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오늘자 기사에 박재홍을 '프로야구에서 알아주는 호타준족'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직접 그의 플레이를 두 눈으로 본 팬들이라면 부정하는 이가 없을 표현. 데스킹을 거치기 전에는 '프로야구 최고의 호타준족'이라고 돼 있었습니다. 기사를 쓸 때는 자료가 없어 "최고라는 표현을 쓰는 건 무리가 아니냐"는 데스크 지적에 반박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 자료를 뒤져보니 예상대로 박재홍이 최고 맞았습니다.

호타준족에 열광하는 건 전 세계 야구팬의 공통분모. 세이버메트릭스(야구통계학)의 아버지 빌 제임스는 홈런과 도루의 조화평균을 가지고 이를 지수화했습니다. 이를 흔히 파워-스피드 지수(PSN·Power Speed Number)라고 부릅니다. 한국 프로야구 31년을 통틀어 이 숫자가 가장 높은 선수가 바로 박재홍입니다.

순위 선수 홈런 도루 PSN
1 박재홍(현대-KIA-SK) 300 267 282.5
2 이종범(KIA) 194 510 281.1
3 양준혁(삼성-해태-LG-삼성) 351 193 249.1
4 송지만(한화-넥센) 309 165 215.1
5 이순철(해태-삼성) 145 371 208.5
6 장종훈(한화) 340 122 179.6
7 박용택(LG) 136 260 178.6
8 홈현우(해태-LG-KIA) 188 163 174.6
9 김성한(해태) 207 143 169.1
10 이병규(LG) 153 144 148.4

굳이 한명 한명 설명하지 않아도 현역시절 호타준족 이미지를 보여준 선수들이죠. 20(홈런)-20(도루) 클럽, 나아가 30-30 클럽에 이름을 올렸던 선수들. 이 선수들 뒤로는 김재현(LG-SK·146.3) 장성호(KIA-한화-롯데·134.8) 데이비스(한화·131.2) 이호성(KIA·126.6) 김상호(OB-LG·125.8) 등이 뒤따릅니다.

그런데 사실 이종범은 일본 진출로 국내에서 뛴 시즌이 짧기 때문에 이렇게 누적기록으로 PSN을 구하면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박재홍은 17시즌을 소화했고 이종범은 프로야구만 따지면 이보다 한 시즌이 적게 뛰었습니다. 10시즌 이상 뛴 선수를 대상으로 이렇게 평균을 내면 이종범과 박재홍이 자리를 바꿉니다.

순위 선수 PSN 합계 연수 PSN 평균
1 이종범(KIA) 281.1 16 17.6
2 박재홍(현대-KIA-SK) 282.5 17 16.6
3 박용택(LG) 178.6 11 16.2
4 이순철(해태-삼성) 208.5 14 14.9
5 양준혁(삼성-해태-LG-삼성) 249.1 18 13.8
6 송지만(한화-넥센) 215.1 17 12.7
7 김성한(해태) 169.1 14 12.1
8 이병규(LG) 148.4 13 11.4
9 홍현우(해태-LG-KIA) 174.6 16 10.9
10 이호성(해태) 126.6 12 10.6

10시즌 미만 현역 선수 중에서는 박재홍의 팀 후배 최정이 13으로 1위입니다. 2위 역시 팀 후배 정근우(10.4)였는데 이 네이버 투표에는 후보군에서도 빠져있네요. 평균 PSN 10을 넘기는 10년차 미만 현역 선수는 이 둘밖에 없습니다. 그 다음은 안치홍(KIA·9.7), 이어서 전준우(롯데·9.5) 등입니다.

네이버 후보군 이야기를 좀더 하자면 김주찬(KIA·8.3)은 한 시즌 평균 홈런이 5개도 안 되고 강정호(6.5) 박병호(6.1·이상 넥센)는 아직까지는 한 시즌 반짝이죠. 1979년생 박용택이 앞으로 지금까지 커리어(136홈런)보다 홈런을 더 많이 칠 수 있을까요? 나성범은 아직 1군 무대에서 뛴 적이 없기 때문에 그 무엇도 자신할 수 없는 상황.

정근우도 300-300이 8시즌 동안 통산 홈런이 50개밖에 안 돼 300-300은 쉽잖아 보입니다. 반면 최정은 일단 홈런을 126개나 쳐뒀습니다. 도루는 88개. 게다가 1982년생 정근우가 고려대 출신인데 비해 최정은 1987년생 고졸입니다.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한 주자인 상황.


박재홍도 자기 후계자로 최정을 꼽았습니다. 박재홍은 기자회견 자리에서 최정을 두고 "다 좋은데 몸에 공을 너무 자주 맞는 게 걱정된다. 자꾸 공을 맞다 보면 공에 대한 공포심이 생겨 제대로 타격을 할 수 없다"며 "언젠가 정이한테 '너 공 하나 맞을 때마다 타율이 2리 씩은 내려간다'고 한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박재홍이 못 다 이룬 꿈을 최정이 이룰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과연 그때는 언제가 될까요. 7년 반 전 썼던 이 글에서 숫자를 키워 300-300 축하 글을 꼭 쓰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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