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야구 종주국 미국,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가까운 일본의 야구 문화는 우리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야구장 네 면이 연달아 붙어 있는 사진은 야구와 관련된 거의 모든 사이트에서 발견이 가능하다. 또 매년 고시엔을 목표로 뛰는 천 개가 넘는 일본 고교 야구팀의 숫자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에서 야구란 너무도 소수만을 위한 종목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물론 관람은 어느 정도 자유롭다. 여전히 입장료가 비싸다고 말할 만한 수준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구장 내의 편의시설은 확실히 불만족스런 수준이다. 자신이 직접 야구를 즐기고 싶다면 사정은 더더욱 악화된다. 사회인 야구가 어느 정도 활성화 돼 있다고는 하지만 원하는 수준의 그라운드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위 '야구인'이라고 불리는 일은 확실히 '야구팬'과는 다른 느낌이 된다. 학창 시절부터 야구 선수로 '키워진' 사람이 아니라면 야구인이라는 말은 확실히 어색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야구 문화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어떤 일에 자신의 열정을 바치는 사람이라면 그 분께는 '야구인'이라는 호칭을 붙여줘도 괜찮지 않을까? 오늘 만나 볼 두 분, 김범수 그리고 조용빈 님은 그런 의미에서 확실히 '야구인'에 어울리는 분들이라고 본다.

김범수 님은 열혈 LG 트윈스 팬이다. 이순철 감독 퇴진 촉구 집회 때 삭발로 앞장서 이미 몇 차례 언론 매체에 등장하기도 했던 전력이 있는 분이다. 하지만 단지 이 때문에 김범수 님께 야구인이라는 호칭을 붙이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는 KBO에서도 제대로 하지 못한 작업을 하고 있다. 프로원년부터 모든 선수들의 기록 열람이 가능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가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05, '06 두 시즌 자료에서는 소위 play by play 데이터를 통해 엄청나게 상세한 모든 자료를 산출해 낼 수 있기도 하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김범수 님이 직접 일일이 기록지를 뒤져가며 만들어낸 자료다.

조용빈 님의 경우에는 이미 한 차례 소개한 바가 있다. 스포홀릭에 필진으로 계신 문현부 님과 함께 번트앤홈런이라는 사이트에 야구 관련 컨텐츠를 올리다 도미한 후, 미국 현지에서 코칭 이론을 공부했다. 미국에서 유소년 팀을 맡아 두 시즌 동안 지도하기도 했다. 귀국 후에는 KYBO(Korea Youth Baseball Organization)을 설립, 우리 어린이들이 야구라는 놀이를 유쾌하게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아울러 야구 지식 보급을 위한 저작 활동 역시 조용빈 님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스스로를 '자랑스런 비경기인 출신 야구인'이라 소개하는 조용빈 님께 '야구인'이라는 호칭은 이미 어색하지 않게 들린다.

이 두 '야구인'과 함께 모란의 한 파전 집에서 만났다. 그리고 야구가 얼마나 좋은 술안주인지 새삼 확인하면서 야구에 대해 꽤 많은 얘기를 나눴다. 한번쯤 야구에 대한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읽어보셔도 꽤 좋은 이야기가 될 것 같아 여기 그 내용을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자기 스스로 '야구인'이 되고자 하시는 분이라면 확실히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황규인 (이하 황) ; 김범수 님이 좀 늦으실 모양이네요. 그럼 그 전에 둘이 먼저 이야기를 좀 나눠보는 편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KYBO 사업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조용빈 (이하 조) ; 시작할 때부터 이게 엄청난 돈벌이가 된다는 생각으로 시작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직은 무어라 말씀드릴 만한 점은 없습니다. 다만 확실한 건 제가 여러 학교를 찾아다니고 도움을 요청하다 보니, 직접 한국의 현실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됐다는 점일 겁니다. 물론 마음에 드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지만 현실이라는 건 제가 적으로 생각해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제가 그 속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할 환경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발견이 확실히 앞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좀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황 ; 그건 그렇고 최근에 책을 한 권 쓰신다고 들었습니다. 책은 어느 정도 진행이 됐는지요? 그리고 책에 대한 간단한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조 ; 이제 집필을 마치고 저작권 등록도 된 상태입니다. 아마 조만간 e-book 형태로 판매가 시작될 것 같습니다. 책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바이오메카닉스(Biomechanics)라는 관점으로 투수의 투구 메카니즘에 접근하는 법을 설명한 책입니다. 제가 미국 NPA 연수를 통해 얻은 지식을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생각에서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부족한 부분도 많지만 이런 책이 세상에 나오고, 그래서 많은 분들과 서로 의사소통이 있을 때 국내의 야구 문화도 좀더 다양화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냥 '이런 걸 이렇게 보는 사람도 있다.'는 생각으로 많은 분들이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황 ; 먼저 책을 읽어본 사람으로서, 사실 굉장히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지금껏 국내에 나와 있는 책들은 어느 정도 도제(徒弟)식으로 씌어진 경우가 많았다고 봅니다. 그런데 과학적인 근거에 입각해 씌어져 있다는 건 확실히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조 ; 물론 한 세대에서 그 아래 세대로 이어진 코칭 방법 같은 것들도 분명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그게 정말 그럴까?' 또는 '어째서 그럴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얼마만큼 이뤄졌는지에 대해서 저는 사실 무척 회의적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현지에서도 마찬가지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미국에서도 제가 배운 NPA의 이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런 걸 이렇게 보는 사람도 있다.' 정도가 딱 적절한 논의의 수준인 것 같습니다.

황 ; 그래도 책을 한권 쓰신다는 게 쉬운 작업만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처음 책을 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 같은 게 있었나요?

조 ; 제가 미국에서 불스(Bulls) 팀을 맡고 있을 때,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야구를 재미있게, 그러면서도 제대로 알려줄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많은 참고 서적을 읽으면서 큰 도움을 받기도 했고 말입니다. 그 가운데서 가장 매력적이었던 자료는 저희 클럽리그 코칭 클리닉을 담당하시던 윌(Will) 아저씨의 강의집이었습니다. 이 분은 사실 아저씨보다 할아버지에 가까우신 분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야구 전문가도 아니신 분이죠. 하지만 수 십 년간 클럽 리그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쳐 오신 분이었습니다. 그 분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자료가 바로 그 강의집이었고 말입니다. 정말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 그만큼 도움이 된 자료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책 역시 앞으로 제가 그런 자료를 쓰게 되는 데 있어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씌어지게 됐습니다. 아직은 실수도 많고,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부족한 점이 많겠지만 시행착오를 거듭하다 보면 좀더 좋은 자료가 만들어질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현재 정기적으로 2년마다 업데이트하려고 생각중입니다.

이때 좀 늦게 김범수 님이 자리에 합류했다. 두 분이 초면이었다. 그래서 서로 인사를 나눈 뒤 계속해서 대화가 이어졌다.  

김범수 (이하 김) ; 스포츠 주간지 기자 분을 만나 뵙고 오느라 좀 늦었습니다.


황 ; 스포츠 주간지라면 <스포츠 2.0>인가요?

김 ; 네, 맞습니다. 자료 제공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리가 좀 길어지게 됐습니다. 모처럼 제 자료의 가치를 알아주는 곳이 나왔는데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법이죠.  (웃음)

황 ; 무엇부터 여쭤볼까요? 열혈 LG팬? 아니면 한국의 빌 제임스?

김 ; 빌 제임스는 무슨? (웃음) LG팬부터 얘기하죠.

조 ; 저도 예전엔 LG 팬이었습니다. 아니 MBC 청룡 팬이었죠.

김 ; 같은 팀 팬이시라니 반갑습니다. 제 경우 사실 야구를 좋아하게 된 건 선린상고 때문이었어요. 어린 시절 제게 고교야구만한 로망이 없었죠. 박노준, 김건우는 제게 영웅 그 자체였어요. 박노준이 홈으로 달려 들어오다 부상당하고, 그렇게 경기에서 패하고 저도 같이 울었죠. 그러다 프로 원년 개막전을 보는데, 이종도의 끝내기 만루 홈런이 터진 거예요. 그때 TV에서 9회말인가에 중계를 끊었어요.

조 ; 그때도 정규방송 관계로 (웃음)

김 ; 네, 그랬죠. (다 같이 웃음) 그래서 이제 라디오를 켰는데, 이건 뭐 어떻게 말로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개막전부터 끝내기 만루 홈런이라니 너무 드라마탁하지 않아요? 그래서 LG, 아니 MBC 팬이 된 거죠. 그때 그것만 아니면 내가 이 고생을 안 해도 됐을 텐데. 참 이종도 선수가 저한텐 죽일 놈이 된 셈이죠. (웃음)

황 ; LG 구단 측에서는 김범수 님이 죽일 놈이 아닐까요? (웃음)

김 ; 뭐 구단 관계자들이야 내가 싫겠지만 어쩔 수 없죠. 자기들이 잘한 걸 내가 가서 잘못했다고 그런 것도 아니고. 정말 잃어버린 3년이었습니다. 생전 안 하던 삭발도 해보고. 그래도 덕분에 매스컴도 꽤 탔어요. (웃음) 이 과정을 통해서 내가 얼마나 LG를 사랑하는지, 또 똑같이 LG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다른 방식으로 그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도 많이 배웠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 가족과 많은 시간을 못 보낸 건 참 미안하지만, 후회는 없어요. 다시 3년 전으로 돌아간대도, 또 그렇게 할 것 같아요.

조 ; 그런데 그런 열혈 팬을 자처하시면서, 자료는 어떻게 모으시게 된 겁니까? 저는 그 자료를 직접 모으신다는 얘기도 오늘 처음 들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어디선가 가져오시는 건 줄 알았습니다.

김 ; 제가 구단에 이것 저것 많이 요구하는 팬이다 보니, 알게 된 한 관계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그러더라구요. 구단에는 득점권 타율이 정리된 자료가 있으니 그걸 좀 구하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부탁을 했더니, 저만 보라면서 주더라구요. 그때가 '03 시즌이 끝난 후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시즌이 끝나고 나서 역시 같은 자료 좀 보여 달라니까, 이번에는 안 된대요. 그래서 그게 뭐 대단한 거냐고 안 되냐니까 보안상 안 된다는 거죠. 그리고 나서 스포츠2i라는 회사에서 마찬가지 자료를 공급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거기 전화를 걸었죠. 그랬더니 개인 회원은 안 받는대요. 내가 돈 낼 테니까 얼마면 되냐고 물어봤더니 한참 동안 답이 없더라구요. 그러더니 2,000 만원을 달래요.

조 ; 2,000이나요? 물론 저작권이 걸린 만큼 일정 수준의 금액을 받는 건 합당해 보이지만, 그건 좀 심한 액수 같은데요?

김 ; 네, 바로 그겁니다. 물론 개인 애호가를 넘어선 요구고, 분명 다양한 형태의 자료가 제공되겠지만 2,000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까짓 것 이렇게 모두가 비협조적이면 차라리 내가 직접 만든다. 이런 생각으로 시작하게 된 겁니다.

황 ; 그런데 정작 김범수 님 자료는 2,000만원씩 안 하잖아요. (웃음)

김 ; 그렇죠. 사실 거기서 제공하는 거랑 거의 똑같은, 아니 어쩌면 오히려 더 나은 형태로 가공이 가능한 자료라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 가격에 팔리지 않죠. 물론 처음부터 돈 벌자고 시작했던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 경기 정리하는데 적게는 30분에서 많게는 너댓 시간씩 걸리는 작업입니다. 그것도 누구의 도움도 없이 저 혼자서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왔죠. 저도 따로 직장이 있고, 가족도 있고 그런데 사실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아무도 안 해주니까, 나 아니면 할 사람이 없으니 이제 그만둘 수도 없게 됐습니다. 아직은 이걸 하는 제 자신이 좋아요. 좋으니까 하는데 과연 그걸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죠.

조 ; 차라리 KBO측에 연락해서 도움을 받는 편이 빠르지 않을까요?

김 ; 저도 그 생각을 안 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제 느낌에 어쩌면 KBO는 이런 데 그리 관심이 큰 것 같지가 않아요. 사실 은퇴한 예전 선수의 기록을 KBO 홈페이지에서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상대팀별, 월별 성적 이런 걸 바라는 게 아닌데도 말이죠. 심지어 타자의 출루율도 알아보려면 직접 계산해야 되죠. 이런 현실에서 과연 제 노력이 어느 정도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사실 회의적이에요. 늘 말로는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다. 데이터가 중요하다. 이렇게 말하지만, 알아주는 사람 찾기가 쉬운 일이 아니에요.

황 ; 물론 저는 늘 김범수 님의 데이터에 큰 도움을 받습니다. 제가 숫자로 글을 쓰는 데 있어서 그 자료는 없어서는 안 될 자료죠. 사실 MLB 데이터의 경우 공식 홈페이지나 각종 언론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봐도 쉽게 구할 수가 있는데, 한국 자료는 정말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런데 뭐 MLB나 NPB도 모두 마찬가지겠지만, 숫자로 야구를 보는 데 대해서 굉장히 거부감이 큰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야구 지식과 상식에 사실 어긋나는 내용이 굉장히 많으니까요. 저는 국내 야구팬들의 이런 성향 역시 데이터와 기록이라는 측면에 있어 올바로 된 평가를 내리는 데 있어 장애가 된다고 봅니다.

김 ; 맞는 말입니다. 가끔 이런 얘기를 들어요. 제 응원팀 얘기를 하자면, 병규가 찬스에 약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팬이 많아요. 타점이 적다는 거죠. 그런데 병규는 올해도 득점권 타율이 3할(.315)이 넘어가거든요. 타점이 적은 게 앞 타자들이 출루를 못해서 그렇지 병규가 못 쳐서 그런 게 아니란 말이에요. 그랬더니 또 이번에는 병규가 찬스를 못 만든대요. 그럼 저는 또 이병규가 선두 타자 때 타율(.424)이 얼마라고 딱 얘기해 줘요. 여기서 끝나면 좋은데, 팀 성적이 갈릴 때 부진했다, 지는 경기에서만 안타를 친다. (이긴 경기 타율 .387)  이런 얘기가 계속해서 쏟아져요. 근데 기록을 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거든요. 물론 자료를 구할 수 없었던 환경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사람들이 객관적인 자료에 의해 평가를 하기보다 너무 자기 느낌과 감만 믿는 것 같아요. 그렇다 보니 생산적인 논의보다는 자꾸 개인감정에 치우치는 주관적이고, 소모적인 이야기들만 계속되고 말이에요. 숫자가 100% 언제나 옳은 건 아니지만, 확실히 저런 오해는 없앨 수 있는데 참 아쉽죠.

황 ; 그래서 좀 자료가 널리 보급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모두가 자유롭게 열람이 가능한 자료가 있다면, 그런 사안에 대해 좀더 실제에 가까운 이야기가 오갈 수 있을 텐데 현재는 너무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역시나 소수의 자료가 공급되고 있는 것 같아요.

김 ; 저도 그 생각을 자주 합니다.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데이터를 사람들에게 공개해주자. 그런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닌데, 그러려면 이 데이터를 웹상에 올려야 하는데, 그 서버 유지비가 그리 간단하지 않은 문제입니다. 제가 한 노동의 대가를 논하기에 앞서, 그 비용마저 제 사비로 털어서 운영한다는 건 확실히 무리죠. 이건 KBO나 언론사 등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 사실 아무도 안 알아주는 것 같아서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분명 우리 야구 문화를 한층 더 발전시키기 위해 제가 노력하는 건데, 오히려 비난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 같은 답답함이죠.

조 ; 그럼 점은 제가 일을 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사실 마찬가지예요. 뭐랄까요? 기존의 관행이라는 게 너무도 무서운 거죠. 제가 가서 기존에 코칭하시던 분들께 현재의 상황은 이러이러니까 한번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요?하고 말씀을 드리면 그 앞에서는 다들 고개를 끄덕이십니다. 하지만 실제로 바뀌는 건 그렇게 많지가 않아요. 상황이 바뀐다는 것 자체가 부담인 거죠. 사실 그분들이 보시이게 저는 그저 '먹물'이고 야구판이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는 외부인인 거죠. 결국 우리 개인들이 스스로 조금씩 노력하는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인데, 사실 유쾌하지만은 않은 게 현실이죠. 그분들이 틀렸다는 말씀은 절대 아닙니다만, 그렇다고 저나 여기 김범수 님이 또 틀렸다고 할 수도 없는 부분이라고 보거든요.

황 ; 어릴 때부터 계속해서 우리가 선수로 자란 게 아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야구계에 오래 몸담았던 분 가운데서, 이렇게 현재 야구계의 모습과는 또 다른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좀 알아주고 그분들이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방향이 전개되면 참 좋을 텐데, 어쩌면 그런 분들께는 현재의 상황이 전혀 문제될 게 없는 걸로 보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김범수 님나 조용빈 님은 현재 야구판에서 모난 정이 되는 거고, 결국 돌을 맞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돌이 타인으로부터의 비난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러니까 내부적인 갈등이 없을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김 ; 사실 지금 하고 있는 일보다 야구가 더 좋죠. 지금 버는 연봉만큼만 이 작업을 통해서 벌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이 일에만 매달리고 싶고, 그러면 더 좋은 자료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보는데, 뭐 실현 불가능한 꿈이겠죠.

조 ; 저는 지금 KYBO에 생계를 걸고 있는데, 결국 주업이 부업이 되고 부업이 주업이 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웃음)

황 ; 암울한 얘기는 이 즈음에서 접죠. 이거 하나 여쭤볼게요. 야구에서 제일 중요한 건 뭘까요?

김 ; LG 팬으로서 말씀드리자면, 준우승으로 이끈 감독님이 경질되셨을 때는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시즌 중에는 참 김성근 감독님에 대해서 팬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았어요. 하지만 결국 이기면 되는 거거든요. 비난과 원망을 존경과 감사로 바꾸는 건 바로 승리의 역할이죠. 우리가 야구팬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야구에서 느끼는 즐거움의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승리가 주는 감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승리를 향한 열정 같은 것 말이에요.

황 ;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기면 물론 팬들이나 선수나 다 좋죠. 그런데 때로 선수들한테는 야구가 참 재미없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자기네들이 흥이 나서 뛰면 팬들도 사실 져도 짜릿할 것 같은데, 선수들도 사람인데 매일 야구하는 기계처럼 운동만 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인 것 같기도 합니다.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것의 차이는 차치한다고 해도 말이죠.

조 ; 말하자면, 우리 선수들은 이미 야구가 지겨운지도 모르겠어요. 어릴 때부터 신물 나게 야구만 했으니까요. 프로에 올 정도면 이미 야구에서 재미라는 걸 찾기가 힘들어 지는 거죠. 우리나라에서 엘리트 스포츠라는 게 피라미드식으로 올라가다 정점에서 엘리트들만 남는 게 아니잖아요. 그냥 계속 그 얇은 선수층 사이에서 모든 판가름이 나는 거니까 어쩌면 재미를 기대하기가 힘든 구조인지도 모르겠어요. 게다가 선수들한테는 야구가 직업이니 스트레스도 받을 거구요.

김 ; 그런 점에서는 두산 선수들이 참 대단해 보일 때가 있어요. 저야 LG 팬이니까 두산이 좋을 리만은 없죠. (웃음) 그런데 가끔 경기를 하다 보면, 아 쟤네는 야구가 진짜 너무 재미있구나, 정말 좋아서 뛰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러다 우리 선수들 뛰는 거 보면, 동네 비디오 가게 나가는 애들처럼 뛰는 거 아닌가 보일 때도 있고. 열심히 한다는 걸 알지만, 그럴 때 팬으로서 안타까운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죠.

황 ; 열심히 뛰면 돈이 얼만데? (웃음)

김 ; 근데 유격수 땅볼 치고 열심히 뛴다고 연봉이 오르진 않죠. 체력적인 부담도 생각해줘야 되고.

황 ; 이병규 팬이라고 편드십니까? 이병규 이름도 안 꺼냈습니다. (웃음)

김 ; 사실 우리 팀의 리더는 병규가 아니라 용빈이어야 하는데 말이죠.

조 ; 네? 용빈이요?

황 ; 그렇죠. 조용빈 님도 성함이 용빈이시죠. (웃음) 그건 그렇고, 요즘 야구장에 관중이 없다, 어린 애들이 야구를 안한다 이런 소리가 많이 들려서 안타깝습니다. 이런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들 생각하시는지요?

김 ;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 리그에는 중간층 팬이 부족한 것 같아요. 열혈 마니아나 야구에 전혀 무관심한 사람들. 어쩌면 이 둘뿐인 것 같아요. 극장을 찾는다고 모두가 열혈 영화 마니아인 건 아니잖아요. 아, 그 영화 나왔는데 좋다더라. 오늘은 극장이나 한번 가자. 이런 똑같은 마인드로 야구장을 찾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좋겠습니다. 꼭 야구를 많이 알아야 야구가 재미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냥 점수를 더 많이 내는 팀이 이긴다는 정도만 알아도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는 게 아구죠. 이런 분들이 야구의 재미를 알게 되고, 점점 더 야구에 대해 많이 알고 싶어지게 될 때, 제가 만든 자료나 조용빈 님의 사업도 모두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어서 가족 단위의 팬들이 늘면, 자연스레 어린 친구들도 야구 하고 싶다고 그러지 않겠어요?

황 ; 둘째 아들이 야구 좋아한다고 그러지 않았어요? 먼저 KYBO에 보내세요. (웃음)

조 ; 보내주신다면 저는 언제든 대환영입니다. (웃음) 야구라는 게 기본적으로 놀이가 되어야 하거든요. 직업으로 프로야구 선수가 될 몇몇을 제외하자면 야구는 기본적으로 재미있게 즐기는 게 맞다고 봐요. 그러니까 초등학교 야구부가 몇 천 개가 된다, 그래서 선수로 등록된 학생이 몇 명이 된다. 이게 진짜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말씀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지금 학원 다니는 시간, 게임하는 시간 등을 제외하고 남는 자투리 시간에 야구를 즐길 수 있는 어떤 사회적인 공감대가 마련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요즘 초등학생들 체육 과외까지 받는 게 현실인데, 기왕 그렇다면 야구 쪽에서 좀더 많은 어린이들이 관심을 갖게 되도록 만들자는 거죠. 이 친구들이 자라서 야구를 좋아하는 직장인, 야구를 좋아하는 정치인, 야구를 좋아하는 학자가 될 때 진짜 우리 야구 문화도 한층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 옳은 말씀입니다. 저희 어릴 때 정구공으로 각목 하나만 있으면 얼마든 재밌게 노는 게 야구였거든요. 굳이 좋은 장비가 없어도, 천연 잔디가 깔린 야구장이 없어도 상관이 없었어요. 그런데 제 아들 녀석도 그렇지만 요즘은 야구가 어렵고, 재미없다고 느끼는 경우가 자주 있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어릴 적에 야구를 경험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애들이 좀더 야구를 친숙하게 느끼면서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황 ; 마지막으로 한 마디씩 하시는 걸로 오늘 인터뷰는 마칠까 합니다.

조 ; 미국에서 공부할 때 제일 부러웠던 게 코흘리개 어린 아이들부터 백발 가득한 어르신까지 모두 다양한 방식으로 야구를 즐긴다는 점이었어요. 정말 야구가 종교고 야구가 생활인 나라죠. 물론 야구 종주국이니까 가능한 일이겠지만, 정말 그 나라 사람들의 야구에 대한 열정이 너무도 감탄스러운 수준이었습니다. 요즘은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졌지만, 분명 저희 셋이나 그밖에 많은 분들에게 야구는 정말 마약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 재미를 우리 아이들에게도 보다 즐거운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올바른 지도 방식을 갖추고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 정도로 중요하다고 봅니다. 꼭 경기인 출신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목소리의 많은 이야기들이 합쳐져 보다 우리의 야구 문화를 생산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 ; 우리나라 사람들은 야구를 좋아하면서도 참 안 되는 게 많습니다. 팬이 구단 운영 방침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면 안 되고, 또 한 개인이 직접 만든 데이터를 마음대로 인터넷에 띄울 수 있는 여건도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말 야구를 사랑하시는 분들이 많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야구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 노력을 알아주는 데가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곧잘 들 때가 있습니다. 꼭 금전적인 지원이 아니더라도 심적인 격려의 한마디도 참 아쉬울 때가 많습니다. 말하자면, 야구를 사랑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로 비춰지는 순간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개인이든, 어느 단체든 꼭 그게 공식적인 루트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목소리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모두가 자신이 얼마나 야구를 사랑하는지 표현하는 것일 뿐이니까요. 이 자료 한 10년 모으면 돈이 될까요? 하지만 돈 때문이 아니라, 이런 자료 내가 아니면 아무도 안 만드니까 시작했다는 점, 그건 좀 인정받고 싶은 게 사실입니다. 제가 정말 LG가 다시 강팀이 되길 바라고 있다는 점도 말입니다.

인터뷰가 끝나고도 술자리는 이어졌다. 계속해서 이 두 분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야구를 좋아한다는 게 무엇이길래 한분은 이렇게 자신의 일상에 지장을 주면서, 또 한분은 자신의 생계를 걸고 야구에 목을 맬까 하는 점 말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도 야구가 너무 좋고, 야구에 목숨을 건다. 하지만 이 분들 앞에서는 절로 겸손해 질 수밖에 없다. 너무도 쉽게 데이터 달라고 조르고, 너무도 쉽게 투구 폼이나 타격 자세에 대한 조언을 구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야구를 너무 쉽게 좋아하려고 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요즘 야구의 위기가 논의되고 있는 이 시점에도 그냥 편안히 야구를 즐기려고만 하는 건 아닐까 하고 묻고 싶은 것이다. 물론 모두에게 야구가 생활이, 고민의 중심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분들이 노력하고 계신다는 것 즈음, 스스로 야구팬이라 자처하고 있다면 높이 평가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야구가 너무 좋아서 꿈이 됐고, 그래서 그 꿈을 살고 계신 분들이니까 말이다. 어쩌면 야구가 너무 좋아서 슬픈 두 분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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