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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2006 아시안게임에 참가할 야구 대표팀 명단이 발표되자 논란이 쏟아지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신철인이 과연 국가대표로 뽑힐 만한 자질을 갖췄느냐는 것이다.


자격 부족이라고 말하는 쪽에서는 김재박 감독이 1977년생으로 병역이 급한 소속팀 선수에게 특혜를 줬다고 주장한다. 제 식구 감싸기라는 것이다. 정말 신철인은 대표로 뽑힐 자격이 없을까?


논쟁에 자주 등장하는 우완 불펜 투수 네 명 기록을 통해 이를 알아보자. 신철인과 함께 대표팀에 선발된 윤석민, 부상 치료 때문에 빠진 권오준 그리고 팀별 분배가 아쉽다는 평가를 받는 LG 우규민이 바로 그 장본인들이다. 과연 이들 모두 신철인보다 더 뛰어난 투수인 걸까?


불펜 투수를 평가할 때 승패 기록은 큰 의미가 없다. 홀드나 세이브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기록은 선수 '능력'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선수가 플레이한 '맥락'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방어율도 그렇다. 불펜 투수는 선행 주자를 홈으로 들여보내지 않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이 점수는 앞선 투수 자책점으로 기록하기에 해당 투수 방어율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그렇다고 승계 주자 실점 여부를 기준으로 삼는 것 역시 곤란하다. 루상에 주자가 잔뜩 쌓인 상태로 마운드에 오르는 것 역시 해당 투수 선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투수와 타자 사이에 직접적으로 벌어지는 이벤트, 그러니까 TTO(Three True Outcomes ; 삼진, 볼넷, 홈런)를 기준으로 삼았다. 그밖에 두 가지 요소를 더 고려했다.


• G/F는 땅볼과 뜬공으로 각각 아웃 처리한 비율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숫자가 클수록 땅볼을 더 많이 유도했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땅볼을 더 많이 유도할수록 좋은 투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가 흔히 내야 밖으로 공이 나가지 않았다는 표현을 쓰는 게 바로 그 때문이다.


• DER은 Defense Efficiency Ratio의 약자로 인플레이 타구 가운데 몇 %를 아웃으로 연결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그러니까 타구가 10개가 페어지역으로 날아갔을 때 세 개는 안타였고, 나머지 7개를 아웃으로 마무리했다면 이때 DER은 .700이 된다. 해당 투수가 어느 정도의 수비 지원을 받았는지 보여주는 지표라 보면 좋을 것이다. 그래도 이해가 어렵다면 '맞혀잡는 비율'이라고 이해해도 무방하다.


아래는 위 선수들 이번 시즌 기록을 9월 3일까지 정리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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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인은 그 어떤 선수보다도 높은 삼진 비율을 자랑한다. 탈삼진 능력으로 명성이 자자한 권오준보다도 2.3%포인트 높은 기록이다. 거꾸로 볼넷 허용 비율 역시 가장 높다. 네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10%에 육박한다.

하지만 한 전체적인 구위 수준을 알아보는 K/BB는 권오준(3.1)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2.8이다. 전체적인 균형을 고려했을 때 볼넷을 많이 내주는 게 문제될 수준은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권오준이 좀더 안정적인 투구를 펼친 건 사실이다. 만약 권오준을 선발할 수 있는 상태였다면 권오준을 뽑는 게 맞았다. 피홈런 비율이 높기는 하지만 홈구장이 대구라는 사실을 감안하자면 크게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그런데 권오준은 이미 출전이 곤란하다고 밝혔다. 그래서 권오준을 제외하고 한 명을 고르자면 신철인을 우선 선택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스터프가 가장 뛰어난 투수를 먼저 뽑는 게 정석이니까 말이다. 미리 결론을 짓자면 권오준보다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어도 권오준급 투구를 펼친 주인공이 신철인이라는 얘기다.

이번엔 윤석민과 한번 비교해 보자. 일단 윤석민은 신철인에 비해 탈삼진 능력이 떨어진다. 맞혀 잡는 비율, 즉 DER 역시 근소한 차이로 신철인에 뒤진다. 팀 DER에서는 KIA(.710)가 현대(.704)에 앞선다. 신철인이 팀내 다른 투수들보다 수비하기 쉬운 타구로 상대 타자를 막았다는 뜻이다. 자기 힘으로 아웃을 잡는 삼진이든 수비 도움을 받는 아웃이든 모두 신철인이 우위다.


마지막으로 우규민. 우규민은 네 선수 가운데 가장 든든하게 수비 지원을 받았다. LG의 팀 DER이 .699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상대 타자들이 우규민을 상대로는 방망이 중심에 맞는 타구를 거의 때려내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 선수 중 가장 높은 G/F 비율도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우규민에게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건 딱 거기까지다. 일단 우규민은 삼진을 많이 잡는 투수가 못 된다. 볼넷이 적다고 하지만 K/BB 1.8은 리그 평균(1.9)에도 못 미친다. 구위 자체를 위 세 선수와 비교하기엔 아직 모자라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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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신철인은 비인기팀 소속인 탓에 저평가 받는 경향이 짙다. 스피드건에 찍히는 구속 자체는 그리 빠른 편이 못 되지만 신철인은 소위 공끝이 좋은 투수다. 또 어떤 상황에서도 쉽사리 주눅들지 않는 배짱까지 갖췄다.


이번 시즌 현대가 시즌 전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2위 자리를 차지한 데는 그 누구보다 신철인의 공이 지대했다. 가장 급박한 순간 현대 마운드를 책임졌던 선수도 박준수가 아니라 신철인이었다. 어쩌면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김재박 감독이 고생한 선수에게 특혜를 베푼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기록으로 따져도 신철인은 국가대표로 뽑힐 자격이 충분했다고 할 수 있다.


신철인은 KIA의 전신인 해태에 신고 선수로 입단했다가 방출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 이후 자신의 진가를 알아준 김재박 감독 밑에서 혼신을 다한 투구를 펼쳤다. 그리고 올해 성적도 특급이다. 자기 꿈을 향해 최선을 다 했고 그 꿈이 드디어 눈 앞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신철인 본인 역시 한 인터뷰에서 '죽기 살기로' 던지고 있다며 전의를 불태웠다. 우리도 이제 그만 신철인을 인정해 주면 안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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