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양상문 감독(58·사진)이 프로야구 롯데 지휘봉을 내려 놓습니다.


롯데는 "양 감독의 자진사퇴 요청을 수용하기로 했다"고 19일 발표했습니다. 이로써 양 감독은 지난해 10월 19일 롯데 제18대 감독으로 선임된 뒤 만 9개월 만에 자리를 내놓게 됐습니다.


롯데는 올 시즌 평균차잭점 5.18로 10위, 팀 OPS(출루율+장타력) .692로 9위를 기록하는 등 투타 모두 부진을 거듭하면서 34승 2무 58패(승률 .370) 최하위로 전반기를 마감했습니다. 


양 감독은 "큰 목표를 갖고 롯데 야구와 부산 야구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포부를 가지고 부임했으나 전반기의 부진한 성적이 죄송스럽고 참담하다"며 "팀을 사랑했던 팬들에게 송구스럽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팀을 제대로 운영하려고 발버둥쳐 봤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지금은 내가 책임을 지는 게 팀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계속해 "야구장에 와주신 팬들의 위로와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면서 "약속을 못 지켜서 죄송하다. 특히 좋은 경기를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던 어린이 팬의 얼굴이 마음에 남는다"고 말했습니다.



양 감독과 함께 이윤원 단장(52·사진)도 자리를 내놓습니다. 이 단장은 2014년 11월 10일부터 롯데 살림살이를 책임졌던 인물입니다. 구단은 "반복된 성적 부진에 '프런트가 먼저 책임을 진다'는 생각으로 김종인 구단 사장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이 단장이) 사임을 요청했다"고 전했습니다. 새 단장이 누가 될지는 아직 논의 중인 단계입니다.


롯데는 "팬 여러분에게 재미있고 수준 높은 경기를 보여주지 못하고 매우 부진한 성적으로 열성적 응원해 보답하지 못해 죄송하다. 감독과 단장의 동반 사임은 앞으로는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될 매우 불행한 일이다. 대오각성의 기회로 삼겠다"며 "공필성 수석코치(52)를 감독 대행으로 선임하고 빠르게 팀을 추스려 후반기에는 변화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매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보도자료에서 저 마지막 문장을 읽고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오각성(大悟覺醒)은 '크게 깨달아서 번뇌, 의혹이 다 없어진다'는 뜻. 그런데 그다음에 곧바로 '공 코치를 감독 대행으로 선임했다'는 내용이 나오는 게 맞는 걸까요?



롯데는 원래 2015 시즌을 앞두고 공 코치(사진)를 감독으로 선임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소식에 선수단이 반기를 들었다는 루머가 흘러나오면서 결국 없던 일이 됐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공 코치는 1990년 입단 후 25년 만에 팀을 떠났다가 올 시즌을 앞두고 다시 롯데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공 코치로서는 당시에 억울한 측면이 분명히 있었을 테고 △당시 갈등을 빚었던 선수 대부분은 이제 팀에 남아 있지 않으며 △감독이 시즌 중 물러나면 수석 코치가 감독 대행을 맞는 게 일반적이라는 사실을 두루 감안하면 공 코치를 대행으로 선임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그러면 대오각성이라는 표현은 아끼는 게 맞지 않았나'하고 생각하는 겁니다. 감독과 단장이 동시 사임하는 상황에서 본인 스스로 '친(親)프런트 인사'라는 사실을 한 번도 부인한 적 없는 인물을 감독 대행으로 앉히면서 대오각성 계기로 삼겠다면 좀 어폐가 있지 않나요?



'베이스볼 비키니'를 통해 전달한 송정규 전 롯데 단장(67·사진) 말씀처럼 롯데는 (프런트에서) 돈을 쓸 때 제대로 못 써서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롯데는 돈을 써야 할 때 쓰지 못하고 계속 아낍니다. 구단 사장이나 단장 이런 사람들이 속된 말로 알아서 기어요. 그러다 성적이 바닥이 되고 팬들이 ‘롯데 물러나라. 시민구단 만들겠다’며 나서야 위에다 ‘부산 민심이 안 좋습니다’라고 보고합니다. 그러면 오너가 ‘왜 말 안 했느냐? 돈 써라’ 그래요. 그제야 뒤늦게 한꺼번에 200억~300억 원씩 뿌리게 되는 거죠. 그래서 적재적소에 돈을 못 써요.


사실이 그렇습니다. 롯데는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 정우람(34·현 한화)이 풀려 있을 때도 그에게 84억 원을 안기는 대신 손승락(37)과 윤길현(36)에게 총 98억 원을 썼으며, 프랜차이즈 '포수' 강민호(34)가 80억 원에 삼성과 계약하는 걸 지켜보고 나서야 '외야수' 민병헌(32)과 같은 금액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요컨대 '어떻게 하면 팀 전력을 끌어올릴까'를 생각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팬들에게 욕을 먹지 않을까'를 고민한 다음 그 결론을 가지고 팀을 이끌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승한 지 정말 오래 됐으니까 '우승! 우승! 우승!'을 외치지만 그러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한 것.


개인적으로는 이대호에게 150억 원을 준 것보다 그 돈을 가지고 (롯데 퓨처스리그·2군 연습구장인) 상동야구장을 더 현대화하고, 더 훌륭한 외국인 코칭스태프를 데려와 지금 2군에서 썩고 있는 훌륭한 자원들을 키웠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대호가 워낙 위대한 선수다 보니 '이대호는 해결사다. 시즌이 끝날 때가 되면 (타율) 3할 이상을 치는 확실한 선수다' 이런 선입관이 너무 강했어요. 그러니 (이대호가 부진해도) 무조건 기다리는 신뢰의 야구를 하게 되는 거죠. 나는 선수에 대한 신뢰의 야구는 팬에 대한 배신의 야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사실 굳이 구분하자면 송 전 단장 인터뷰 기사를 쓸 때 제 마음은 '예능'에 가까웠습니다. 많은 독자 여러분도 그렇게 느끼셨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그런데 혹여라도 저 인터뷰가 '다큐'처럼 보였다면 롯데가 얼마나 잘못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거겠죠. 그리고 바로 그 지점이 롯데가 대오각성을 시작해야 할 곳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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