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프로야구 kt 김재윤(25·사진)은 2008년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제23회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대회 우승 멤버입니다. 그런데 이 대회 지휘봉을 잡았던 이종운 롯데(당시 경남고) 감독은 쉽사리 김재윤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주전 포수로 예상했던 경남고 김재민(24·현 상무)이 부상으로 뛰지 못해 김재윤이 전 경기를 소화했는데 말입니다.


맞습니다. 이 감독이 헷갈려 한 건 김재윤이 더 이상 포수가 아니었기 때문. 김재윤은 17일 수원 롯데 경기에서 1군 무대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2-6으로 뒤진 8회초 마운드에 오른 김재윤은 시속 150㎞ 빠른 공을 던지면서 오승택(24)-임재철(39)-문규현(32)을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마운드에서 내려갔습니다. 올 1월까지 포수였던 선수라는 점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확실히 인상적인 데뷔였습니다.


이 감독은 경기 후 "주위에서 그 김재윤이 아니라고 해서 잠시 헷갈렸다"고 웃으며 "(2008년 대회 때) 도루 저지도 잘했고 준결승전에서 결승타도 때렸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큰 관심을 보여 어떤 선택을 내리든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게 기억이 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김재윤은 그해 신인 지명회의(드래프트)에서 부름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를 두고 이 감독은 "타격이 약해 관심을 보이는 구단이 없었다"고 기억하는 반면 일찍부터 해외진출설이 나돌아 아예 지명 후보에서 제외했다는 말도 들립니다. 결과적으로는 둘 다 맞습니다. 김재윤은 애리조나하고 계약하며 메이저리거를 꿈꿨지만 결국 마이너리그 A+에서도 OPS(출루율+장타력) .308밖에 되지 않는 타격이 발목을 잡아 2012년 방출 통보를 받았으니 말입니다.



김재윤은 한국으로 돌아와 의장대에서 군 복무를 마치면서 '해외파 복귀 2년 유예 기간'을 보냈고 지난해 8월 25일 열린 2015년 신인 드래프트 때 2차 지명 특별 우선 지명자 자격으로 kt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재윤은 포수였습니다.


김재윤은 "지난 시즌 막바지에 (조범현 kt) 감독님께서 '투수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셨다. 고민을 하다 결국 스스로 (투수를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습니다. 그 뒤 올 1월부터 본격적으로 투수 훈련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포수 시절부터 어깨 하나는 알아주던 김재윤은 그리 어렵지 않게 스피드건에 150㎞를 찍었습니다.


김재윤 "포수를 할 때는 도루를 저지했을 때 정말 기뻤는데 지금은 삼진을 잡아낼 때 정말 큰 희열이 온다"며 "처음에는 투수 훈련을 시작했을 때는 팔 쪽에 무리가 와서 어깨하고 팔이 많이 아팠다. 또 투수들이 체력 훈련을 많이 하는데 처음에는 엄청 힘들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이어 "그래도 지금은 투수로 공을 던지는 것이 더 재미있다.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이 투수인 만큼 (포수에) 미련을 갖지 않으려고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계속해 "나는 힘으로 타자를 찍어 누르는 스타일에 가깝다"며 "긴 이닝보다 짧은 이닝을 던지는 게 나에게 더 맞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투수 전향 넉 달 만에 "오승환(33·한신) 선배가 롤 모델"이라고 말할 만큼 배짱도 두둑하지만 데뷔전이 떨렸던 건 어쩔 수 없는 일. 김재윤은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서 본 건 처음이었다. 정말 많이 긴장했었다"고 말했습니다.


김재윤은 데뷔전부터 28일 LG 경기까지 6경기에 나서 상대 타자 16명에게 볼넷 1개만 내주고 삼진 9개를 잡아내며 팬들에게 자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무실점 행진이 끝난 건 29일 수원 경기. 3-4로 뒤진 8회초 마운드에 오른 김재윤은 두산 양의지(28)에게 데뷔 첫 안타를 허용했고, 1루수 장성호(38)의 아쉬운 수비에 이어 본인이 송구 실책을 저지르면서 결국 4실점(2자책점)하고 말았습니다.


김재윤은 "아직 경험이 많지 않다 보니 긴박한 상황에 대한 대처가 많이 미흡한 것 같다. 경험을 많이 쌓아서 그런 상황에서도 심적으로 여유를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변화구를 추가 장착해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일. 현재 김재윤은 슬라이더와 스플리터도 던질 줄 알지만 빠른 공에 비하면 위력이 떨어지는 편입니다.


그래도 당면과제는 역시 1군에서 살아남기. 김재윤은 "다치고 않고 kt 일원으로 1군에서 끝까지 마무리를 하고 싶다"며 "아직 모든 것을 배우는 중이다. 포수였기 때문에 포수를 무조건 믿고 던지겠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kt가 안방으로 쓰는 수원구장에서는 이미 포수에서 투수로 포지션을 바꿔 인생을 바꾼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바로 '황장군' 황두성(39·현 삼성 코치)이죠. 김재윤이 태평양을 건너서도 이루지 못한 꿈을 황두성처럼 18.44m 반대편에서 이루게 되면 kt도 더 밝은 미래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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