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LG는 24일 SK 경기에서 승리했지만 4위 두산도 이기면서 4강 트래직넘버가 0이 됐다. 이미 우리 프로야구 최다 연속 시즌 포스트시즌 실패 기록을 가지고 있던 LG는 이로써 기록을 두 자릿수로 늘렸다.

반타작만 해도 '가을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게 우리 프로야구. 그런데도 지난 10년 동안 LG 트윈스는 6-6-6-8-5-8-7-6-6-7위에 그쳐야 했다. 도대체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동안 이 팀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도련님 야구

사실 LG는 명문 팀이 갖춰야 할 거의 모든 걸 갖춘 팀이다. 서울은 대한민국 인구 5분의 1이 사는 압도적인 시장이다. 당연히 팬 층도 두텁고 스타 선수도 많다. 팬들이 '구느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구본부 회장의 야구 사랑도 각별하다. 단 하나 성적이 빠졌을 뿐이다.

그 성적마저 1990년대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1990년대 LG는 한국시리즈 우승 2번, 준우승 2번을 차지할 정도로 강팀이었다. 그 중심에 정삼흠 김용수 이상훈 서용빈 유지현 김재현 같은 스타 선수들이 있었다.


이광환 감독 시절 LG가 추구한 '신바람 자율야구'는 신세대의 상징 같은 코드였다. 스타 선수들의 당당함과 '할 땐 할고 놀 땐 논다'는 이미지는 수많은 X세대를 트윈스 마니아로 만들었다.

하지만 2002 시즌을 마지막으로 김성근 감독이 떠나고 2004년 김재현이 SK로 옮기면서 LG는 전혀 다른 팀이 됐다. 여전히 잘 생긴 얼굴로 여성 팬을 모으는 스타들은 많았지만 대부분 도련님처럼 너무 얌전했다. 투지가 사라졌던 것. 팀 내 최고참 최동수가 "운동장에서는 싸가지 없게 굴어도 된다"고 말한 건 그래서 예삿말이 아니다.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적어도 지난 7년 간 LG의 DTD가 시작되면 야구팬들은 '아, 이제 여름이구나'하고 느꼈다. DTD는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Down Team is Down)'는 뜻을 담은 야구팬 속어다. 한 LG팬은 "아예 시즌 초반부터 못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떻게 해마다 이렇게 똑같은 패턴을 반복할 수 있는 걸까. 정답은 간단하다. '성공의 기억'을 공유하는 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팀이든 한 시즌을 치르다 보면 위기가 온다. LG는 이럴 때 선수단에 '브레이크'를 잡아 줄 선수가 없었다.


김재현이 필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치명적인 '탈쥐효과(LG를 떠난 선수는 성공한다는 야구팬 속어)'를 안긴 선수는 김재현이다. 그가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었을 때 구단이 그에게 굴욕적인 옵션만 요구하지 않았다면 LG는 7년 동안 리더를 찾아 헤맬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LG는 절대 김재현을 그렇게 보내선 안 됐다.


김재현이 없었다면 SK는 1990년대 빙그레처럼 신흥강호로 떠오르고도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을지도 모른다. 김재현이 자기 타석수를 희생하면서도 중심을 잡았기에 선수단이 한 데 뭉칠 수 있었다. 주인공까지는 아니더라도 SK가 세 차례 우승하는 데 김재현이 훌륭한 촉매였다는 사실은 부인하면 안 된다.

물론 최동수의 위 발언이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야구에 대한 그의 열정을 깎아내리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러나 최동수는 아무리 잘 쳐줘도 B급 선수일 뿐이다. 김재현이 "운동장에서는 싸가지 없어도 된다"고 말하는 것과 최동수가 말하는 건 다르다.

실패의 기억은 모두를 조급하게 했다. 어느새 고참 선수들도 시즌이 끝나면 자기 기록 챙기기에만 급급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그 사이 네 번째 감독을 영입했지만 돌아온 건 신인 투수를 타석에서 데뷔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사오자 LG, 못 키우자 LG

올 시즌 현재까지 규정타석을 채운 LG선수는 4명. 이 중 20대는 오지환(22)뿐이다. 300타석으로 범위를 넓혀도 서동욱(28)이 새로 등장할 뿐이다. 최근 9년 간 6-6-6-8-5-8-7-6-6위를 기록했지만 눈에 띌 만한 젊은 타자 하나 제대로 키우지 못했던 것이다. 이는 프런트의 명백한 직무유기다.

자원이 없었던 건 아니다. 2년차 때 KIA로 트레이드 된 이용규는 국가대표 1번 타자로 성장했고, 김상현은 2009년 최우수선수(MVP) 타이틀을 차지했다. 지난해 넥센으로 옮긴 박병호도 올 시즌 만개했다. 같은 팀 서건창 역시 LG 구단 소속 그 누구도 가능성을 보지 못한 케이스다.


야수 쪽에선 '탈쥐효과'가 문제였다면 투수 쪽인 '입쥐효과'가 문제였다. FA로 데려온 진필중(2003년)과 박명환(2006년)은 문자 그대로 재앙이었다. 지독한 시행착오를 겪은 뒤 LG는 투수 키우기 작업을 시작했다. 2010, 2011년 드래프트 때 LG는 1~4라운드를 모두 투수로 채웠다. 그러나 캐주얼 팬이 이름을 알 만한 선수는 한희, 신정락, 임찬규, 최성훈 정도가 전부다.

한 마디로 야수 쪽이나 투수 쪽 모두 선수를 보는 안목을 갖춘 코칭스태프가 드물었다는 뜻이다. 아니, 지난 10년 동안 감독을 네 번이나 바꾼 팀에 그럴 만한 코칭스태프가 남아 있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색깔이 서로 다른 감독들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LG는 팀 컬러가 없는 팀이 됐다.


LG, 내년은 다를까?


물론 올해도 실패했다. 10년 동안 성적도 리빌딩도 모두 실패한 팀이라면 "지구가 망할 때까지도 우리는 안 될 거야"하고 생각하게 되는 게 당연한 일.

그러나 야구 관계가 중에서는 "올해는 LG가 본 궤도를 찾아가는 가능성을 본 한 해"라고 평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현장과 프런트 사이를 가로 막고 있던 극단적인 엇박자가 조금씩 맞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드래프트만 봐도 변화를 느낄 수 있다. LG는 지난해 드래프트 때 1라운드서 포수 조윤준을 지명했다. 올해는 내야수 강승호였다. 젊은 야수가 필요하다는 점을 공감하고 전략적인 드래프트에 나선 것이다. 아직 기대만 못하지만 1, 2군을 오가는 선수들이 늘면서 경쟁 구도가 펼쳐지는 것 역시 긍정적 신호다.

투수 쪽에서도 이승우, 최성훈, 임정우 같은 새 얼굴이 등장했다. 이동현이 돌아왔고 유원상은 가을이 아닌데도 잘했다. 중간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봉중근도 마무리로 연착륙했다. 게다가 이제 이 팀은 외국인 투수도 제법 뽑는 팀이 됐다.

일단 내년 시즌 반등할 계기는 갖춰진 셈. 문제는 해마다 그랬다는 것이다. LG는 올해 전지 훈련 때도 '체질 개선'을 외칠 것이다. 그래야 한다는 건 모두가 아는 당위. 과연 지명타자 출신 감독이 선수단 전체에 체질 개선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올 스토브리그 LG의 움직임을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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