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탬파베이 레이스 안방 구장 트로피카나 필드는 메이저리그에서 관중이 적기로 손꼽히는 구장. 올해도 평균 관중 1만5000명 미만으로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29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탬파베이 타임즈 홈페이지


먼저 6년 전에 이 블로그에 썼던 글 도입부를 그대로 가져와 보겠습니다.


미국 메이저리그 탬파베이는 연고지가 어디일까요? 당연히 탬파베이입니다. 영어로 bay는 만(灣)이라는 뜻. 자연 지형으로서 탬파 만 지역에 자리잡은 대도시권역 '탬파베이'가 이 팀 연고지인 겁니다. 안방구장 트로피카나필드는 이 중 세인트피터즈버그라는 도시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구장 담장 뒤에는 '세인트피터버그시는 여러분을 환영합니다(City of St. Petersburg welcomes you)'라는 문구를 써뒀습니다.



문제는 이 도시가 미국 전역에서 은퇴자들이 이사해오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한국이라면 이런 분들이 열혈 야구 팬일 확률이 적지 않지만 이 동네는 사정이 다릅니다. 기본적으로 미국에서 가장 우울한 도시로 손꼽히는 정도니까요. 미국 스포츠 전문 채널 ESPN에 따르면 올해 탬파베이는 관중 동원(151만300 명)에서 꼴찌에 그쳤습니다. 관중 점유율은 30개 팀 중 24위(54.7%). 와일드카드로 아메리칸리그 디비전 시리즈까지 진출한 올 시즌 성적을 감안하면 아쉬울 수밖에 없는 관중 숫자입니다.


그렇다고 탬파베이 지역이 인구가 적은 곳도 아닙니다. 2012년 미국 인구총조사(센서스) 결과에 따르면 이 지역 인구는 284만 명으로 18위 수준입니다. 이보다 인구가 적은 세인트루이스(279만 명·19위) 지역에서는 336만9769명(2위)이 부시스타디움을 찾았습니다. 탬파베이 구단으로서는 이 구장을 떠나고 싶어하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구단이 시하고 맺은 임대 계약은 2027년이 돼야 끝납니다. 현재로서는 120억 달러(12조7440억 원)를 위약금으로 내지 않으면 연고지를 옮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현재 연고 지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구장만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 동네 중심지 탬파에서 세인트피터즈버그까지는 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 탬파에서 이곳으로 오려면 긴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이 시간이라도 줄이면 관중 사정이 좀 나아질 거라는 게 탬파베이 구단 생각입니다. 사람이 250만 명이나 사는 동네에 교통 체증이 없을 리가 없고, 우회로 없는 다리가 막히면 그대로 끝이니까 이 시간만이라도 줄여보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10년간 이 지역 시의원을 지내기도 했던 빌 포스터 시장(공화당)은 '절대 안 된다'는 자세에서 물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네, 2019년이 되어서도 이 지역 사정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레이스는 19일(현지시간) 현재 43승 31패(승률 .581)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2위, 와일드카드 1위를 달리고 있지만 관중은 여전히 없고 그래서 돈도 없는 상태입니다.


이에 레이스는 이 지역에 한 발만 담그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대신 다른 발은 2400㎞ 떨어진 캐나다 몬트리올로 향한다는 방침입니다.


ESPN은 이날 레이스가 탬파베이와 몬트리올에서 안방 경기를 나눠 치르는 계획을 검토해도 좋다고 메이저리그 이사회로부터 승인받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계획은 문자 그대로 아직 '검토 단계'입니다. 그저 시즌 개막은 탬파베이에서 맞이하고, 나머지 일정은 몬트리올에서 치른다는 방안만 확정했을 뿐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안방 경기장을 옮길 것인지도 확정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롭 만프레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는 이 아이디어가 "장기 프로젝트"라고 설명했습니다.



몬트리올이 탬파베이보다 뜨겁다

시즌 개막을 탬파베이에서 맞기로 한 건 날씨 때문. 올해 4월 몬트리올은 평균 6도밖에 되지 않았고, 그나마 맑은 날은 닷새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돔 구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좋은 조건.


문제는 돔 구장을 지으려면 돈이 많이 든다는 점입니다.


1977년부터 2004년까지 메이저리그 경기가 열렸던 몬트리올 올림픽 스타디움. 동아일보DB


네, 맞습니다. 2004년까지 몬트리올에 있던 메이저리그 팀 엑스포스(현 워싱턴 내셔널즈)는 '올픽픽 스타디움'이라는 돔 구장을 안방으로 썼습니다. 


그런데 이 구장은 1976 몬트리올 올림픽 주경기장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다른 모든 걸 떠나 일단 너무 낡았습니다.


이에 몬트리올에서는 '뿌왕뜨-셍-샤흘르' 지역에 새 구장을 지어 레이스가 경기를 치르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만약 레이스가 추위를 피해 탬파베이에서 이른 봄을 보내고 온다면 이 지역에는 굳이 돔 구장이 들어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건설비를 줄일 수 있을 테니 실제로 구장을 지을 확률이 올라갈 수 있을 테고, 자연스레 몬트리올에서 메이저리그 경기를 치를 확률도 올라갈 겁니다.


몬트리올 재계에서는 엑스포스가 워싱턴으로 떠난 2005년부터 계속 메이저리그 구단을 다시 유치하려고 움직여 왔습니다.


새 구장 이야기를 주도한 건 이 지역 명문가 출신인 스티븐 브론프먼 씨. 그의 아버지 찰스 옹이 바로 엑스포스 초대 구단주였습니다.


몬트리올이 메이저리그가 팀을 빼앗길 만큼 야구 인기가 떨어졌던 도시는 맞지만 그래도 탬파베이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엑스포스가 몬트리올에 머문 건 1969년부터 2004년까지 36년.


이 36년 동안 몬트리올 안방 경기를 찾은 관중은 리그 평균 대비 76.2% 수준이었습니다. 레이스가 창단한 1998년부터 지난해(2018년)까지 21년 동안 트로피카타 필드를 찾은 관중을 리그 평균과 비교하면 62.9% 수준입니다.


또 이 36년 가운데 17년(47.2%) 동안 몬트리올 관중 숫자는 리그 평균 75% 이상을 기록했지만 레이스가 같은 기록을 남긴 건 세 시즌(14.3%)밖에 되지 않습니다.


새 구장도 지어주겠다고 하고 야구 열기도 더 뜨겁다면 레이스로서는 몬트리올 카드를 만지작 거리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레이스는 정말 세인트피터즈버그를 떠날 수 있나

트로피니나카 필드를 향해 가는 탬파베이 팬들. 탬파베이 타임즈 홈페이지


이러면 세인트피터즈버그시에서도 긴장을 해야 하는 게 당연한 일. 하지만 릭 크리즈먼 시장(민주당)은 '몬트리올이 먹는 건가요?'하는 분위기입니다. 


크리즈먼 시장은 AP 통신 인터뷰에서 "이 문제 향방은 결국 내게 달렸다. 그리고 나는 이 문제를 시의회로 가져갈 생각이 추호도 없다"면서 "사실 지금 이 분위기가 조금 멍청하기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구단과 시가 교환한 양해 각서(MOU)에 따르면 레이스는 모든 안방 경기를 트로피카나 필드(the DOME)에서 치러야 하는 건 물론이고, 시에서 동의를 구하지 않은 상태로 다른 구장에서 안방 경기를 치르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습니다.


2. Acknowledgent of Club. The Club acknowledges and agrees that, as set forth, among other things, in Sections 2.04 and 11.01 of the Agreement, during the Term: the Club shall the Franchise to play all of its Home Games in the DOME, subject to the provisions of Section 2.04 of the Agreement; (ii) the Club is not permitted to play any of the Franchise's Home Games in any facility other than the DOME without the City's consent, which may be withheld in the City's sole discretion, subject to the provisions of Section 2.04 of the Agreement and Paragraph 7 of this and neither the Club nor any of its respective parties, principals, directors, officers, employees, owners, or agents will enter into, initiate or conduct any agreement or negotiations (directly or indirectly) for the use of any facility other than the DOME for the Home Games of the Franchise, except to the extent permitted by Sections 2.04 and 16.03 of the Agreement.


물론 위약금을 물어주면 이 계약을 깰 수 있습니다.


문제는 레이스와 시가 임대가 아니라 구장 사용 계약을 맺었다는 점입니다. 한마디로 임대 계약 때보다 구단과 (새 연고 도시에서) 세인트피터즈버그시에 물어줘야 할 금액이 더 많습니다.


세인트피터즈버그시는 잔여 계약 기간 1년당 2억 달러(약 2300억 원) 정도를 받겠다는 계획입니다.


내년부터 따지면 8년이 남았으니까 약 16억 달러(약 1조8600억 원) 마련하지 않는다면 법적 다툼 없이 이 도시를 떠나는 건 불가능한 일이 됩니다.


그래서 레이스는 이 계약을 (크게) 위반하지 않는 방안을 찾으려 애썼고 그 결과가 몬트리올에서 안방 경기 일부를 치르는 형태가 된 겁니다.


메이저리그 이사회 승인부터 받은 것 역시 송사에 대비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세인트피터즈버그시에서 구장 신축 '계획' 정도는 발표할 법도 한데 진짜 대단합니다. 


과연 레이스는 이 개미지옥을 언제나 벗어날 수 있을까요?



댓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