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2000년대에 태어난 테니스 선수로는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 정상에 오른 비앙카 안드레스쿠(왼쪽). 뉴욕=로이터 뉴스1


올해 6월 12일(이하 현지시간)까지 캐나다에는 두 가지가 없었습니다. 미국프로농구(NBA) 챔피언 팀과 테니스 메이저 대회 단식 챔피언.


이로부터 100일이 지나기 전 캐나다는 두 가지를 모두 갖게 됐습니다. 6월 13일 토론토가 골든스테이트를 물리치고 래리 오브라이언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이로부터 87일이 지난 7일 토론토는 트위터를 통해 2019 US 오픈 여자 단식 우승을 차지한 비앙카 안드레스쿠(19·세계랭킹·15위)에게 축하 메시지를 띄웠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이 대회 본선에 출전한 안드레스쿠는 이날 미국 뉴욕 빌리진 킹 내셔널 테니스 센터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테니스 여제' 세리나 윌리엄스(38·미국·8위)를 1시간 40분 만에 2-0(6-3, 7-5)으로 물리치고 생애 첫 메이저 대회 타이틀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면서 안드레스쿠는 갖가지 기록을 새로 썼습니다.


앞서 보신 것처럼 남녀부를 통틀어 캐나다 국적 선수가 메이저 대회 단식 정상에 오른 건 안드레스쿠가 처음입니다. 또 역시 남녀부를 통틀어 2000년 이후 태어난 선수가 메이저 타이틀을 차지한 것도 안드레스쿠 이전에는 없던 일입니다.


2017년 프로로 전향한 안드레스쿠는 그해 윔블던 1회전에 탈락했고 올해 호주 오픈프랑스 오픈에서도 2회전 탈락이 전부였습니다. 이번 US 오픈 전까지 안드레스쿠가 출전한 메이저 대회는 이 세 번이 전부입니다. 메이저 대회 출전 네 번 만에 정상에 오른 건 1990년 프랑스 오픈 때 모니카 셀레스(46·당시 유고슬라비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역대 최소 타이 기록입니다.


범위를 US 오픈으로 좁히면 안드레스쿠는 프로 선수가 출전할 수 있게 된 1968년 이후(오픈 시대) 여자 단식 본선에 처음 출전해 곧바로 우승을 차지한 첫 번째 선수입니다. 세리나의 언니 비너스(39·미국·52위)도 1997년 이 대회 첫 출전 때 결승 진출에 성공했지만 마르티나 힝기스(39·스위스)에 0-2로 패하면서 우승과 인연을 맺지는 못했습니다.


2019 US 오픈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세리나 윌리엄스의 서브를 받아치는 비앙카 안드레스쿠. 뉴욕=로이터 뉴스1


미국 주간지 '뉴요커'는 이번 대회 기간이던 3일 안드레스쿠를 소개하면서 "안드레스쿠는 역대 최고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췄다. 사이즈와 파워가 있는 힝기스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알프스 소녀' 힝기스는 1997년 호주 오픈 때 오픈 시대 역대 최연소(16년 3개월 26일)로 메이저 대회 챔피언에 올랐던 선수입니다.


2000년 6월 16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미시소가에서 태어난 안드레스쿠도 이날 우승으로 2006년 US 오픈 챔피언 마리야 샤라포바(32·러시아·87위)에 이어 13년 만에 10대 메이저 챔피언 자리에 올랐습니다. 첫 우승을 기준으로 하면 2004년 US 오픈 우승자 스베틀라나 쿠즈네초바(34·러시아·63위) 이후 15년 만에 10대 챔피언이 나왔습니다.


안드레스쿠는 우승 후 "오렌지볼에서 우승한 뒤로 언젠가 이 무대에 서게 될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또 믿었다. 사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이 자리를 차지하는 걸 머릿속으로 그리고 또 그렸다"면서 "그래도 이게 현실이 되고 나니 꿈인지 생시인지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2015년 오렌지볼 당시 비앙카 안드레스쿠. 오렌지볼 홈페이지


오렌지볼은 세계 최대 주니어 테니스 대회로 안드레스쿠는 2014년에는 만 16세 이하, 이듬해에는 만 18세 이하 여자 단식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안드레스쿠는 이번 대회 기간 취재진에게 2015년 오렌지볼에서 우승한 다음 US 오픈 우승 상금 액수를 적어 넣은 가짜 수표를 쓴 적이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진짜 챔피언이기 때문에 실물을 받아볼 수 있습니다.


US 오픈 단식 챔피언은 상금으로 385만 달러(약 46억 원)를 받습니다. 이날 전까지 안드레스쿠가 여자프로테니스(WTA)투어에서 받은 총 상금은 241만7873 달러로 이번 우승 상금 62.9% 수준이었습니다.


안드레스쿠가 괜히 "타임머신을 타고 1년 전으로 돌아가 '너 1년 뒤에 US 오픈에서 윌리엄스를 꺾고 우승한다'고 이야기해줘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인터뷰한 게 아닙니다. 1년 전 안드레스쿠는 세계랭킹 210위 선수였으니까요. 이번 US 오픈 우승으로 안드레스쿠는 다음 번 랭킹 발표 때 5위로 순위가 오르게 됩니다.



안드레스쿠는 올해 45승 4패(승률 .918)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3월 이후에 기록한 2패 모두 기권패(부상)라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제대로 경기가 끝났을 때는 3월 이후에 패한 적이 없습니다. 안드레스쿠는 또 이번 결승전 때 윌리엄스를 포함해 현재 세계랭킹 10위 이내 선수를 상대로 8전 전승을 기록 중입니다.


그렇다고 아직 '새로운 테니스 여제가 탄생했다'고 선언하기는 이릅니다. 지난해 이 대회 결승전에서 역시 윌리엄스를 꺾고 생애 첫 메이저 타이틀을 차지한 오사카 나오미(大坂なおみ·22·1위)는 바로 다음 메이저 대회였던 올해 호주 오픈 정상까지 올랐지만 현재 오사카를 여제라고 평가하는 테니스 팬은 보기 드뭅니다.


1년 전 안드레스쿠가 이 자리에 설 것이라고 예상하기 힘들었던 것처럼 1년 뒤에 누가 이 자리를 차지할지 예상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 여자 테니스는 최근 3년 동안 한 해에 메이저 대회 단식 정상을 두 번 이상 차지한 선수가 아무도 없는 춘추전국시대입니다. 과연 안드레스쿠가 윌리엄스 뒤를 잇는 '끝판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요?



댓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