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겨울 미국 진출을 선언하며 태평양을 건넌 최향남 선수의 호투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최향남은 '71년생으로 우리나라 나이 36살의 적지 않은 나이다. 그래서 그의 미국 진출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보도는 많은 이들의 이런 평가가 잘못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최향남은 현재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산하 AAA팀인 버팔로 바이슨스에서 뛰고 있다. 37 2/3 이닝을 던져 3.11의 방어율을 기록 중이다. 여기에 K/9는 9.8에 달한다.  볼넷 수치 역시 경기당 2.87개로 안정적이다. 그 결과 3.42라는 뛰어난 K/BB가 기록됐다. 구위는 물론 제구력까지 안정됐다는 뜻이다.

지난 번 박찬호 선수에 대해 쓸 때도 언급했지만, 이 두 기록에 피홈런 수치를 더하면 투수의 향후 기록을 짐작하게 해주는 FIP(Fielding Independent Pitching)라는 수치가 나온다. FIP는 약자 풀이 그대로 팀의 수비력 차이를 상쇄시켜 투수의 순수한 투구 능력을 검증하는 잣대다. 오늘 현재까지 최향남의 FIP는 2.48로 방어율에 비해 훨씬 낮은 수치다. 일반적으로 FIP가 방어율보다 낮으면 투수의 성적이 향상될 것으로 전망하고는 한다. 따라서 앞으로 최향남이 더 좋은 투구 내용을 보일 확률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구단 역시 최향남에 대한 태도가 조금 변한 듯 하다. 통역이 없어 미국 생활에 애를 먹는다는 내용이 보도된 적이 있었다. 경기장 밖에서의 생활도 생활이지만 투수는 마운드에서 많은 의사소통을 필요로 하는 포지션이기에 통역이 절실하다. 하지만 빠듯한 마이너리거 연봉으로 직접 통역을 고용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구단의 지원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제 최향남은 구단에서 고용해 준 통역과 함께 미국 생활에 훌륭하게 적응해 나가고 있다. 이런 안정감이 성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국내 팬들에게 최향남은 '풍운아' 이미지가 강하다.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상대와 당당히 맞서 싸우는 용기, 고집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질 게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성격이 아니었다면 늦은 나이에 태평양을 건너는 모험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현재까지 이 모험은 성공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살아 있는 볼끝과 안정된 로케이션, 상대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각 좋은 변화구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빅 리그 로스터에 올리기 위해 오늘도 노력중이다.

고등학교 화학 교사로 일하다 늦은 나이에 메이저리그 투수가 된 짐 모리스의 일화를 다룬 '루키'라는 영화가 있다. 그의 스토리가 많은 팬들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갔던 건 꿈에 대한 식을 줄 모르는 열정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최향남 역시 영화 같은 삶을 살았다. 염색 사건을 비롯해 그의 앞에 놓여졌던 많은 장애물을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뛰어 넘었다.

이제 가장 큰 벽이 최향남을 기다리고 있다. 최고로 향기로운 남자, 최향남. 어쩌면 그의 땀냄새야 말로 가장 멋진 향기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꿈을 향한 열정이, 그 향기가 우리에게 '루키‘보다 더 큰 감동을 선사해주길 기대해 본다.



댓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