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단언컨대 전 세계 사람이 가장 많이 쓰는 '한국어' 바이그램(bigram·나란히 등장하는 두 낱말)은 'oppa fighting'입니다. 이 바이그램으로 구글링하면 검색 결과 약 438만 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느닷없이 파이팅 이야기를 꺼낸 건 한국체육기자연맹이 2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바람직한 스포츠 용어 정착을 위한 스포츠미디어 포럼' 소식을 하루 늦게 접했기 때문. 


홍윤표 OSEN 논설위원은 이 자리에 참석해 "영어 단어 '싸움'(fighting)에서 따온 파이팅은 일본식 조어인 '화이토'에서 연유된, 국적불명의 용어"라며 "외국에선 주먹을 쥐고 '한 번 붙어볼래'하는 식으로 오해를 살 수 있다. 우리말 '힘내라', '아자'로 바꾸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홍 위원이 이런 주장을 펴는 건 '파이팅'이 영어(를 잘못 쓴 결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거겠죠?


아닙니다. '파이팅'은 영어처럼 보이는 혹은 영어에 뿌리를 둔 한국어 낱말입니다. 적어도 2018년 11월 현재는 확실히 그렇습니다.


'파이팅'이 한국어 낱말이라고 주장하는 첫 번째 이유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등재어이기 때문. 


파이팅(fighting)   

「감탄사」

운동 경기에서, 선수들끼리 잘 싸우자는 뜻으로 외치는 소리. 또는 응원하는 사람이 선수에게 잘 싸우라는 뜻으로 외치는 소리. ‘힘내자’로 순화. 


표준국어대사전은 이름 그대로 한국어 표준 낱말을 담고 있는 사전입니다. 그래서 이 사전에는 '애플(apple)'처럼 간단한 영어 낱말도 올라있지 있지 않습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을 글로 적을 때 '물속'은 붙여 쓰고, '사람 속'은 띄어써야 합니다. '물속'은 이 사전에 오른 개별 낱말이지만 '사람 속'은 '사람'과 '속'을 나란히 쓴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물속이라는 한국어 낱말이 따로 있으니 그 표기법을 지켜줘야 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파이팅!'이라고 외칠 때 실제로는 /화이팅/처럼 소리 내는 일이 많지만 이 낱말은 '파이팅'이라고 써야 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이 그렇게 표준형을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파이팅은 '파이팅'이라고 써야 하는 한국어 낱말인 겁니다.


'파이팅'을 한국어라고 생각해도 좋은 또 한 가지 이유는 이 낱말이 정말 오랫동안 한국어 언중(言衆)과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옛날 신문을 찾아 보면 어떤 개념 또는 낱말을 언제부터 널리 썼는지 알아볼 수 있습니다. 동아일보에 '파이팅'이 처음 등장한 건 1926년 9월 5일자 2면이었습니다.


당시 동아일보에서 주최한 4개 구락부(俱樂部) 야구연맹전을 3위로 마친 중앙 구락부 서상구 감독은 패인으로 '파이팅 (스피리트) 부족'을 꼽았습니다(사진 참조).


만약 이 낱말이 낯설었다면 설명이 따라 붙었을 겁니다. 예컨대 삼계탕만 해도 1956년 12월 28일자까지 "닭을 잡아 털을 뽑고 배를 따서 창자를 (꺼)낸 뒤 그 속에 인삼과 찹쌀 한 홉, 대추 4, 5개를 넣어서 푹 고아서 그 국물을 먹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반면 이 기사에는 '파이팅 스피리트'에 대해 따로 설명이 없습니다. 적어도 당시 야구팬 사이에서는 '파이팅 (스피리트) 부족'이 어떤 개념이라는 게 통했다고 볼 수도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1926년 이전에도 식민지 조선에서 '파이팅'이라는 낱말을 널리 썼다고 가정해도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국적불명이라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한자로 된 한국어 낱말 가운데 소위 한자 문화권에서는 뜻이 통하지 않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Public Transport'를 한국에서는 대중교통(大衆交通)이라고 번역해 쓰지만 중국과 일본은 공공교통(公共交通)을 선택했습니다. 대중교통은 중국과 일본에서는 뜻이 (잘) 통하지 않는 한자어니까 쓰면 안 될까요?


성함(姓銜), 친구(親舊), 현찰(現札) 모두 한국에서만 쓰는 한자어입니다. 한자어는 괜찮지만 영어에는 다른 논리를 적용해야 하나요?



게다가 이제는 (한류 덕분에) 외국에서도 '파이팅'은 한국어 낱말로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영문판 위키피디아에 'Paiting' 항목이 따로 있다는 게 방증. 위키피디아 검색창에 'Fighting!'이라고 쳐도 이 항목으로 자동 연결합니다. 


Paiting! (Hangul: 파이팅, pronounced [pʰaitʰiŋ]) or Hwaiting! (Hangul: 화이팅, pronounced [ɸwaitʰiŋ]) is  a Korean word  of support or encouragement. It is frequently used in sports or whenever a challenge such as a difficult test or unpleasant assignment is met. It derives from a Konglish misuse of the English word "Fighting!"


위키피디아 역시 파이팅이 영어 낱말 'fighting'에 뿌리를 둔 건 사실이지만 (이제는) 한국어 낱말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은어나 속어, 인터넷에서 쓰는 신조어 등을 소개하는 '어반 딕셔너리(Urban Dictionary)' 역시 "hwaiting은 한국어 감탄사(A Korean Exclamation)"라고 설명합니다.


hwaiting

 A Korean exclamation  used for encouragement and cheering on. Sort of like saying "Good luck!" but also adding the emphasis of working hard or trying your best.


Also, typically said with an energetic fist.

1. "omg I'm so nervous for this test." 

"Don't worry, you'll do great. Hwaiting!" *does fist* 

"Ooh, nice ring. Is that Gucci?" 

"No, silly, it's fake. Now go concentrate on that test!"


2. "Ugh, I'm sooper lazy right now. When am I gonna finish all this work?" 

"Hey, at least you finished that project. So don't give up now. Hwaiting! <3"


그러니 괜히 파이팅 때문에 시비거는 일 같은 건 좀 그만둬도 괜찮지 않을까요? 어르신들 생각보다 우리말도 이제 퍽 힘이 셉니다. 그러니 (응원 구호) '파이팅', 힘내라. 아자아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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