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영화 '미스터 3000' 월페이퍼


(제가 추천 야구 영화를 꼽으면서 '아차상'을 줬던) '미스터 3000'이라는 코미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 주인공 스탠 로스(버니 맥 분·扮)은 메이저리그에서 정확하게 3000 안타를 치고 나서 은퇴를 선언합니다.


아직 7월 29일 이었고 팀(밀워키)은 한창 순위 경쟁 중이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로스는 'I, my, me, myself' 모드인 캐릭터였으니까요.


3000 안타 기념구를 차지한 꼬마를 협박해 그 공을 빼앗을 정도였습니다.


3000 안타 공을 쥔 소년에게 공을 요구하는 스탠 로스. 영화 화면 캡처


그는 3000안타를 때린 뒤 라커룸에서 '이제 야구를 그만두겠다. 역겨운 기자들도 안녕'이라고 폭탄 발언을 합니다.


그 뒤 로스는 '미스터 3000' 타이틀을 앞세워 사업가로 변신합니다.


문제가 터진 건 그가 사업가로 한창 잘 나가고 있던 9년 뒤였습니다.


관중 감소에 허덕이던 밀워키 구단주는 마케팅 차원에서 로스에게 영구결번식을 열어주기로 합니다.


로스 역시 이 행사가 명예의 전당 투표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 'OK'를 외칩니다.


이 행사에서 로스는 자신이 명예의 전당 입회 자격이 충분하다고 또 한 번 주장합니다.


로스 통산 기록에서 안타 3개를 빼야 한다는 명예의 전당 사무국. 영화 화면 캡처 


이 소식에 명예의 전당에서 다시 로스 기록을 검토한 결과 안타 3개를 잘못 더했던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로스는 실제로는 안타 2997개를 친 상태로 은퇴를 선언했던 것.


미스터 3000 타이틀을 포기할 수 없던 로스는 다시 메이저리그 복귀를 시도하는데…


프로야구 공식 기록지를 작성하는 모습. 동아일보DB


세상에 나온 지 16년 된 이 영화가 떠오른 건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2일 내놓은 보도자료 때문입니다.


이 보도자료는 1982~1996년 열린 6168 경기 기록 정리를 끝내면서 모든 프로야구 기록 전산화 작업을 마쳤다는 내용이었습니다.


2000년까지 프로야구는 공식기록원이 손으로 기록지를 쓴 다음 이를 수동으로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하는 방식으로 기록을 관리했습니다.


1997~2000년까지는 이전에 전산화를 마쳤고 이번에 프로야구 초기 15년 결과까지 정리를 마친 겁니다.


이 과정에서 오류가 눈에 띄었습니다.


KBO는 "기록 확인을 실시한 결과 약 1600여 건의 오류를 발견했으며 수 차례 검증을 거쳐 오류를 정정했다"고 소개했습니다.


현역 시절 통산 최다 도루 기록을 세운 NC 전준호 코치. 동아일보DB


그 결과 전준호(51) 현 NC 코치가 보유하고 있는 프로야구 통산 최다 도루 기록이 550개에서 549개로 줄었습니다.


전 코치가 롯데에 몸담고 있던 1996년 9월 20일 광주 경기에서 기록한 도루 하나가 빠졌기 때문입니다.


이날 실제로는 8회초에 대타로 출전한 박종일(48)이 10회초 도루에 성공했는데 전 코치에게 이 도루가 돌아갔던 겁니다.


1996년 9월 20일 기록지. 한국야구위원회(KBO) 제공


로스에게 2997 안타와 3000 안타가 달랐던 것처럼 전 코치에게도 549 도루와 550 도루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전 코치는 원래 549번째라고 알고 있던 도루에 성공한 뒤 왼손 약지가 부러졌습니다.


이때가 2009년 4월 11일이었는데 전 코치는 그해 9월 1일 엔트리 확장 때가 되어서야 다시 1군 무대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시즌 132번째 그러니까 끝에서 두 번째 경기였던 9월 25일 광주 경기에서 당시 기준으로 550번째 도루를 기록했습니다.


통산 550번째(라고 알고 있던) 도루에 성공한 뒤 기뻐하는 전준호. 동아일보DB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이튿날 경기 때도 그는 선발 2번 타자로 출전해 4타수 1안타를 기록했지만 도루를 시도하지는 않았습니다.


전 코치는 프로야구에서 2000경기 출장, 2000 안타 기록을 남긴 '레전드'지만 550 도루 쪽에 애착이 더 컸습니다.


2000 경기나 2000 안타는 자기 관리를 꾸준히 한 선수라면 누구나 세울 수 있는 기록이다. 550 도루는 다르다.


그러나 결국 549 도루를 남긴 채 은퇴한 걸로 기록이 바뀌면서 손이 닿지 않는 곳이 간지러운 것 같은 그 느낌을 영원히 지울 수 없게 됐습니다.


아, 우리는 10진법을 쓰는 게 이렇게 아쉬운 건 처음입니다.


한국 프로야구 데뷔 시즌이던 1983년 30승 16패 6세이브를 기록한 '너구리' 장명부. 동아일보DB


전 코치만 기록 검증 과정에서 손해를 본 게 아닙니다.


한 시즌 30승을 기록한 1983년 장명부(1950~2005) 역시 자책점이 111점에서 112점으로 늘어나면서 평균자책점도 2.34에서 2.36으로 올랐습니다.


거꾸로 한화 정민철(48) 단장과 한용덕(50) 감독은 기록이 좋아졌습니다.


정 단장은 1992년 7월 20일 안방 경기에서 삼성을 상대로 완투한 기록이 집계 과정에서 빠져 있었고, 한 감독은 1989~1991년 매년 삼진이 하나씩 빠져 있어 통산 삼진이 3개 늘었습니다.


KT 이강철(54) 감독 역시 1989년과 1992년 삼진이 하나씩 늘었고, 1995년 자책점도 1점이 줄었습니다.


KBO는 "앞으로도 매 시즌 종료 후 수기 기록지와 온라인 기록지, 데이터를 비교해 오류가 발견될 경우 즉시 바로잡아 미디어와 야구팬들에게 정확한 통계 자료가 제공될 수 있도록 노력할 방침"이라고 보도자료를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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