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1 하일성 사무총장의 이야기

얼마 전 KBO 하일성 사무총장, 이상일 본부장과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인터뷰 도중 한 인터뷰어가 장부상 흑자 문제에 대해 물었다.

인터뷰어 B : 제가 2005년, 삼성 라이온즈 재무제표를 봤는데, 장부상 흑자로 나와 있습니다.

하일성 : 에이, 거짓말 하지 말아요.
지난 번 기사에서 확인한 대로, 분명 2005 회계연도에 (주)삼성라이온즈는 장부상 6억의 흑자를 기록한 기업이다. 하일성 사무총장이 무엇인가 잘못 알고 있던 모양이다. 이에 관해 이상일 본부장이 해당 기업의 관점에서 흑자 내용을 정리했다.

이상일 : 그게 흑자라는 걸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냐면, 만약에 구단을 운영하는데, 200억이 드는데, 수입이 한 50억 정도 들어와요. 150억이 부족하잖아요. 그러면 모기업에 신청한다고 광고료로. 그럼 160억이 들어왔어. 그러면 10억 흑자라고 생각한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실제로는 150억이 적자났는데, 10억이 흑자 났다고 외부에서 잘못 생각한다는 거죠.

인터뷰어 B : 그래서, 그것을 여쭤보는 거예요. 재무제표 상에는 분명 흑자라고 나와 있는데,

하일성 : 그게 아니야, 지금은, 흑자라는 게 있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또 하나 일부에서는 광고효과라고 얘기하는데, 삼성전자가 이윤이 10조 이상 나는 회사입니다. 야구단이 있고 없고, 제품 팔리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어요. 그것은 60년대 말, 70년대 초의 얘기에요.
정말 이게 60년대 말, 70년대 초의 이야기일까? 아니면 KBO의 마케팅 마인드가 바로 그 수준인 것은 아닐까?


#2 마케팅의 목적

물론 1차적인 마케팅의 목적은 해당 제품을 판매하는 데 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마케팅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하일성 총장의 말은 틀리지 않다. 사실 야구단이 있고 없고에 따라 당장 삼성 제품의 판매량이 급격하게 변화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국내에서 프로야구 팀을 할 정도의 기업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무슨 홍보 효과가 있냐고 말이다. 이 또한 마찬가지다. 브랜드 인지도 향상 역시 마케팅 과정의 일부일 뿐 그것 자체가 마케팅의 목적은 아니다. 코카콜라나 나이키를 모르는 스포츠팬들이 아직도 너무 많아서 이 두 회사가 스포츠 스폰서십에 천문학적 금액을 퍼붓는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그럼 마케팅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 바로 고객과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기업명을 팀 이름으로 하는 우리 프로 구단은 엄청난 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해당 기업의 사원이 아니라면, 혹은 정신병자가 아니라면, 그 어느 곳에서 그렇게 해당 기업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고 또 부를 것인가?

달리 말해, 스포츠 팀에 대한 충성심이 해당 기업과 브랜드에 대한 충성심으로 곧바로 연결되는 구조를 현재 야구단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누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애타게 기업의 이름을 외치는 고객들을 상대로도 제대로 된 마케팅을 하지 못하는 회사가 전세계를 대상으로 해서는 성공 확률이 높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각종 규모의 세계 대회에 스폰서십을 제공할 때 우리 기업들은 하나하나 그 효과를 측정한다. 필요 이상의 지출을 막기 위한 작업이다. 그런데 똑같은 기업이 유독 국내 프로 스포츠에서만큼은 사회 환원이라고 이야기한다는 게 상식에 맞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물론 스포츠 구단 주식회사의 주 수입원은 광고 수익이다. 따라서 그룹 전체에서 이 광고비용을 정말 비용(cost)이라고만 볼 것인지, 아니면 투자(investment)라고 볼 것인지에 따라 흑자가 거짓인지 아닌지 가려지게 될 것이다.


#3 비용(cost)과 투자(investment) 그리고 위기(crisis)

한번 정말 기업들의 주장을 100% 받아들여 이를 비용으로 처리해 보자. 그러니까 기업은 정말 스폰서십에만 만족하고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구매력과 연관되는 마케팅 기법'을 개발하지 못한 해당 기업의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30년이 다 되어가도록 여태 흑자 수익 구조를 전혀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은 노력을 게을리 한 책임이라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니, 100보 양보해서 상황이 너무 너무 어렵다고 치자. 정말 너무도 위기가 심각해서 당장 다음 시즌이 정상적으로 운영될지 여부조차 미지수라고 해보자. 그렇다면 당연히 '구조조정'에 나서 몸집 줄이기에 나서야 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여전히 선수들의 몸값은 날이 갈수록 치솟고, 모든 구단들은 값비싼 비용을 들여 해외로 전지훈련을 떠난다. 원정 경기에 나서면 당연히 별 4개 이상의 호텔에 투숙하며, 보통 한 끼에 선수 한 명 당 10여 만 원의 식대를 지불한다. 정말 이 모든 것이 적자를 감수하고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기업이 노력하는 결과물일까?

극단적으로 이야기해서 선수들이 뛸 곳은 얼마든지 있다. 도저히 선수들의 몸값이 감당이 안 되면 일본이나 미국으로 선수들을 보내서 이적료라도 챙겨 팀을 운영해야 한다. 과거 해태가 그랬고, 농구팀 골드뱅크가 그랬다. 하지만 여전히 올해도 수십억짜리 FA 계약을 체결한 선수들을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마디로 해당 팀을 운영하는 기업 내부 사정이 위기라기보다 사실을 부풀려 더 힘들게 만드는 KBO의 마케팅이 위기라는 얘기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최고라는 것을 보여주려면 그게 돈이 된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하물며 당장 마케팅에 나서야 할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여전히 60년대 말, 70년대 초 이야기를 하면서 야구단의 만성 적자만 논의하고 있는 게 우리 KBO의 현주소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를 저렇게 계속 주장하는 것이 과연 우리 프로야구에 어떤 도움이 될까? 도시 연고제에 전면 드래프트를 실시하면 당장 신생팀이 늘어날까?

아니, 왜 30년 가까이 계속해서 적자를 보는 리그에 새로운 팀이 필요할까? 정말 위기라면 오히려 팀을 줄여야 하는 게 아닐까? 신생팀 창단이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뿌리를 갑자기 힌들어서 도대체 무얼 어떻게 하자는 얘긴가? 차라리 프로 구단 스스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로 전환하는 일이 보다 시급한 과제가 아닐까?


#4 올림픽에서 배운다.

이와 관련해 프로야구에 교훈을 주는 사례가 하나 있다. 바로 올림픽 이야기다. 전세계 스포츠팬을 상대로 한 올림픽 역시 '70년대까지만 해도 매번 적자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제 올림픽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진화했음은 모두가 알고 있는 바다. 여기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 바로 안토니아 사마란치 IOC 총재였다.

안토니오 사마란치는 1980년 IOC 총재에 취임하며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① 올림픽이 아무리 숭고한 이념을 추구하고 있다고 해도 올림픽 운동을 추진하는 데는 막대한 돈이 소요된다.
         
② 올림픽을 개최하는 데 필요한 경비를 부담할 국가는 일부 부유한 국가에 한정되어 있다.
         
③ 올림픽을 개최한 나라가 올림픽 후 막대한 재정적자를 본다면 올림픽은 외면당할 것이다.

 ④ 올림픽 참가 자체가 가난한 나라로서는 경제적 여건이 어렵다. 전 세계적으로 올림픽정신 확산이나 올림픽의 장래는 결국 비관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문제 의식을 계기로 사마란치 위원장은 체계적인 스포츠 마케팅을 올림픽에 도입했고, 결과는 알고 있는 것처럼 대성공이었다. 확실한 문제를 파악하고 가장 올바른 대안을 선택한 결과다. 한번 차례대로 우리 야구가 처한 상황에 맞춰 문장을 바꿔보자.

① 프로야구가 아무리 숭고한 이념을 추구하고 있다고 해도 프로야구 팀을 운영하는 데는 막대한 돈이 소요된다.
         
② 프로야구 팀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경비를 부담할 기업은 일부 부유한 기업에 한정되어 있다.
         
③ 프로야구 팀을 운영한 회사가 이후 막대한 재정적자를 본다면 프로야구는 외면당할 것이다.

④ 야구를 시킨다는 것 자체가 가난한 지방 학교에는 경제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전국적인 야구 확산이나 야구의 장래는 결국 비관적이 될 수밖에 없다.
자, 이제 우리는 과연 프로 구단이 무엇을 해야 할지 진지하게 생각할 때가 됐다. 그리고 이런 고민은 바로 마케팅의 기초 가운데 기초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바로 고객의 욕구(needs)를 파악하는 일 말이다.  


#5 귀를 열고 고민할 때다.

마케팅학자 마이크 에스컨은 마케터에게는 세 가지 귀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말하는 것을 듣는 귀, 말하지 않는 것을 듣는 귀, 그리고 말하고 싶은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는 것을 듣는 귀." 바로 이 세 가지다. 과연 우리 KBO에게는 어떤 귀가 있을까?

물론 수 십 년 된 제도라고 해서 그것을 영원히 고수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과연 팬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선수 수급을 위해 과연 유소년 야구 지원에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KBO의 독단이 아니다. 야구계 전반의 관계자가 모두 모여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고, 각자의 기득권을 조금씩 양보하는 대타협이 이뤄져야 한다.

정치권 출신 총재에게는 물론 '업적'이 중요하다. 하지만 프로야구는 총재의 사사로운 업적 하나를 챙겨주기에 너무 심하게 곪아 있는 상태다. 차라리 이 위기를 타개하는 것 자체가 총재의 공이 될 것이다. 따라서 선수 출신이자 팬들에게 친숙한 이미지의 하일성 총장이 총대를 멜 필요가 있다.

하일성 총장의 따르면, 1월 말에 열리기로 한 '야구 대토론'은 각 팀이 전지훈련에서 돌아오는 3월로 연기된 상태라고 한다. 이때는 모든 것이 '검토‘로 끝나서는 곤란하다. 정말 확고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우리 야구를 살리기 위한 진지한 토론이 벌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100년 전의 조상으로부터 '야구'라는 문화유산을 물려받았다. 그 속에서 함께 땀 흘리고, 울고 웃으며 오늘날까지 야구를 지켜왔다. 하지만 동대문구장의 철거 계획 소리가 들리고 서울 연고권을 가진 정규 리그 2위 팀을 150억에도 못 파는 실정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더 이상 60년대 말, 70년대 초처럼 기업의 판촉 효과에 프로야구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아니면, 2000년대가 되도록 여전히 그 시대에서 거의 진화하지 못한 시설과 아마추어적인 마케팅 때문에? 그 이유가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면, 결코 우리 프로야구의 미래는 밝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하일성 총장의 '에이, 거짓말 하지 말아요.'하는 소리에 철렁 가슴이 무너져 버린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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