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결국 예상대로 한국야구위원회(KBO)가 공인구에 손을 댑니다. 반발계수를 떨어뜨려 타고투저(打高投低) 현상을 완화하겠다는 겁니다.


KBO는 21일 내년 리그 규정과 야구 규칙 개정에 대한 규칙위원회 회의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0.4134~0.4374였던 반발계수 허용 범위를 (일본 프로야구 수준인) 0.4034~0.4234로 하향 조정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반발계수를 낮춘 공인구는 내년 시범경기 때부터 사용하게 됩니다.


공을 단단한 벽에 던지면, 공은 벽에 충돌한 뒤 다시 튀어나옵니다. 이때 튀어나온 속도(㎧)를 던진 속도(㎧)로 나눈 값이 바로 반발계수입니다. 실제로 공인구 반발계수를 측정할 때는 사람이 공을 던지는 게 아니라 압축 가스로 공을 발사하는 전용 측정 기구를 씁니다. 


따라서 반발계수를 내리면 타자가 공을 때렸을 때도 더 느리게 날아가게 되고 그 결과 비거리도 줄어들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반발계수 0.001 차이가 나면 비거리는 20㎝ 차이가 납니다. 이번에 KBO에서 반발계수를 0.01~0.014 정도 줄인다는 방침이니까 타구 속도는 2.4~3.2% 정도 줄고, 비거리도 2~2.8m 정도 줄어들게 되는 셈입니다.


타구 속도 2.4~3.2% 차이는 얼핏 별 게 아닌 거 같아 보여도 쉽게 무시할 수 있는 차이는 아닙니다. 베이스볼 서번트에 따르면 시속 93마일(약 149.7㎞)로 날아간 타구는 타율 .291을 기록하지만 이보다 2.2% 느린 91마일(약 146.5㎞)이 되면 .249로 내려갑니다. 비거리 2~2.8m 차이 역시 홈런을 외야 뜬공으로 바꿀 수 있는 수준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득점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실제로 최근 10년간 KBO에서 공개한 공인구 평균 반발계수와 경기당 평균 득점을 알아 보면 반발계수가 0.4316으로 제일 높았던 2014년에 평균 득점도 5.62점으로 제일 높았고, 반발계수(.4172)가 가장 낮았던 2012년에 평균 득점(4.12점)도 가장 낮았습니다.


문제는 이론과 현실에 맞아떨어지는 게 딱 여기까지라는 점. 사실 반발계수와 인플레이타율(BABIP·p=.4480), 타석당 홈런 비율(p=.4595) 그리고 (그래서 당연히) 경기당 평균 득점(p=.2579) 사이에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10년 동안 경기당 평균 득점에 제일 큰 영향을 끼친 건 BABIP였고 (타석당) 홈런 비율이 그 다음이었습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그렇지만 상대적 영향력을 평가하면 BABIP 46.4, 홈런 비율 45.3으로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고 말하기는 곤란합니다.


그리고 2016년 '베이스볼 비키니'에 쓴 것처럼 왼손 타자 타석 점유율은 BABIP에 영향을 줍니다. 왼손 타자가 늘어나면 BABIP도 올라가는 것. 



홈런이 늘어난 이유는 외국인 타자 영향이 큽니다. 타석당 홈런 비율(3.1%)이 최고였던 올해 외국인 타자는 전체 타석 가운데 8.7%(4926타석)에 들어섰는데 홈런(257개)은 14.6%를 기록했습니다. 전체적으로도 외국인 타자가 없던 2012, 2013년을 제외하면 외국인 타자 타석 점유율과 홈런 비율은 신뢰 수준 95%에서 '양의 상관관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발계수가 낮다고 꼭 홈런이 적은 게 아니라는 건 일본 프로야구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한국 프로야구처럼 지명타자 제도를 채택한 퍼시픽리그는 올해 경기당 평균 4.23점으로 점수만 보면 투고타저(投高打低)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BABIP가 .296으로 낮아서 이렇지만 타석당 홈런 비율은 2.6%로 경기당 평균 5.61점(역대 최고)을 기록했던 2016년 한국 프로야구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그러니까 타고투저가 정말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꼭 왼손 사이드암 투수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왼손 타자를 막을 수 있도록 투수를 포함해 수비력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고, 마찬가지로 외국인 타자 방망이를 이겨낼 수 있는 투수가 늘어나야 합니다. 공을 바꿨으니 당장 방망이가 식기를 바라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조금 순진한 접근법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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