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2011년 5월 12일(공교롭게도 오늘이네요) 대구 방문 경기에서 SK 선발 투수 송은범(사진 왼쪽)은 삼성 톱타자 배영섭에게 공 5개를 던져 내야 안타를 내주고 곧바로 고효준(사진 오른쪽)과 교체됐습니다. 송은범은 1회초에 타자들 공격을 하고 있을 때 연습 투구를 하면서 팔꿈치 통증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규칙을 따르다 보니 한 타자를 상대해야 했던 겁니다.

선발 투수는 일단 한 타자 상대 후, 야수는 곧바로 교체 가능

지난 번에 우리는 구원 투수가 일단 마운드에 오르면 반드시 △한 타자를 상대하거나 △공수교대가 될 때까지 공을 던져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선발 투수는 어떨까요? 선발 투수도 똑같은 기준을 적용합니다. 야구 규칙 3.05(a)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3.05(a) 4.01(a) 및(b)에 따라 주심에게 건네 준 타순표에 기재 되어있는 투수(선발 투수)는 상대팀의 첫 타자 또는 그 대타자가 아웃되거나 1루에 나갈 때까지 투구할 의무가 있다. 단, 그 투수가 부상 또는 질병으로 투구가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주심이 인정하였을 때는 교체할 수 있다.

그러니까 선발 투수는 일반적으로 한 타자는 상대하고 내려가야 합는 겁니다. 역으로 이 규정을 악용해 '위장 선발 투수'를 내는 일도 예전에는 종종 있었습니다. 2011년 오늘, 류중일 삼성 감독도 어쩌면 위장 선발 투수의 기억을 떠올렸는지 모릅니다.

김성근 SK 감독은 2009년 9월22일 문학 삼성 경기서 송은범을 선발 등판시켰습니다. 그러나 송은범은 공 5개만 던지고 마운드에서 내려왔죠. 뒤를 이은 투수는 이번에도 고효준. 이날 SK는 16연승을 장식했습니다. 김 감독 실제 의도가 어땠든 삼성으로선 '꼼수'라고 볼 만했던 상황. 류중일 삼성 감독이 "송은범이 정말 못 던질 정도인지 확인할 수 없다"고 주장한 데는 이런 사연이 숨어 있던 겁니다.

그럼 선발 로스터에 이름을 올린 타자들은 어떨까요? 주심이 '플레이볼'을 선언하고 나서 곧바로 '타임'을 불러 볼데드 상황을 만들면 얼마든 새로운 선수를 투입할 수 있습니다. 야구 규칙 3.03은 "선수의 교체는 볼데드일 때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돼 있기 때문입니다.


야구 규칙 옥에 티, 지명타자 교체

하지만 예외가 있습니다. 바로 지명타자입니다. 지명타자는 한 투수를 반드시 상대한 뒤에만 교체될 수 있습니다. 야구 규칙 6.10ⓒ①은 이 내용을 명시해두고 있습니다.

6.10ⓒ지명타자의 교체 ①지명타자에도 대타를 기용할 수 있다. 이때 그 대타자 또는 그와 교체된 선수가 지명타자가 된다. 그러나 경기 전에 제출된 타순표에 기재된 지명타자는 상대팀 선발 투수가 교체되지 않는 한 그 투수에 대하여 적어도 한 번은 타격을 끝내야 한다.
 

문제는 이 뒤에 "단, 그 타자가 부상 또는 질병으로 타격이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주심이 인정하였을 때는 교체할 수 있다"는 내용이 없다는 겁니다. 이 구절을 그대로 따르자면 지명타자는 타순표 교환 후에 부상을 당하더라더도 한 타석은 들어서야 하는 거죠. 그래서 태평양 하득인은 타석에 들어서 스윙하다가 투구에 손을 맞아, 해태 박철우는 연습 도중 타구에 턱을 맞아 다쳤지만 타석에 들어서 삼진을 당해준(?) 다음에야 병원으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1995년 6월 23일 잠실에서는 다른 풍경이 나왔습니다. 지명타자로 나선 LG 4번 한대화는 자기가 친 파울 타구가 잇따라 왼쪽 다리를 때려 그대로 경기장에 누워 버렸습니다. 이에 주심이 상대팀 쌍방울 김우열 감독 대행에게 양해를 구했고, 김 대행이 이에 응해 LG는 최훈재를 대타로 내세울 수 있었습니다.

규칙을 문자 그대로 적용했더라면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야구 규칙에는 '무엇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구절도 들어 있습니다.

5.10(h) 심판원은 플레이가 진행되고 있는 도중에 "타임"을 선언하여서는 안 된다. 단, 5.10(b) 및(c)항에규정된 경우는 예외이다. [주] 선수의 생명과 관계되는 중대하고 긴박한 사태라고 심판원이 판단하였을 때는 플레이가 진행 중이더라도 타임을 선언할 수 있다. 그 선언으로 볼데드가 되었을 경우 심판원은 플레이가 어떤 상황으로 진행되었을 것인가를 판단하여 볼 데드 뒤의 조치를 취한다.

여기 등장하는 5.10(c)는 "선수나 심판원에게 사고가 일어나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었을 경우" 볼 데드를 선언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이 구절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한대화 사례 때처럼 부상이나 질병 등에는 예외를 허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람 나고 야구 났지, 야구 나고 사람 난 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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