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프란시스코 아르시아(29·LA 에인절스·사진)는 원래 지난 시즌을 마친 뒤 고향으로 돌아갈 계획이었습니다. 11년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한 번도 불러주지 않은 마이너리그 포수라면 어느 날 야구를 떠나겠다고 마음 먹는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그가 '딱 1년만 더'라고 마음을 고쳐 먹은 건 아내가 믿어줬기 때문. 


올해라고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르시아는 전반기가 다 가도록 마이너리그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기회가 생긴 건 에인절스가 주전 포수였던 마틴 말도나도(32)를 휴스턴으로 트레이드하면서부터. 에인절스는 아르시아를 AAA 팀 솔트레이크에서 불러 올려 호세 브리세노(26)와 번갈아 마스크를 쓰도록 했습니다.


첫 인상은 대박. 아르시아는 7월 26일(이하 현지시간) 맞이한 빅리그 데뷔전에서 데뷔 첫 타석부터 3점 홈런을 날리는 등 4타점을 기록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생애 두 번째 메이저리그 경기였던 28일 경기에서는 아예 6타점을 쓸어담았습니다. 데뷔전에서 4타점을 기록한 건 에인절스 팀 기록이고, 데뷔 첫 두 경기에서 10타점을 기록한 건 메이저리그 기록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아르시아가 메이저리그 문턱에서 번번이 주저 앉아야 했던 제일 큰 이유가 '물방이였기 때문'이라는 것. 아르시아는 AAA에서 네 시즌을 뛰면서 .246/.304/.306을 기록하는 데 그쳤습니다. 이랬던 타자가 메이저리그에서 갑자기 불방망이가 될 리는 없는 법. 20일 경기 전까지 가르시아의 타격 라인은 .220/.247/.451로 제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타격에서 눈에 띄는 점을 꼽자면 그래도 이 와중에 홈런 5방을 날렸다는 것.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아르시아는 20일 오클랜드 방문 경기에서 팀이 2-21로 끌려가던 9회 2아웃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서 1점 홈런을 날렸습니다. 이 한방으로 아르시아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한 경기에서 포수와 투수로 모두 출전하고 홈런까지 날린 선수가 됐습니다. 네, 아르시아는 이날 투수로도 뛰었습니다.


포수 겸 7번 타자로 경기를 시작한 아르시아는 팀이 2-18로 뒤진 7회말 이날 일곱 번째 에인절스 투수로 마운드를 밟았습니다. 아르시아는 첫 두 타자는 범타로 돌려세웠지만 9번 타자 조시 페글리(30)에게 안타를 내줬고 닉 마티니(28)와 채드 핀더(26)에게 연속 타자 홈런을 맞았습니다. 다음 타자 프랭클린 바레토(22)를 중견수 뜬공으로 돌려세우면서 투구를 끝낸 아르시아는 8회에도 마운드에 올랐고 이번에는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9회에 홈런을 친 겁니다.



아르시아가 메이저리그 경기에 투수로 등판한 건 이번이 (벌써) 두 번째. 아르시아는 팀이 0-7로 패한 12일 안방 경기 때도 역시 오클랜드를 상대로 9회초에 마운드에 올라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은 적이 있습니다. 단, 이때는 경기에서 빠져 있다가 곧바로 마운드에 올랐기 때문에 투수와 포수로 동시에 출전한 건 아닙니다.


메이저리그 통계 사이트 '베이스볼 레퍼런스'에서 출전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1908년 이후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투수와 포수로 출전한 건 이날 아르시아가 스물 네 번째였습니다.


▌메이저리그 한 경기에 투수와 포수로 모두 출전한 선수

 날짜  선수  투구 이닝  포지션
 1910.08.03  로저 브레스나한  3⅓  C-P
 1936.09.27  디 무어  2  P-C
 1965.09.08  버트 캄파네리스  1  SS-2B-3B-LF-CF-RF-1B-P-C
 1968.09.22  세사르 토바  1  P-C-1B-2B-SS-3B-LF-CF-RF
 1977.09.14  제프 뉴먼  1  C-P
 1987.07.19  릭 세론  1  C-P
 1987.08.09  릭 세론  1  C-P
 1991.07.02  릭 뎀시  1  C-P
 2000.09.06  스콧 셸던  ⅓  C-1B-2B-SS-RF-CF-LF-P-3B
 2000.10.01  셰인 할터  0  1B-3B-RF-CF-LF-SS-C-P-2B
 2003.05.15  위키 곤잘레스  1  C-P
 2008.07.06  제이미 버크  1  C-P
 2012.05.18  롭 존슨  1  C-P
 2012.07.25  제프 마티스  1  PH-C-P
 2013.08.19  제이크 엘모어  1  C-P
 2016.05.31  크리스티안 베탄코트  ⅔  C-LF-P-2B
 2017.06.06  크리스 기메네즈  1  C-P
 2017.06.22  크리스 기메네즈  1  C-P
 2017.09.30  앤드류 로마인  ⅓  LF-CF-RF-3B-SS-2B-C-2B-P-1B
 2018.06.30  에릭 크라츠  1  C-P
 2018.07.08  제프 마티스  1  C-P
 2018.07.11  알렉스 아빌라  2  C-1B-P
 2018.08.02  에릭 크라츠  1  C-P
 2018.09.20  프란시스코 아르시아  2  C-P

개인적으로 일 재미있다고 생각한 사례는 디 무어(1914~1997). '어른들 사정'으로 포지션 수집에 나섰던 버트 캄파네리스(76)를 제외하면 유일하게 투수 → 포수 방향으로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무어는 이날 경기 때 선발투수로 2이닝을 소화한 뒤 화이트 무어(1912~187)에게 마운드를 넘기고 포수로 7이닝을 소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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