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대한민국배구협회는 역시 참 재미있는 단체입니다. 먼저 배구협회에서 '여자배구대표팀 외국인 감독 영입'이라는 제목으로 보낸 보도자료 전문부터 보시겠습니다. (링크는 제가 넣은 겁니다.)

대한민국배구협회(회장 오한남)가 여자배구대표팀을 이끌 감독으로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였다. 새로운 감독은 이태리 출신의 스테파노 라바리니(1979년생, 남자)로 임기는 2020 도쿄올림픽 아시아예선전까지이고 출전권을 확보할 경우 2020 올림픽까지로 연장한다.

 

스테파노 라바리니는 불과 16세였던 1995년도부터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태리 클럽팀 및 청소년여자대표팀, 독일여자대표팀 등에서 잔뼈가 굵어 왔다. 이태리 청소년대표팀 코치로 활약하며 2003년과 2007년도에 유럽청소년선수권대회 금메달, 2005년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4위에 오르기도 하였다. 2017년부터 브라질 벨로호리존테의 미나스테니스 클럽에서 감독으로 활약중이다. 또한 2002~3년도에 이태리 노바라 클럽에서 랑핑 감독과, 2005~6년도에는 지오바니 귀데티 감독과 함께 코치로 일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랑핑 감독은 2016 리우 올림픽에서 중국에 금메달을 선사하였고 지오바니 귀데티는 독일, 네덜란드 여대표팀을 이끌었으며 현재는 터키국가대표 및 바크프방크 감독으로 활약중이다.

 

그가 이끌고 있는 미나스테니스 클럽 배구팀은 현재 브라질 수페리가 1위를 달리고 있으며 지난해 중국에서 개최된 2018 FIVB 세계클럽선수권대회에서 김연경 선수가 속한 엑자시바시를 3-2로 이기고 결승에 진출하여 2위에 올랐다.

 

여러 채널을 통해 입수한 스테파노에 대한 평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현대 배구의 흐름에 맞는 전술과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도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세계클럽선수권대회에서 팀을 2위로 이끈 것과 현재 브라질 리그에서 2위를 달리고 있는 것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배구협회는 그간 여자대표팀 감독 선임에 대하여 다각적으로 고민과 논의를 거듭하여 왔다. 특히 올해는 올림픽 출전권 확보라는 커다란 과업이 있고 또한 국내에서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대회가 개최되기 때문에 여자대표팀 감독의 선임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협회가 외국인감독을 영입하기로 한 것은 세계배구의 새로운 흐름을 간파하고 국제대회에서 높이 있는 팀을 상대해야 할 뿐만 아니라 외국인 감독을 영입함으로써 대표팀 운영에 있어서 획기적이고 신선한 전환이 필요해서이다.

 

배구협회는 오늘 결정된 스테파노 감독과의 구체적인 협상 절차에 들어가게 된다. 또한 2~3월경 스테파노 감독을 일시 귀국케 하여 V리그 현장을 방문하여 선수를 파악하게 할 계획이다. 이후 브라질 리그가 끝나는 대로 4월 중순 혹은 5월 초순에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다. 아울러 스테파노 감독과 함께 외국인 체력트레이너도 같이 영입할 계획이다. 스테파노 감독과 호흡을 맞춰나갈 국내 코치진 구성에 있어서도 배구협회는 신중을 기하고 있다. 사상 처음으로 시행하는 외국인감독과 호흡을 맞춰 팀을 운영하고, 새로운 코칭법 등에 있어 선수와의 중간자 역할을 해야 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협회는 스테파노 감독과의 협상절차를 진행함과 동시에 2월중에 코치진을 구성할 예정이다.

 

이렇게 구멍이 많은 보도자료는 오래만에 받아 봤습니다. 특히 라바리니 감독과 도장을 찍은 게 아니라 "구체적인 협상 절차에 들어가게 되(는)" 상태라고 밝힌 게 의아합니다. 배구협회 관계자도 "협상 결렬 우려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선임'이라는 표현을 써도 되는 걸까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선임(選任)'을 "여러 사람 가운데서 어떤 직무나 임무를 맡을 사람을 골라냄"이라고 풀이합니다. 배구협회에서 여기까지 한 건 맞습니다.

 

단, 종목을 막론하고 '감독 선임'이라는 표현을 쓸 때는 이미 도장을 찍었거나 적어도 찍기로 확약한 상태인 게 일반적입니다. 이에 대해 배구협회 관계자는 "감독 본인이 감독직을 수락했고 기본적인 확인서는 받았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니까 종합하면 라바리니 감독과 접촉해서 한국 감독을 맡을 생각이 있다는 것까지 확인한 상태.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대우를 주고 받을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진행 중인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발표를 이렇게 서두를 필요가 없었습니다. 뭔가 야로가 있다고 의심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한 배구계 인사는 "원래는 프로배구 감독 가운데서 국가대표 감독을 뽑으려고 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 국가대표 감독을 맡았던) IBK기업은행 이정철 감독도 당연히 후보에 이름을 올렸고, 이번 시즌 V리그 챔피언 팀 감독에게 맡기자는 이야기도 있었다"면서 "그러나 한국배구연맹(KOVO)과 프로 구단 쪽 분위기가 냉담했다. 그래서 외국인 감독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계속해 "외국인 감독 후보로 세 명 정도를 살펴봤는데 김연경(31·에즈자즈바시으)이 라바리니 감독에 대해 제일 좋은 평가를 내려 그쪽으로 결정했다고 들었다. 에이전트에게 연락해 OK 결정을 받은 상태에서 발표를 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습니다.

 

'에이스'가 원하는 감독을 선임하는 걸 나무라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칭찬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우리 이렇게 노력하고 있어요'라고 '쇼잉(showing)'하려는 모양새가 좀 웃긴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다른 건 차치하고 발표 좀 참지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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