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투수에 대해 썼으니 타자에 대해서도 써보자. 그러니까 '90년대 최고의 타자는 누구인지 알아보자는 얘기다. 기준은 이미 투수 편에 소개한 RCAA다. RCAA에 대한 설명이 조금 부족한 듯 싶어서 부연 설명을 하자면, RCAA는 기본적으로 RC를 근간으로 한 메트릭이다. RC는 빌 제임스가 구한 득점 창출 공식이다.

 

그런데 건전지도 아니면서 뒤에 AA가 붙는다. AA는 Above Average 약자다. 말 그대로 리그 평균과 비교해 어느 정도 활약을 선보였는지를 보여주려는 의도다. 여기서 '평균'과 비교하는 건 리그 평균 수준으로 아웃 카운트를 소비할 때 어느 정도 점수를 더 창출할 수 있는지 확인하려는 목적이다. 야구란 결국 아웃 카운트 27개를 먼저 빼앗아 내면 승리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웃을 당하지 않으면서 점수를 많이 얻어낼 수 있는 플레이를 펼치는 것이야 말로 타자들 최고 덕목이다.

한 가지 더 이야기 하고 싶은 건, 수비 능력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최고 '타자'를 뽑자는 얘기지 최고 '야수' 혹은 최고의 '야구 선수'를 논하는 글이 아니라는 얘기다. 수비와 공격을 결합한 NRAA나 WARP 같은 메트릭이 없는 건 아니지만, 수비를 수치로 평가하기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공격 능력만을 평가한 RCAA를 가지고 논의를 계속해 보도록 하자.

 

'90년대에 가장 높은 RCAA를 기록한 선수는 '양신' 양준혁이다. 그 뒤를 근소한 차이로 김기태가 뒤쫓는다. 사실 이 두 선수 기록은 구장 효과에 영향을 받은 오차범위 안에 있다고 봐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 대구는 타자들 구장이다. 전주는 그렇지가 못 했다. 일단 '90년대를 통틀어 가장 대단한 활약을 펼친 타자로 이 둘을 모두 꼽아도 어색할 게 없다.

장종훈은 이 둘과 비교해 조금 떨어진 숫자를 기록했따. 장종훈은 '91년과 '92년에 각각 71, 69이라는 엄청난 수치를 남겼다. 하지만 이후로는 '95년 44를 제외하고는 눈에 띌 만한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화려함에 비해 전성기 자체가 길지 못했던 것이다. 이로써 '90년대 최고의 강자타 자리에서 장종훈은 한 발자국 떨어지게 된다.

이승엽도 마찬가지다. 물론 6 시즌밖에 뛰지 않고도 누적 부문에서 4위를 차지한 건 엄청나게 굉장한 일이다. 그리고 우리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가 이승엽이라는 데에도 이견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90년대로 범위를 한정지으면 최고 타자라고 부르기에 아쉬운 게 사실이다. 올 타임 베스트의 영광을 기다리며 이승엽 역시 '90년대에는 한 발짝 물러서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다시 '괴물' 이종범이다. 사실 '90년대에 가장 높은 단일 시즌 RCAA는 '99년 이승엽(90)의 몫이다. 그 뒤를 이종범의 '94 시즌(84)이 차지하고 있다. 홈런 타자도 아니면서 이 정도 수준을 기록한 건 오직 이종범뿐이다. 홈런을 20개 이하로 때린 타자 가운데 RCAA 2위 기록이 '96 홍현우(54)임을 감안해도 1994 시즌 이종범이 얼마나 괴물이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종범 역시 '90년대에 국내 리그에서 5시즌을 뛰었을 뿐이다. 누적 수치에서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나머지 선수들 모두 적어도 팀내에서 간판이라 불릴 만한 자격을 갖춘 선수들이다. 비록 FA 자격을 얻어 LG로 이적한 이후에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던 게 사실이지만, 홍현우는 분명 기아의 확실한 '4번 타자'였다. 박재홍은 데뷔와 함께 호타준족이 무엇인지를 야구 팬에게 확실히 각인 시켜줬으며, 마해영/김응국 모두 롯데 프랜차이즈 스타다. 우동수 트리오의 핵, 우즈는 외국인 선수로는 유일하게 상위 10걸에 이름을 올렸다.

외국인 선수들은 국내에서 오랜 기간 활동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이들의 활약 자체가 미미했던 건 아니다. 평균 기록으로 알아보면 이 점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평균으로 알아봤을 때 상위 10걸 가운데 절반이 외국인 선수다. 우즈와 로마이어만이 한 시즌 이상을 뛰었을 뿐 모두가 재계약을 하지 못해 누적 순위표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을 뿐이다.

 

1위는 단연 호세다. 비록 한 시즌뿐이었지만 호세는 충분히 강렬했다. 사직구장을 홈으로 쓰면서 거둔 기록이라 더욱 그렇다. 그래서일까? 롯데 팬들은 호세를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니까 '디비디비딥'을 같이 하기 위해서만 호세가 필요했던 게 아니라는 뜻이다. 내년에도 아마 호세만한 용병을 국내에서 보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우즈는 외국인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MVP를 차지할 정도로 인상 깊은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현재도 일본 무대에서 다시 한번 이승엽과 홈런 레이스 경쟁을 펼치며 국내 팬들 관심을 끌고 있다. 쿨바와 로마이어는 각각 '98, '99 시즌 현대와 한화의 우승을 논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선수이다. 샌더스도 낮은 타율 때문에 과소평가 되었을 뿐 안타보다 많은 볼넷과 40개가 넘는 홈런은 그를 '90년대 최고의 타자 가운데 한 명으로 손꼽게 만든다.

 

이제는 결론을 내릴 때가 됐다. 꾸준함에 있어선 그 누구도 양준혁을 따라오지 못한다. 그건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반면 이종범은 너무도 화려했다. 이종범은 장종훈에 이어 스포츠 신문에 자기 기록표를 따로 나오게 만든 두 번째 인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진출 등의 이유로 국내 무대에서 보여준 것만 놓고 따지면 양준혁에 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소 싱겁지만, 사실 취향 차이라고밖에 볼 수 없을 것 같다. 이종범이 국내에서만 계속 뛰었다면 어떤 성적을 남겼을까? 이 쪽으로 상상의 손길이 뻗친다면 이종범이 '90년대 최고의 타자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보여준 것 자체만으로는 확실히 양준혁이 우위다.

 

그러니까 '90년대 우리 프로야구 최고의 타자는 확실히 '양준혁'이다. 당시 한국인 야구 선수 가운데 최고의 타자는 이종범일 확률이 더 높긴 하지만 말이다. '90년대 최고의 타자는 누구인가? 아마 두 선수가 은퇴하고 꽤 오랜 시간이 흐른대도 답을 구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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