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지난 포스트에서는 '야구 영화'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아차상' 명단을 발표했다.
 
손윤 님께서 남겨주신 코멘트처럼 '야구'가 여기저기 녹아나는 영화는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여기서 논의할 야구 영화에는 야구라는 양념이 사용된 로맨틱 코미디는 제외된다.

그리고 아래 영화들보다 작품성 면에서는 더 뛰어날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덜 재미있다'고 생각한 영화 목록을 공개했다.

혹시 궁금해 하실 분이 계실까봐 밝히자면 ;

• 사랑을 위하여
• 꿈의 구장
• 미스터 베이스볼
• 미스터 3000
• YMCA 야구단
• 이장호의 외인구단

등 6편이었다.

그럼 이제 TOP 10을 알아보자. 역시나 순위를 매긴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다.

10. 꼴찌 야구단 The Bad News B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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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2005년 리메이크한 작품을 떠올린다면 이런 선택을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저급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너무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또 이해가 되지 않는가?

이 팀의 코치는 한때 잘 나가던 야구 선수였지만 이제는 항상 술에 취해 사는 한량, 당연히 성미도 고약하다. 꼬마 녀석들도 항상 입에 걸레를 물고 산다. 팀의 에이스 투수는 동네 최고 문제아였다.

이들이 모인 리틀리그 팀은 매일 지기만 하다가 어느 날 치고 올라가기 시작한다. 물론 모든 스포츠 영화는 이렇게 진행된다. 하지만 결말에서 꼴찌 야구단은 왜 이 작품이 위대한지를 보여준다.

리틀리그 결승전 상대팀 이름은 바로 양키스. 속임수를 통해 결승전에 오른 아주 나쁜 팀이다. 우리의 베어스도 처음에는 똑같은 속임수로 맞불을 놓으려 하지만 결국 정정당당한 스포츠맨십을 지킨다.

비록 양키스에 패하고 말지만 내년에 설욕할 것을 기대하며 그들만의 파티를 벌인다. 그렇다. 팀 이름은 베어스지만 이건 레드삭스 네이션의 추억인 것이다. 맞다, 이젠 추억 됐다.


9. 그들만의 리그 A league of their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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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이미 '야구를 좋아하는 여자가 나오는 영화'를 제일 좋아한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들만의 리그>는 이 조건에 가장 잘 부합하는 영화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코드를 한 낱말로 요약하자면 '타협'이다.

하지만 여기서의 타협은 비굴이나 체념을 내포하는 소극적인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살아남고야 말겠다는 의지, 나를 희생해서라도 우리를 살리겠다는 용기가 반영된 '타협'이다. There's no crying in baseball!

때문에 이들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경기에 나서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파울볼을 잡은 팬과 기꺼이 입을 맞춘다. 그렇다. 그들의 타협은 희생 플라이고, 희생 번트였다.

그래서 그들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다시 야구를 추억할 수 있었다.

(영화 속 술 주정뱅이 감독의 실제 모델은 그 유명한 지미 폭스다.)


8. 메이저리그 1 Major Leag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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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금도 그렇게 나이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더 어렸을 때를 되돌아 보면 가장 후회가 되는 게 좋은 걸 좋다고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점이다.

그러니까 대중적이라고 해서 굳이 싫어할 이유는 없없는데 사춘기 때의 나는 어쩌면 내 취향에 그렇게 솔직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 영화의 재미를 한동안 부정하며 살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사실 <메이저리그 1>은 10살 어린 사촌 동생과 깔깔 웃으며 재미있게 본 추억이 남아 있다.

비디오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고모가 끓여 주신 부대찌개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 역시 또렷하다. 기분좋은 허기짐을 채워주던 햄 특유의 냄새.

그래서 나는 찰리 쉰을 볼 때마다 여전히 그 냄새가 떠오른다.


7. 리틀 야구왕 The Sand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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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1980년대를 '어린이'로 살았던 많은 이들에게 야구는 굉장히 친숙한 놀이였다. 찜뽕, 발야구, 주먹야구 등 참 다양한 종류의 유사-야구 놀이들… 지금은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참 많은 녀석들과 먼지를 먹어가며 운동장을 뛰어다니곤 했다. 어쩌다 누군가 가져온 하드볼이 너무도 신기하기만 했던 그 시절.

그때나 지금이나(?) 사실 나는 퍽 순진한 축이어서 어른이 되면 뭔가 굉장히 다이나믹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으리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being 어린이'라는 게 너무 따분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컸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지금은 어른이 된다는 건 지루함과 따분함을 견디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라는 걸 알고 있다. 자신이 저지른 모든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도.

리틀 야구왕은 우리네 어린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때 그 시절을 그리고 있다. 야구를 좋아하는 아버지, 남의 집 마당에 떨어진 야구공, 집을 지키는 무서운 불독.

아, 딱 하루만 다시 어린이로 살 수 있다면…


6.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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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s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초컬릿을 떠올리겠지만 양키스 팬이라면 미키 맨틀과 로저 매리스로 이어지는 1961년 양키스 타순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역사 자체가 스포일러니까 말하자면 이 시즌 로저 매리스는 베이브 루스가 가지고 있던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갱신했다.

하지만 Mr. 뉴욕은 매리스가 아닌 맨틀의 차지였다. 여전히 에이로드 대신 데릭 지터가 Mr. 뉴욕 아닌가. 양키 스타디움에서 매리스가 홈런을 날려도 돌아오는 건 야유와 협박 편지뿐이었다.

게다가 베이브 루스의 광팬이던 MLB 커미셔너는 경기수 차이를 이유로 로저 매리스가 신기록을 세워도 인정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야구에서 별표(*)는 비공식 기록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결국 로저 매리스는 자신이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깨뜨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숨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맨틀의 삶은 편하기만 할까? 만약 그랬다면 이 TV용 영화가 6위나 차지할 수 없지 않았을까?


5. 더 팬 The F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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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 가장 또렷하게 기억나는 대사라면 "야구는 그래도 인생보다 공평하잖아. 희생타는 타수에서 빠지니까." 그리고 로버트 드 니로가 "바비"를 부를 때 광기 어린 눈빛.

기본적으로 <더 팬>은 사랑이 폭력으로 변하는 지점에 대해 고찰한 작품이다. 야구 선수와 팬 사이의 관계를 설정하기는 했지만 사실 이런 증상은 우리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죽이고 싶을 만큼 사랑한다는 말은 확실히 거짓이 아니다. 그럼에도 죽이려 드는 자는 굳게 믿는다. 나는 다만 너의 성공을 간절히 기도했을 뿐이라고 말이다.

때문에 자신이 사랑의 주어 역할을 맡을 때는 목적어가 느끼는 위협이 쉽사리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완벽한 자기 세뇌고 몽롱한 중독이다. 헤어나오려면 얼마든 헤어나올 수 있다고 믿지만 결코 빠져 나올 수 없는 날카로운 사랑의 늪.

그래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딱 하나다. "고맙다는 한 마디면 되는데…" 미안하다. 당신의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아서. 미안했다. 죽일 만큼 당신을 사랑해서.


4. 루키 The Roo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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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데니스 퀘이드가 출연한 전형적인 디즈니 영화다. = '니가 무슨 짓을 저질러도 나는 절대 감동받지 않을 테야.' 하고 쓸데없이 독한 마음을 품지만 않는다면 적당히 짜~안 한 기분으로 즐길 수 있는 영화다.

감동의 포인트는 역시나 메이저리그 승격을 통보받는 장면. 감독이 불러서 최고 유망주가 빅 리그에 승격하게 됐는데 그 친구가 퀘이드를 많이 따르니 직접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는 같이 갈 준비도 하라는 지시. 나름 낚시꾼을 자처한다면 꼭 배워둘 필요가 있는 스킬이다.

이 기쁜 소식을 들은 퀘이드 역시 곧바로 응용 낚시에 돌입한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텍사스에서 경기가 있는데 정장을 좀 가져와 줄 수 있겠냐?"고 물은 것.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떤 이유로 아내가 망설였던 것 같다. 그때 퀘이드의 대사 "빅 리그에서는 정장을 입어야 하거든.'

한 가지 더. "베이브 루스를 명예의 전당으로 보내준 음료"는 무엇이었을까? 영화에 따르면 정답은 "맥주"다.


3. 19번째 남자 Bull Dur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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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얼마 전만 해도 야구 선수들이 섹시함의 심볼이던 시절이 있었다. 야구 선수들은 섹스의 주어로서 또 목적어로 오롯이 존재했다. 특히 젊고 매력적이며 성공에 굶주린 마이너리거들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그럼 은퇴를 코앞에 둔 늙은 포수는 어떨까? 사실 그에게 주어진 역할은 다만 젊은 유망주의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는 것뿐이었다. 처음부터 너무도 명백했던 그의 역할. 하지만 욕망의 굴레는 이 늙은 수컷을 비껴가지 못했다. 다만 세월은 젊은 투수를 다루는 것보다 욕망을 부정하는 게 훨씬 어렵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려줬을 뿐이다.

그래서 <19번째> 남자는 우리 인생에 야구란 무엇인가 하는 점을 제법 진지하게 보여준다. 물론 여전히 모르겠다. 메이저리그에서 그저 그런 백업 유틸리티 선수로 커리어를 마감하는 것과 아무도 모르는 마이너리그 홈런왕으로 남는 것 가운데 어떤 게 더 부러운 일인지 말이다.

인정하자. 우리 대부분은 그렇게 2류로 늙어갈 것이다.


2. 슈퍼스타 감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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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원작은 소설가 박민규가 쓴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다.

그리고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의 낱말을 통틀어 '삼미 슈퍼스타즈', '태평양 돌핀스'보다 나를 더 설레게 만드는 낱말은 그리 많지 않다. 그나마 대등하게 견줄 수 있는 낱말은 '꿈' 정도?

<슈퍼스타 감사용>은 이 두 가지를 모두 다루고 있다. 평범한 블루칼라 노동자가 프로야구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꾸는 이야기.

하지만 결국 당대 최고의 투수 박철순에게 패할 수밖에 없던 엄연한 현실. 그리고 흘리던 그 뜨거운 눈물.

때로 자기 꿈의 실현이 고작 패전 투수가 돼 버리고 마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그래, 울어라, 감사용. 내가 같이 울어줄 테니까…


1. 내츄럴 The Natu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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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가 쓴 <퀴즈쇼>에서 외할머니는 세상엔 조심해야 할 여자가 있다며 이렇게 말한다.

"첫째, 논개 같은 여자.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절대 알 수 없어. 갑자기 돌변해서 사내를 껴안고 절벽 아래로 뛰어 들지. 둘째, 황진이 형. 똑똑하고 재주있고 예쁘지. 그렇지만 영원히 내 여자로 만들 수가 없어."

셋째는 물론 바로 내 앞에 있는 여자다.

<내츄럴> 역시 우리에게 마찬가지 질문을 던진다. 글렌 클로즈, 바바라 허쉬, 킴 베이싱어 가운데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지 묻는다. 여러분이라면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글쎄, 아마 누구를 골라도 후회의 타이밍과 질량만 다른 건 아닐까?

버나드 맬라버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사실 군데군데 원작과 다른 방향으로 스토리가 전개 된다.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대목은 라스트 신이다. 동시에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역시 바로 그 라스트 신이다.



여러분 인생의 최고 야구 영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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