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2006 한국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야구 시즌이 모두 끝이 났다. 이제 야구팬들은 야구를 그리워하며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할 터. 하지만 6개월이 넘는 시즌 동안 야구 선수들은 팬들에게 작은 '장난감'을 남겨주고 떠났다. 기록이 바로 그 장난감이다. 먼저 타순을 가지고 놀아보도록 하자!
이번 시즌 프로야구 최대의 화두는 단연 '투고타저'였다. 리그 방어율이 3.58밖에 되지 않았다는 건 확실히 놀라운 일이다. 이렇게 낮은 수치는 1993년의 3.27 이후 처음이다. 그리고 26년을 통틀어도 올해보다 낮은 리그 방어율이 기록된 건 6번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 우리 리그가 이렇게 낮은 방어율을 기록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해답은 너무 단순한 곳에서 발견된다. 바로 4번 타자들의 부진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이것이 원인인지 결과인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예상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그것이 문제라는 얘기다. 하지만 지난해와 비교해 볼 때, 4번 타자들이 유독 부진을 경험했다는 사실만큼은 달라지지 않는다.
한번 지난 시즌와 이번 시즌 타순별 GPA를 알아보자. GPA는 Gross Production Average의 약자로, 장타율에 지나치게 편중되는 OPS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만들어진 수치다. 구하는 공식은 (1.8 × 출루율 + 장타율) ÷ 4. 무엇보다 타율과 유사한 범위의 수치를 보여준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아래 그래프는 두 시즌 동안의 타순별 GPA 변화를 보여준다.
전체적인 리그 평균 GPA가 지난 시즌 .250에서 .240으로 10 포인트 가량 낮아졌다. 3번 타자 자리만 2.3% 향상된 .279를 기록했을 뿐, 나머지 타순은 모두 하향세. 특히 4번 타순은 무려 16.0%나 하락한 .256에 머물렀다. 만약 지난 시즌이었다면 리그 평균에 비해 6 포인트 높은 저조한 성적이다. 덕분에 지난해 리그에서 가장 높은 GPA는 4번 타자들(.297)이 차지했지만 올해는 3번 타자들에게 양보해야 했다.
두드러진 차이는 역시 홈런이다. 지난해 4번 타자들은 24.2 타석마다 홈런 한방씩을 날렸다. 3번 타자(34.4)와 비교했을 때 10 타석 이상 나는 차이다. 올해 역시 37.9 타석에 홈런 하나씩을 기록하면서 가장 높은 빈도를 보였지만 3번 타자들(40.7)과의 격차는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타율 .254 역시 지난 해(.287)에 비할 바가 못 되며, 올 시즌 3번 타자들의 기록(.284)보다는 무려 30 포인트가 뒤쳐진 수치다. 이래서는 당연히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타순별 기록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자리는 2번이다. 하위 타선과 비교할 때 상위 타순에 포진한 타자들은 타석에 들어설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다. 그런 점에서 GPA .223의 수치는 확실히 생산력이라는 측면에서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다. 지난해에도 2번 타자들의 GPA는 .234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 감독들이 2번에게 기대하는 건 뭔가 다르다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2번 타순은 '작전수행능력'이 좋은 타자들의 차지다. 그리고 가장 대표적인 작전은 바로 희생번트. 2번 타순은 2006 시즌 모두 203개의 희생번트를 성공시켰는데, 이는 희생번트 순위 2위인 9번 타순(139)보다도 60개 이상 많은 기록이다. 뿐만 아니라 전체 타구의 38.7%가 구장 오른쪽을 향해 날아갔다. 비록 3번 타순(40.6%)에 비해서는 떨어지는 수치지만 2번 타자들이 타구 방향을 상당히 의식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짚어 보자. 그럼 어느 타순의 성적이 실제 득점과 가장 연관이 컸을까? 정답은 리드오프, 즉 1번 타자 자리다. 한번 팀의 총 득점 순위와 1번 타자들의 GPA 성적 순위를 비교해 보자.
물론 100% 일치하지는 않지만, 상당 부분 전체 득점과 1번 타자의 성적이 비슷한 순위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득점 1위를 차지한 현대 유니콘스의 경우, 전준호 · 이택근 · 송지만 등이 돌아가며 주로 1번 타순에 포진됐는데 선수 개개인이 가장 타격감이 좋을 때 주로 1번을 맡았다. 김재박式 번트야구에 있어 1번 타자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하위 타순은 일반적으로 공격수보다 수비수로 분류되는 선수들을 위한 자리다. 그런 의미에서 2006 시즌 우리 리그의 공격 패턴을 가장 단순화시키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번 타자의 출루, 2번의 번트. 3번에서 해결하지 못할 경우 4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지만 그의 성적은 그리 신통치 못하다. 5번에서 이닝이 끝날 경우 6번부터는 투수가 요리하기 손쉬운 상대들. 이러니 많은 점수를 기대하기는 무리일 수밖에 없었다.
취향의 차이기는 하지만, 많은 야구팬은 확실히 투수전보다 화끈한 타격전을 선호한다. 공격에 있어서도 작전보다는 호쾌한 한방을 기대하는 팬들이 많다. 그런 점에서 올해 프로야구는 확실히 팬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 양상으로 진행됐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작전야구의 대명사 김재박 감독이 LG 감독 취임 인터뷰에서 처음 밝힌 내용이 '신바람 야구'라는 점은 확실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타자들에게 믿고 맡기는 김인식 감독의 한화 이글스가 전력적인 열세에도 한국 시리즈에 진출한 것 역시 의미가 크다.
물론 감독에게는 재미보다 승리가 우선이다. 팬들 역시 승리에게 가장 큰 재미를 찾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기왕이면 신나고 재미있게 이길 때 보다 많은 팬들의 발걸음이 야구장을 향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타고투저가 그립다는 얘기는 아니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년 시즌에는 올해보다는 좀더 화끈하고, 신나는 야구가 펼쳐지길 기대해 보는 건 모든 야구팬들의 공통된 바람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각 팀 4번 타자들의 분발을 촉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