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1회초에 선두 타자가 때려낸 안타와 연장 12회말에 터진 끝내기 안타. 둘 모두 기록상 똑같은 '단타'라고 해도 그 가치는 하늘과 땅 차이다. 야구 경기의 최종 목적을 '승리'라고 한다면 단연 끝내기 안타의 가치가 훨씬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가치의 차이를 구체적인 숫자로 확인할 수는 없을까? 이런 고민에서 시작된 도구가 바로 WP다. WP는 Win Probability의 약자로 경기가 진행 중인 시점에서 해당 팀이 승리를 가져갈 확률을 나타낸다. 진행 중인 이닝, 점수 차이와 주자 상황, 그리고 타격 결과 등에 따라 이 WP는 계속해서 변화를 겪는다.

예를 들면 이렇다. 홈 어드밴티지를 고려하지 않을 경우, 경기가 시작되기 전 양 팀은 똑같이 .500의 WP에서 시작한다. 선두 타자가 안타를 치고 나가면, 공격중인 원정팀의 WP는 .538로 올라간다. 승리할 확률이 3.8%포인트만큼 증가하는 셈이다. 반면 출루에 실패한 채 아웃 카운트만 늘린다면 WP는 .479로 줄어들고 만다. (경기당 평균 4.2점을 가정)

따라서 1회초 선두 타자의 단타는 .038, 아웃은 -.021의 WP를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계산해 보면, 9회말 1점차로 뒤지던 2사 만루 상황에서 터진 끝내기 안타의 경우는 .734다. 똑같은 단타라고 해도 무려 19배가 넘는 가치 차이를 보이는 셈이다. 우리의 느낌을 WP가 구체적인 수치로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 논의를 좀더 발전시켜 보자. 위에서 살펴 본 것처럼 야구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 하나는 WP의 변화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따라서 한 선수가 불러일으킨 WP의 변화를 종합해보면, 그 선수가 팀의 승리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WPA(Win Probability Added)다.


<표 1> 타자 WPA 상위 10걸 (5월 16일 현재)

16일 현재까지 프로 야구에서 가장 높은 WPA를 기록하고 있는 타자는 현대의 전준호다. 그의 WPA는 1.92로 1.75를 기록 중인 SK 김강민에 0.17 앞서 있다. WP는 .500에서 시작해 승리할 경우 1.000이 된다. 따라서 WP 0.5는 곧 1승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이 논리를 따를 경우 전준호는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에 약 3.8승 가량을 안겨준 셈이 된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WPA 상위 10걸에 SK 선수들의 이름이 세 명이나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표에서는 빠졌지만 11위 조동화(WPA 1.10) 역시 SK 소속. 와이번스가 잘 나가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반면 KIA와 삼성 소속 선수들은 명단에서 빠져 대조를 이룬다.


<표 2> 투수 WPA 상위 10걸 (5월 16일 현재)

투수 부문 1위 역시 SK 소속인 정대현의 차지다. 2위 권혁(1.80)과 비교해 1.16이나 차이가 나는 압도적인 기록이다. 같은 팀 소속 조웅천 역시 1.37의 기록으로 7위에 올라 있다. 적극적인 타격과 든든한 뒷문 단속이 SK의 1위 수성에 있어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바로 이 WPA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또한 나란히 2~3위를 차지한 권혁, 오승환의 이름 역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뒷문 단속은 팀이 리드를 잡은 경우에만 필요한 법, 이들이 아무리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현재까지는 그리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뛰어난 투수력으로 지지 않을 수는 있어도, 타선이 터지지 않고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이 다시 한번 증명되는 셈이다.

한편 퇴출 결정이 내려진 외국인 선수 호세(-0.69)와 윌슨(-0.43)은 모두 마이너스 WPA를 기록한 채 쓸쓸히 떠났다. 반면 퇴출설에 휩싸인 서튼은 0.86(14위)으로 준수한 성적이다. 오히려 투수 가운데 2번째로 낮은 WPA를 기록중인 캘러웨이(-1.24)가 불안에 떨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LG의 하리칼라 역시 -1.02로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경기가 끝나면 모든 이벤트는 똑같이 기록된다. 달리 말해, 모든 단타는 똑같은 단타고 1점 역시 똑같은 1점이다. 하지만 경기가 진행중인 상황이라면 역시나 이런 차이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이 WPA가 갖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소위 '영양가' 논쟁이 한창이다. 단순한 개인 기록도 기록이지만, 팀 공헌도 역시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논쟁의 핵심. 이런 점에서 WPA는 팀 공헌도를 측정할 수 있는 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팀 공헌도란 승리로 말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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