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타자(打者)는 말 그대로 '때리는 놈'이다. 그리고 타석(打席)이라는 말 역시 '때리는 곳'이라는 의미다. 모름지기 타자란 타석에 들어서면 때려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손이 눈보다 빨라야만 타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 그건 타자가 아니라 타짜든가?

그런데 참을성이라는 놈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묘하게 꼬여 버렸다. 이제 눈이 손보다 빨라야 한다고 강조하는 분위기가 일기 시작한 것이다. 말하자면 '아귀' 같은 존재들이 진짜 타짜로 인정받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느 세계나 한쪽의 진보는 라이벌의 진보를 낳는다. 그리하여 오히려 참을성을 역이용하는 존재들이 생겨나고 있다.

시초는 마크 벨혼이었다. 아니, 그건 굳이 오마 비스켈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알고 있는 얘기다. 볼넷 아니면 삼진. 그의 타석은 이 기록이 거의 전부다. 사실 그는 라인드라이브성 타구를 때려내는 데 그리 큰 재주를 가진 선수가 아니다. 하지만 인플레이된 타구가 안타로 연결되는 비율(BABIP)을 알아보면 엄청난 수치가 나오곤 한다. 왜냐? 인플레이되는 타구 자체가 너무 적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 리그에서는 누가 그 주인공일까? 정답은 삼성의 양준혁이다. 삼성은 이번 시즌 67번의 타석에서 아주 '구라'도 치지 않고 '자연빵'으로 상대 투수에 맞섰다. 이 타석에서 양준혁은 방망이를 단 한번도 휘두르지 않은 채 겸허히 결과를 받아들였다. 물론 이 67번의 기회에 고의사구는 포함돼 있지 않다. 고의사구는 이미 패를 다 보여주는 행위가 아니던가? 하지만 영어로 표현해 Intentional unintentional Walk, 앉아서 받기만 했지 그게 고의사구라는 것 상대도 알고, 양준혁도 알았다.

하지만 팀 동료 박한이에게는 의문의 시선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61번의 타석에서 방망이를 한번도 휘두르지 않은 KIA의 장성호는 이해가 간다. 미안하지만 KIA의 3번 타자란 그럴 수밖에 없는 자리였다. 하지만 박한이는 도대체, 왜, 어째서 단 한번도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은 타석이 50번이나 된단 말인가? 헛스윙도 파울도 없이 어떻게 저렇게 많은 타석을 그저 묵묵히 버틸 수 있었단 말인가? 이 미스테리는 여전히 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연히 추측을 해보자면 역시 그의 '버퍼링'에 무슨 해법이 있을 것 같다.

팀을 놓고 볼 때 이상한 팀은 단연 현대다. 이택근(44), 서튼(38), 이숭용(42), 정성훈(35)은 유니콘스 타순의 3~6번에 포진한 이름이다. 그런데 이들 역시 마찬가지로 타석에 등장해 방망이를 단 한 차례도 휘두르지 않고 겸허히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더욱이 강병식 또한 대타로 출전했을 때 5타석에서 방망이를 단 한번도 휘두르지 않았다. 김승관 역시 같은 기록이다. 대타로 나선 타석 가운데서는 이 둘의 기록이 단연 1위다. 대타로 나왔으면 설사 삼진으로 죽더라도 한방 크게 휘둘러 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왜 이들은 자신의 '기술'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투수 쪽 결과를 알아보면 현대 타자들이 자신의 기술을 사용하지 않은 게 아니라 못한 것일 뿐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물론 장원준의 60 타석이 1위 기록이지만 그는 현대 타자들의 수는 읽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현대戰에서 3승 1패 방어율 2.86을 기록한 2위 문동환(48)부터는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그 뒤를 이혜천(44), 랜들(42), 리오스(41), 김명제(37) 등 두산의 주축 투수들이 뒤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확실해진다. 반면 현대에게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KIA 선수 가운데서는 현대와의 경기에 단 한번도 등판하지 않은 김진우(35)만이 홀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여기서 진짜 궁금한 게 생긴다. 국내 프로리그에서 진정 타짜로 소문난 선수는 둘이다. 타자 쪽에서는 한화의 김민재. 그리고 그의 수제자로 꼽히는 롯데의 이상목이 그 주인공이다. 그런 점에서 김민재(26)의 기록은 사실 인정받을 만하다. 강타자도 아니고 하위 타선에 위치해 있으면서 전체 25위를 차지한 건 확실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상목은 겨우 11회로 사실 아쉽다.

그러나 어쩌면 이상목은 오히려 상대가 먼저 자신의 패를 드러내도록 만드는 스타일은 아니었을까? 롯데 투수들의 공을 때렸을 때 상대 타자들은 70.1%가 아웃으로 물러났다. 그런데 이상목의 경우엔 이 비율이 74.7%로 급상승한다. 확실히 이상목의 공을 때려봤자 좋을 일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 풍문이 허튼소리만은 결코 아니었다는 얘기다. 말하자면 이상목은 이미 김민재를 뛰어넘어 청출어람의 길을 걷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 kini 註 ────────

물론, 이 글은 농담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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