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메이저리그 볼티모어는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볼티모어가 잘했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그래도 무조건 치졸하다고 비판하기 전에 한번 볼티모어 관점에서 김현수(28·사진) 사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도대체 왜 김현수를 쓰지 않으려는 걸까요? 첫 번째 정답은 더 까다로운 조건으로 계약한 더 좋은 선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25인 로스터에서 빼면 바로 빼앗기는 룰 5 드래프트 픽

김현수 대신 개막전 25인 로스터에 들어간 선수는 조이 리카드(25·사진)입니다. 벅 쇼월터 볼티모어 감독이 직접 자기 방으로 불러 '웰 컴 투 더 쇼' 소식을 알렸다고 합니다. 같은 팀 댄 듀켓 단장도 "김현수를 25인 로스터에서 제외할 계획이며 리카드가 주전 좌익수를 맡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리카드는 지난해 12월 '룰 5 드래프트'를 통해 탬파베이에서 데려온 선수입니다. 메이저리그 선수 선발 규정 5조에 관련 내용이 들어 있어 룰 5 드래프트라고 부르는 이 제도는 재능 있는 선수가 마이너리그에서 마냥 썩는 일을 방지하는 게 목적입니다. (흔히 '신인 지명회의'라고 부르는 그 드래프트는 같은 이유로 '룰 4 드래프트'라고 부릅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2차 드래프트'라는 이름으로 이를 흉내내기도 했죠.


목적이 목적이니만큼 룰 5 드래프트로 데려온 선수는 다음 시즌 내내 25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고 있어야 합니다. 또 부상자 명단(DL)에 이름을 올린 기간도 90일을 넘길 수 없습니다. 시즌 중 구단에서 이 선수를 25인 로스터에서 제외하면 이전 소속 구단 등에서 다시 데려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룰 5 드래프트로 데려온 선수는 (이 정도로 잘할 때) 마이너리그 거부권이 문제가 아닙니다. 팀에서 보류권(保留權)을 유지하려면 25인 로스터 보장 외에는 아예 길이 없습니다. 마이너리그로 내리는 순간 바로 빼앗기니까요. 대신 마이너리그 거부권이 있는 경우는 선수가 동의만 하면 마이너리그로 내려 보내 좀더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구단 마음대로 내려보내지 못한다는 거지 아예 내려 보내면 안 되는 게 아니니까요.



"야구는 스포츠라기엔 너무 비즈니즈적이고 비즈니스라기엔 너무 스포츠적이다."

그럼 기록을 한번 볼까요? 리카드는 31일까지 시범경기에 26번 출장해 타율 .390/출루율 .471/장타력 .576을 기록했습니다. OPS(출루율+장타력)를 계산해 보면 1.047입니다. 김현수는 .182/.229/.182로 OPS .411이 전부입니다. 리카드 출루율이 김현수 OPS보다 높습니다. 게다가 좌익수 수비만 가능한 김현수와 달리 리카드는 중견수도 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마이너리그에서 도루 23개(성공률 79.3%)를 기록할 만큼 발도 빠릅니다.


보통 메이저리그 팀 현역 엔트리 25명 중에서 외야수는 많아야 5명. 중견수 애덤 존스(31)하고 우익수 마크 트럼보(30)는 사실상 붙박이를 확보한 상황이니 패스. 나머지 외야 자원인 놀란 레이몰드(33)는 스프링캠프에서 OPS .837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외야는 물론 내야 유틸리티 플레이어로도 활용 가능한 라이언 플래허티(30)는 .937입니다. 김현수 대신 누구를 내려야 할까요?


김현수는 마이너리그 거부권이 있기 때문에 일단은 버틸 수 있습니다. 지난 시즌 LA 다저스에서 알렉스 게레로(30)도 그렇게 버텼습니다. OPS .695가 전부였지만 그래도 230타석이나 얻었습니다. 현재 분위기로는 김현수가 이렇게 타석을 많이 얻기 보다는 방출당할 확률이 더 높겠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거꾸로 마이너리그 거부권이 있다고 무조건 이 권리를 행사하는 것도 아닙니다. 케이시 맥게히(33)는 메이저리그에서 5년 이상 뛴 베테랑이라 자동으로 마이너리그 거부권이 있었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 뛴 지난해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라는 구단 지시에 동의했습니다. 이 전례가 있는 만큼 메이저리그 선수 노조에서 김현수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고 해도 뾰족한 대안을 제시하기는 어려운 느낌입니다.


게다가 AAA로 내려간다고 해도 김현수가 출장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김현수가 AAA팀 노퍽으로 내려간다면 크리스찬 워커(25)로부터 주전 좌익수 자리를 빼앗아야 합니다. 워커 말고도 다리엘 알바레스(28), 알프레도 마르테(27)자비에르 에이버리(26)헨리 우루티아(29), 훌리오 보본(30)L J 호스(26)에 이르기까지 노퍽에는 외야 자원이 차고 넘칩니다.       



볼티모어 구단 내부적으로는 스카우트 실패 인정?

현재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볼티모어는 김현수 스카우트가 실패였다는 쪽으로 서둘러 결론을 내리는 분위기입니다.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를 둘러 보고 온 한 야구 전문가는 제게 "김현수는 기록도 기록이지만 캠프 내내 타구 질이 참 좋지 못했다. 라인드라이브 타구뿐 아니라 땅볼 타구도 문제였다. 메이저리그는 내야 수비가 국내보다 좋다 보니 한국이었다면 안타가 될 타구가 모두 잡히더라. 그러면서 구단 평가도 달라지는 걸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또 볼티모어 지역 일간지 '볼티모어 선'은 강정호(28·피츠버그)는 운동 능력, 박병호(30·미네소타)는 장타력 같은 개인적인 신체 능력이 장점이라 적응에 시간이 걸리지만 김현수가 장점을 보이는 참을성과 출루 능력은 메이저리그 투수들하고 붙여 보면 금방 안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올해는 기록이 없지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했을 때 PFX(Pitch F/X)에 남은 자료를 보면 김현수는 빠른 공에 대한 대처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수준이었습니다.


정말 구단 평가가 이렇다면 에이전트를 통해 "700만 달러(약 79억8350만 원) 받고 나갈 테니 풀어달라"고 얘기하는 게 김현수에게는 제일 유리한 선택입니다. 현재 분위기로는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게 저 요청하고 같은 결과로 나타나겠죠. 그런데 700만 달러는 볼티모어가 내년까지 계약한 선수 중에서 7번째로 비싼 몸값입니다. (물론 이 순위는 갈수록 내려갈 겁니다.) 볼티모어로서는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한 푼이라도 더 챙기려고 하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특히 한국이라는 시장이 열려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볼티모어에서 보여준 행태에 동의한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구단이 툭 터놓고 선수하고 얘기하기 전에 언론 플레이부터 하는 건 참 칭찬하기 힘든 일입니다. 다만 볼티모어에서 김현수에게 덜컥 메이저리그 로스터를 보장하기도 쉽지 않은 게 엄연한 현실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뿐입니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버려야 하는 상황에서 아주 미숙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는 거죠. 과연 김현수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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