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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지난 주에 우리는 스윙 시도율을 기준으로 볼 카운트 승부에서 키를 쥐고 있는 선수가 투수인지 타자인지에 대해 알아본 바 있다. 잠정적으로 우리가 내린 결론은 아무래도 투수가 유리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주에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언급하지 않았다. 바로 볼 카운트별 타격 결과가 그것이다.

카운트 싸움이란 결국 아웃을 당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승부다. 타자는 아웃을 당하지 않는다면 최대한 많은 베이스를 얻어내고 싶어 할 것이고, 투수는 이를 억제하기 위해 애쓸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야구에서 점수를 창출하거나 반대로 실점을 억제해 나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카운트별 성적을 알아보도록 하자.

기준으로 사용할 것은 GPA(Gross Product Average)다. GPA는 (출루율×1.8+장타율)÷4로 계산된다. 기존의 OPS(출루율+장타율)가 장타율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고안된 일종의 보정 OPS라고 보면 옳을 것이다. GPA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은 타율과 유사한 범위의 값을 보여줌으로써 직관적인 이해를 돕는다는 데 있다. 아래 표는 2005~2006 시즌에 걸친 리그 타자들의 볼 카운트별 타격 성적표다.


<표 1> 볼 카운트별 GPA

예상한 것처럼 스트라이크가 적고 볼이 많을수록 타격 결과가 좋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이 있다. 3 볼 상황에서 유독 높은 GPA가 기록되는 것은 3 볼 상황에서만 타자가 볼넷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2 스트라이크 역시 투수가 삼진을 빼앗아 낼 수 있다는 점이 타격 성적에 반영돼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점은 경기에 임하는 타자와 투수 모두 항상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리고 실제 성적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보고자 했던 사실은 이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우리가 알아보고자 했던 건 볼 카운트별로 투수와 타자의 어프로치(approach)가 어떻게 달라지느냐 하는 점이었다. 그래서 본래 의도에 충실한 이런 물음을 한번 던져 보자. 투수가 스트라이크를 던질 것으로 기대하는 상황에서 타자들의 스윙은 좀더 효율적인 결과를 가져오는가?

위에서 2 스트라이크 이후의 상황과 3 볼 상황을 언급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볼넷과 삼진은 기본적으로 공이 방망이에 맞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지는 이벤트다. 따라서 타구가 인플레이된 이후의 상황에 대해 이 두 기록은 우리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보여줄 수가 없다. 때문에 이 두 요소를 제거한 새로운 지표를 도입할 필요가 생긴다. 이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지표는 바로 BABIP이다.

BABIP는 Batting Average Balls In Play의 약자다. 말 그대로 볼이 인플레이 됐을 때의 타율을 보여주는 지표인 것이다. 물론 원래의 BABIP 계산에서 홈런은 제외된다. 홈런은 원칙적으로 야수의 수비를 벗어난 영역의 문제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스윙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 즉 안타 생산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홈런도 엄연히 안타다. 따라서 이를 굳이 제외할 필요가 없어 계산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기왕 안타를 칠 것이라면 장타를 날리는 편이 좋다. 따라서 BABIP를 구하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장타율을 알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정보를 제공해 줄 것이다. 게다가 장타는 적극적인 어프로치 없이는 얻어내기 힘들다는 점에서 사실 이 점을 언급하지 않고 지나가는 것은 무리라고 하겠다. 이렇게 말하면 좀 복잡하게 들리는 게 사실이지만, 사실 타수에 포함돼 있는 삼진을 제외하는 것이 이 계산의 핵심이다.

아래는 이렇게 나온 결과물을 표로 정리한 것이다. 과연 타자들의 스윙은 유의미한 시도였을까?


<표 2> 볼 카운트 별 인플레이시 타율+장타율(APSBIP)

숫자를 이해하기 어렵다면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숫자가 높을수록 무조건 좋은 것이다.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인 카운트는 1-3다. 여기서 우리는 지난번에 제기했던 한 가지 중요한 문제를 풀 수 있다. 타자들은 0-3에서 5.6%의 스윙 시도밖에 하지 않았지만, 1-3에서 이 비율은 46.1%로 급등한다. 두 볼 카운트 모두 볼 하나면 자동 출루에 스트라이크도 여유가 있는 상황이지만 타자들의 어프로치에서는 전혀 다른 양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결과를 통해 보면 그 까닭을 손쉽게 유추해낼 수 있다. 0-3에서 투수들이 스트라이크를 던지리라는 사실은 타자들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공을 인 플레이시켰을 때 아웃이 될 수도 있다는 부담감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만큼 0-3는 타자에게 놓치기 싫을 만큼 절대적으로 유리한 카운트이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2년간 이 카운트에서 기록된 타수는 90타수밖에 되지 않는다. 굳이 애써 공을 때릴 필요를 타자들은 거의 느끼지 않았다는 얘기다.

1-3 역시 여전히 볼 하나면 자동 출루다. 그러나 2-3가 되고 나면 상황이 조금 달라진다. 그리고 여전히 투수는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타자들은 확실히 적극성을 보일 수밖에 없고 이런 스윙이 가장 뛰어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0-3와 1-3에서 보여준 스윙 시도의 차이는 충분히 효율적인 선택이었다고 부를 만하다.

이런 현상은 투수가 스트라이크를 던져야만 하는 카운트에서 지속적으로 발견된다. 1-3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를 보이는 0-2 역시 투수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카운트다. 이는 초구에 볼을 던진 0-1도 마찬가지. 스트라이크가 올 것이라 기대하는 상황에서 타자들의 스윙은 확실히 적극성을 띄는 셈이다.

반면, 2 스트라이크 이후의 상황은 확실히 다른 카운트에 비해 수치가 낮다. 혹시 잊은 독자들을 위해 언급하자면 위 기록은 타수에서 이미 삼진을 제거한 상태다. 따라서 2 스트라이크 이후에 삼진으로 인한 기록 손해는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타자들은 좋은 타구를 날리는 데 애를 먹고 있다. 2 스트라이크 이후에는 소위 자기 스윙을 가져가기가 어렵다는 방증인 셈이다. 타구가 범타로 처리되는 비율을 알아보면 이런 사실이 좀더 명확해 진다.


<표 3> 볼 카운트별 범타 비율

확실히 이 비율은 2 스트라이크 이후에 급증한다. 아무래도 카운트가 몰리면 타자는 때려낸다는 느낌보다 맞춘다는 느낌으로 타격에 임할 수밖에 없다. 투수에게 유리한 카운트를 점령하는 것은 삼진의 기회가 늘어날 뿐 아니라 타자에게 정타를 허용할 비율 역시 낮아진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반대로 타자도 볼 카운트 승부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고 갈수록 볼넷과 정타의 가능성이 모두 높아진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2 스트라이크 이후에 타자가 어떤 어프로치를 취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은 거의 모든 야구 코칭 서적이 다루고 있는 바다. 20세기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 역시 자신의 저서 『타격의 과학(The Science of Hitting)』에서 본인 스스로도 2 스트라이크 이후의 타격에 눈을 뜨면서 좋은 타자(good hitter)에서 훌륭한 타자(great hitter)로 거듭날 수 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정확히는 '몸쪽 직구에 대한 인사이드-아웃 스윙을 터득하면서부터'로 기술 돼 있다.)

그런데 2 스트라이크 이후의 어프로치에 대해 테드 윌리엄스만큼이나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 한명 더 있다. 그는 바로 샌디에고 파드레스에서만 20년을 뛴 토니 그윈이다. 그윈은 데뷔 초창기부터 2 스트라이크 상황에서의 부담감에 적응, 나중에는 오히려 이를 즐겼다고 알려져 있다. 그가 .338에 달하는 통산 타율(역대 20위)을 기록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이것이었다. 명예의 전당行을 시간 문제로 만든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대가의 비법은 너무도 단순하다. 토니 그윈은 2 스트라이크 이후의 어프로치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Weight and wait." 무게 중심을 뒤에 두고 침착하게 기다리면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 비법을 터득하기까지 그가 흘린 땀의 결실이 바로 그를 좋은 타자로 만든 비법 그 자체일 것이다. 결국 연습만이 완벽함을 만드는 왕도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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