴 타자에 대한 예우였습니다. 등번호가 보여주는 것처럼 홈런왕 베이브 루스가 주름잡는 타선에서도 4번 타자는 그의 차지였습니다.

그럼에도 게릭은 늘 "사람들은 (3번 타자였던) 루스가 타석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이야기 하느라 다음 타자(자신)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며 겸손해 했습니다.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은 은퇴 후 5년이 지나야 생기는 입회 조건을 무시하고 곧바로 그를 회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가 숨지고 나온 전기 영화 제목이 '양키스의 긍지(the pride of the yankees)'인 건 우연이 아니었던 겁니다.

게릭의 공식 은퇴식은 독립 기념일(7월 4일)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렸습니다. 그는 이 자리서 "지난 보름 동안 제게 불행한 일이 생겼다는 기사를 읽으셨을 줄로 압니다. 그러나 저는 제 자신이 지구상 최고 행운아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명 연설을 남겼습니다. 이 연설은 "언제든 의지할 수 있는 사람(a tower of strength)을 아내로 둔다는 것, 그 사람이 내가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었던 것보다 더 큰 용기를 보여준다는 건 확실히 최고로 운이 좋은 일"이라고 이어집니다.



1933년 게릭과 결혼한 아내 일리노어(사진 왼쪽)는 1984년 숨질 때까지 재혼하지 않고 루게릭병 환자들을 돕는 데 앞장 섰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게릭과 2분만 함께할 수 있다면 다른 남자하고 보내는 40년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뉴욕 언론은 일리노어를 '양키스의 퍼스트 레이디'라고 칭송했습니다. 그는 콜럼비아 장로교 병원에 "루게릭병 치유에 힘써 달라"며 유산 10만 달러를 남기도 했습니다. 이 돈은 현재 가치로 약 22만 달러(약 2억2300만 원)에 해당하며, 병원에서 기금을 3배 이상 불린 상태라고 합니다.

그런데 일리노어가 숨진 뒤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게릭이 루게릭병이 아니라 운동 중에 뇌를 다친 후유증 때문에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다는 추측이었죠. 두뇌 외상 시 만들어지는 유독성 단백질이 루게릭병 환자한테 나타나는 단백질과 거의 동일했던 것입니다. 게릭도 아픔을 달고 뛰었으니 이 증상에 시달렸을 거라는 이야기였죠.  

정말 게릭이 다른 이유로 숨졌대도 일리노어가 세상에 남긴 유산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네이버에 메이저리그 칼럼을 쓰는 이창섭 씨에 따르면 일리노어는 '루게릭병 환자들은 어떻게 보살펴야 하나요?'하는 질문에 늘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나눔이라는 아이스 버킷 챌린지 원래 가치보가 자기 뽐내기에 열중인 몇몇 연예인들이 새겨 들어야 할 말이 바로 이것 아닐까요?

게릭과 함께 메이저리그에서 의학계에 이름을 남긴 유이(唯二)한 인물이 바로 토미 존(71)일 겁니다. 팔꿈치인대접합(토미 존) 수술이 많은 이들에게 새 선수 생명을 불어 넣는 희망의 이름이듯 루 게릭 역시 ALS 환자에게 같은 의미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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