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지난번에 우리는 GPA가 타율보다 타자 능력, 즉 득점에 공헌한 바를 측정하는 데 있어 더 뛰어난 도구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를테면 이렇다. 타율 .247인 타자를 훌륭한 타자라 보기는 일반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그의 GPA가 .327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타석에 충분히 등장했다면, 그는 여느 3할 타자 못지 않게 득점에 기여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니, 어쩌면 그가 공헌한 바가 더 클지도 모를 일이다.


위 보기는 '99 시즌 해태에서 뛰었던 샌더스의 실제 기록이다. 출루율 .408, 장타율 .575는 분명 뛰어난 기록이지만 타율 .247은 확실히 일반 야구팬들에게 어필하기 어려운 수치다. 그래서 그는 홈런을 40개나 날리고도 '공갈포'라는 오명에 시달려야 했다. 물론 여기에는 133개에 달하는 삼진도 한몫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안타(101개)보다 더 많은 볼넷(105개)을 얻어냈다. 타자 선구안을 보여주는 BB/K 역시 0.79로 리그 평균 0.57을 훨씬 웃도는 수치였다. 선구안이나 참을성 그리고 파워라는 측면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부당한 점이 많다는 얘기다.


물론 삼진은 루상의 주자를 이동시키기 못한다. 하지만 삼진도 어차피 1아웃이고 내야 땅볼이나 외야 플라이 등 나머지 아웃도 1아웃이다. 야구란 상대방으로부터 아웃 카운트 27개를 뽑아내는 동안 득점을 더 많이 올린 팀이 승리를 거두는 게임이다. 따라서 아웃 당하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삼진이 많은 것보다 .408에 달하는 출루율이 더 중요한 것이다.

출루율은 장식이 아니다. 최근 야구팬들이 볼넷에 주목하는 이유는 안타 대신 볼넷을 선택했기 때문이 아니다. 아웃 카운트를 늘리는 대신 볼넷을 얻어 루상에 나갔기 때문이다. 루상에 주자를 늘려 팀 득점 확률을 그만큼 높였기 때문이다. 샌더스는 확실히 타율 .247 이상의 타자였다.


비단 샌더스만의 일이 아니다. 많은 선수들이 단지 타율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실제 그가 득점에 기여한 것보다 더 저평가되고는 한다. 거꾸로 실제로는 별다른 활약이 없었음에도 높은 타율로 인해 과대 포장되는 경우도 곧잘 있다. 타율 집착증에서 벗어나 한번 선수의 활약을 출루와 장타에 맞춰서 알아보도록 하자. 그것이 실제 득점 기여도와 좀더 유사한 관계를 맺는 수치니까 말이다. 


먼저 높은 타율 때문에 과대평가된 선수들 명단이다.



명단을 자세히 보면 안타는 주로 단타뿐이며 볼넷을 거의 얻어내지 못하는 타자들이 들어차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런 타자들은 높은 타율이 주는 이미지와는 달리 득점에는 그리 많이 기여하지 못한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이런 선수들이 실제로 형편없는 실력이었다는 소리가 아니다. 다만 실제 가치에 비해 과대평가돼 있다는 뜻일 뿐이다.


전형적인 케이스는 '96 시즌 김태형이다. 그는 타율과 출루율이 거의 똑같다. 김태형은 '96 시즌 리그 평균 타율인 .251보다 21포인트 높은 타율 .272를 기록했지만 출루율 .277는 리그 평균(.327)보다 50포인트나 떨어지는 수치였다. 장타율 역시 잠실구장 영향이 있었다고 해도 리그 평균(.370)보다 47포인트나 떨어졌던 게 사실이다. 


이런 기록이라면 그가 포수였다고 해도 확실히 공격력에 있어서는 좋은 점수를 받기가 어렵다. 하지만 타율은 그를 전혀 다른 이미지로 보이게 만든다. 타율 .277을 때리는 포수는 그리 흔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타율의 맹점이다. 나머지 선수들 역시 이런 평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어서 낮은 타율 탓에 과소평가된 선수들 명단도 알아보자.



위에서 보기로 들었던 샌더스가 1위를 차지했다. 그밖에 박경완의 이름이 네 차례나 등장한다. 그가 프로 무대에 첫선을 보였던 '91 시즌부터 '05 시즌까지 리그 평균 타율은 .262였다. 박경완의 기록은 이보다 15포인트 적은 .247밖에 안 된다. 국내 최고 수준의 수비를 자랑하는 포수라고 해도 다소 아쉬운 수치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출루율과 장타율을 보면 사정이 다르다.


그의 통산 출루율은 .369다. 이는 같은 기간의 전체 평균(.338)보다 31 포인트 높은 기록이다. 장타율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통산 장타율은 .471이나 된다. 같은 기간 리그 기록은 .396이었다. 75 포인트 차이다. 그 결과, GPA로 비교할 때 리그 평균 .251은 박경완의 기록 .284에 비해 확실히 초라해 보인다. 그는 공수 모두를 겸비한 포수였던 셈이다.


물론 타율까지 높았다면 위에 등장한 선수들의 출루율과 장타율은 더 나은 기록을 나타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출루율과 장타율에도 모두 타율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선수들을 과소평가하는 법이 드물다. 오히려 이렇게 타율 이외의 가치로 보여주는 선수들을 과소평가하기가 쉽다. 실제로 그가 기록한 타율에 비해 훨씬 많은 공헌을 했는데도 말이다. 이를 좀 반성해 보자는 것이 어쩌면 이 글 핵심인지도 모르겠다.


타율은 물론 중요하다. 공을 때려내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기에 우리는 그들을 ‘타자(打者)'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때리지 않고도 살아나가는 법을 아는 타자가 더 훌륭하고, 기왕 때렸으면 장타를 뽑아내는 타자가 더 훌륭하다. 이 점을 타율은 전혀 보여주지 못한다. 타자의 타율이 낮다고 그를 비난하기 전에 한번 그의 출루율과 장타율 정도는 챙겨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 보자. 어쩌면 한 타자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달라질지도 모를 일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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