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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야구 판에 수상한 숫자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젊은 야구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세이버메트릭스(sabermetrics) 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는 것. 하지만 세이버메트릭스는 너무도 오해를 많이 받고 있다. 스스로 세이버메트리션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세이버메트릭스에 대한 오해가 굉장이 클 때도 있다. 

세이버메트릭스라는 낱말을 떠올리면 복잡한 통계 공식을 이용해 야구 기록을 분석하는 것쯤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이를 위해 △일반적인 수준을 뛰어 넘는 수학 지식이 필요하며 △컴퓨터 사용에도 상당히 능해야 한다는 편견이 많은 야구팬들 사이에 널리 퍼진 게 사실. 잘못된 이야기는 아니다. 세이버메트리션이 되려면 △적어도 사칙연산을 해야 할 줄 알며 가장 대중적인 △MS 엑셀을 비롯한 여타 통계 컴퓨터 프로그램이 존재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어느 정도 야구를 봤다면 1루수는 수비보다 공격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다. 거꾸로 유격수나 포수 자리에 수비를 무시하고 무작정 강타자를 배치할 수는 없는 노릇.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결과는 어떨까?

1B - LF - RF - 3B - CF - 2B - SS - C

포지션별로 좌측에서 우측으로 갈수록 수비하기에 까다로운 포지션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지? 이 순서는 세이버메트릭스의 아버지로 알려진 빌 제임스(Bill James)가 고안해 낸 '수비 스펙트럼'이라는 것이다. 이런 스펙트럼이 구성되는 데 있어 수학이나 컴퓨터는 전혀 필요치 않다. 오히려 야구에 대한 이해와 개념을 명확하게 표시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할 따름이다. 이것이 바로 세이버메트릭스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야구팬들이 막여하게 느끼던 것들을 구체적으로 잡아내 표현하고, 저마다 다른 주관적인 느낌들을 공론의 장으로 끌고 나와 객관성을 담보해가는 과정, 그것이 바로 세이버메트릭스의 의의다. 이 때문에 주관성이 많이 개입되는 '일상 언어' 대신 객관적으로 보이는 숫자를 동원하는 경우를 곧잘 볼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그런 숫자가 나오게 된 과정 역시 야구의 기본 원리에 매우 충실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기본 원리란 다른 게 아니다. 야구는 상대팀보다 한 점이라도 점수를 더 많이 얻은 팀이 승리를 챙겨가는 게임이며, 승리야 말로 야구 경기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이다. 야구 규칙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즉 기존 통계가 선수 개개인의 개별적인 활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세이버메트릭스가 생산해 내는 지표들은 선수가 팀의 승리에 공헌한 정도를 다룬다. 타자는 득점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얼마나 생산적이었나, 투수는 상대 득점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억제했는지 알아보는 게 바로 세이버메트릭스라는 뜻이다.

물론 OPS(출루율+장타율)나 RC(득점 창출) 또는 WHIP(이닝당 출루 허용) 그리고 DER(범타 처리율) 등 낯선 영어 약자는 세이버메트릭스 문외한들에게 이질감을 불러일으키는 게 당연한 일. 또 이런 지표를 만드는 공식 또한 얼핏 보기에 기괴해 보인다. 하지만 타율도 나누기를 모르면 계산할 수 없고, 방어율은 비례식까지 알아야 구할 수 있다. 세이버메트릭스 공식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사칙 연산을 거듭했을 뿐이다. 이 단락 처음에 소개된 네 개의 지표 모두 고교 수학 과정에서 가르치는 로그나 루트조차 필요없다. 사칙 연산이면 충분하다.

이런 공식마저 굳이 외우고 다닐 필요도 없다. 방어율과 타율을 실제로 계산해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단순히 원리를 이해하는 과정이 아니라면 굳이 스스로 구하지 않더라도 중계방송 화면 아래 자막으로 처리되는 자료를 지켜보면 될 것이고, 각종 인터넷 사이트는 물론 스포츠 신문에서도 손쉽게 각종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세이버메트릭스 공식도 원하기만 한다면 인터넷에서 얼마든 검색이 가능할 수 있다. 사칙 연산만 할 줄 안다면 빈 노트 위에서 계산해 내는 건 식은 죽 먹기다. 물론 계산기 나아가 컴퓨터를 쓴다면 훨씬 편하겠지만 말이다.

문제는 이런 공식을 외우고 다니면서 자신은 남들이 모르는 굉장한 무엇인가를 안다고 폼을 재는 사이비 '사이버메트리션'들이다. 이런 공식이 필요한 이유는 야구라는 위대한 경기를 좀더 올바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 공식 자체가 위대함을 내포하고 있는 건 아니다. 위대함이란 그 어떤 복잡한 공식으로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야구의 서스펜스, 드라마에 있는 것이다. 그 알 수 없는 매력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고자 노력하는 게 바로 세이버메트릭스이지, 모든 비밀을 풀어 헤쳤으니 이 숫자만 믿으면 된다고 말하는 건 세이버메트릭스가 아니다. 그것이야 말로 사이비메트릭스다.

가장 중요한 건 이런 숫자를 사용해 야구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미 세이버메트릭스에서 주류라 불릴 만한 공식들은, 사실 많은 이들로부터 비판 받아 보완되고 개정된 것들이 많다. 빌 제임스가 고안한 RC는 수십 개에 달하는 공식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현재 형태가 나왔다. 그만큼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것이다. 이제 그 공식은 빌 제임스 한 개인이 아닌 야구와 그 원리에 대해 고민한 많은 이들이 공동 창작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판을 받아들이고 수용해가는 과정을 통해 세이버메트릭스 자체 또한 진보하고 있다는 의미다.

다른 지표들도 마찬가지. 현재 굳건한 위력을 과시하고 있는 많은 지표 또한 언제 비판에 직면할지 모른다. 특히 수비나 주루 플레이는 공신력을 얻을 만한 지표는 거의 없다. 많은 공식이 나왔지만 결국 자체에 내재했던 오류가 드러나며 생명을 다하고 말았다. 그래서 오히려 이 분야는 앞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많은 세이버메트리션들이 높은 관심을 보이며 연구에 매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러는 비판에 직면에 사라지게 될 것이지만 어쩌면 몇몇은 우리가 야구를 보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도구로서 자리매김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세이버메트릭스 이전에 타율이나 다승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세이버메트릭스는 숫자 놀음이 아니다. 야구라는 경기를 좀더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보려는 움직임이다. 이는 또 공론의 장에서 비판을 수용하면서 진보를 거듭한 결과다. 아직 완성작도 아니다. 따라서 앞으로도 더 큰 발전이 기대되는 분야다. 언젠가 세이버메트릭스는 야구를 보는 새로운 물결로서 야구판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놓을지도 모른다. 이런 과정은 이미 알게 모르게 조금씩 시작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빌 제임스 얘기를 해보자. 빌 제임스는 자신의 저서 'Baseball Abstract' 1981년 판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훌륭한 세이버메트리션은 모든 종류의 가능성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설사 그것이 통계학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났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못된 세이버메트리션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 문제는 이미 내가 연구해 봤어. 자, 이게 정답이야.' 그들의 관심은 논쟁을 끝내는 것뿐이다." 비판 없이 세이버메트릭스는 발전할 수 없다.

야구를 그냥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세이버메트릭스 같은 건 처음부터 필요도 없다. 하지만 야구를 '이해'하고 싶다면 세이버메트리션이 되는 걸 한번쯤 고려해 봐도 나쁠 건 없다. 세이버메트리션이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어떤 세이버메트리션이 되고 싶은가? 훌륭한 또는 못된? 못된 세이버메트리션이 되고 싶다면 그만두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부류는 이미 충분히 넘쳐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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