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시각은 오후 다섯 시 반을 향해 가고 있다. 지금 수원 하늘에선 비가 단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KBO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해 본 결과 오늘 수원 구장 경기는 취소다. 물론 수원 구장뿐 아니라 다른 세 구장의 경기 또한 취소됐지만 날씨 사정을 정확히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동대문구장에서는 예정대로 경기가 열린단다. 물론 동대문구장에는 인조잔디가 깔렸다. 그래서 구장 사정이 좀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마추어 구장의 배수시설이 프로 경기를 치르는 곳보다 더 낫다면, 구장 관계자들 반성 좀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프로야구의 가장 큰 재미 가운데 하나는 월요일을 제외한 거의 매일 야구 경기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매일매일 큰 사정이 없는 한, 경기를 치르겠다는 건 팬들과의 약속이다. 얼마나 그라운드 사정이 좋지 못한지는 사실 추측만 가능할 뿐이지만 과연 경기가 가능한 그라운드를 만들기 위해 관계자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사실 회의적인 생각이 먼저 드는 게 사실이다. 그만큼 여태껏 보여준 게 없다.

프로야구 경기 일정은 팬들과의 약속이다. 우천 등 천재지변에 의해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약속이라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적은 양의 비에도 우천을 핑계로 너무 경기를 쉽게 취소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게다가 지난 '01년 벌어졌던 한 사건을 떠올리면, 현재의 행정에 대한 불신은 더더욱 커진다.

2001년 7월 24일, 당시 롯데 자이언츠를 맡고 있던 故 김명성 감독이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한 비보가 발생했다. 선수단 및 구단은 김 감독의 발인일이었던 26일 경기를 연기해줄 것을 KBO측에 요청했다. 당시 상대팀 기아 타이거즈의 김성한 감독 역시 일정 조정에 동의한 뒤였다. 오늘은 롯데를 상대로 경기하기가 "민망하다."는 뜻에서였다. 하지만 KBO측의 답변은 "경기 일정은 팬들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바꾸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자. 무엇이 도리를 지키는 일이었을까. 아니, 그 무엇이 진정 팬들의 마음을 생각하는 일이었을까. 선수들은 야구를 하는 기계인가. 지도자를 잃을 슬픔을 표현할 단 하루의 말미조차 얻을 수가 없는가. 팬들은 그저 KBO 측의 결정에 따라 야구장에 오락가락만 하면 되는 존재인가. 왜 자신들이 편할 때는 팬들과의 약속 운운하면서, 불리할 때는 그라운드 사정이라는 한마디면 모든 게 끝인 걸까.

KBO측의 얘기가 틀린 건 아니다. 약속은 지키자고 하는 것이다. 불가피한 사정상 못 지키게 될 경우도 물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키기 위해 노력은 해야 되는 게 아닐까? 오늘 누구 하나 구장의 물을 빼기 위해 애를 써보기나 했을까? 없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확실히 노력한 누군가 있었으리라 보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때그때 달라지는 기준에는 원칙이란 낱말을 붙일 수가 없다. '01년 7월 26일은 야구를 해서는 안 되는 날이었고, 오늘은 야구를 할 수 있는 날이었다. 지난 잘못을 통해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는 KBO의 결정에 전적으로 따라야 하는 우리 야구팬들이 너무도 애처로울 뿐이다.

돔구장이 없어서가 아니라 KBO측의 의지가 없어서 경기를 못하는 날이 너무도 많기만 하다. 올해 장마는 유난히 더 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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