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한국배구연맹(KOVO) 로고


한국배구연맹(KOVO)는 '바람'을 선택했습니다.


여기서 바람은 이솝우화에서 나그네 외투를 서로 벗길 수 있다고 해님과 내기를 벌이는 그 바람입니다.


KOVO는 25일 이사회(단장 회의)를 열고 선수 연봉 관련 제도를 손질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남녀부 13개 구단 단장(또는 부단장)은 일단 선수 몸값을 보수와 옵션으로 구분하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에 따르면 선수가 매달 받아가는 돈은 전부 보수고, 이를 제외하고 별도로 받는 돈은 모두 옵션입니다.


2017~2018 올스타전에 출전한 전광인(당시 한국전력)과 문성민(현대캐피탈).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얼핏 보면 이 구분이 아주 당연해 보이지만 이전에는 계약서에 명시한 금액(기준연봉)만 연봉이었고 나머지는 어떻게 받아가든 전부 옵션이었습니다.


그리고 기준연봉만 샐러리캡(연봉상한제) 적용 대상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전광인(29)이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6억 원을 제시한 한국전력 대신 5억2000만 원을 제시한 현대캐피탈을 선택하는 게 금전적으로도 이득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게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자부는 당장 2020~2021 시즌부터, 남자부는 2022~2023 시즌부터 옵션을 샐러리캡 적용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려면 '옵션'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었을 겁니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계약금, 부동산 및 차량 제공 비용, 모기업 and/or 계열사 광고 출연료 등 배구 활동과 관련이 없는 돈은 당연히 옵션으로 구분하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또 승리 수당, 출전 수당, 훈련 수당, 성과 수당 등 배구 활동과 관련이 있더라도 월급 형태로 받지 않는 돈은 전부 옵션으로 구분하기로 했습니다.


단, 여자부는 승리 수당은 옵션에서 제외해 3억 원을 따로 계산합니다.


보수 18억 원 + 옵션 5억 원 + 승리 수당 3억 원 등 총 26억 원을 선수단 몸값으로 쓸 수 있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물론 이 승리 수당 3억 원을 한 선수에게 몰아주는 건 규정 위반입니다.


이 규정을 잘 지키는지도 감시해야겠죠?


KOVO는 "세무사 등 외부 전문가로 구성한 검증위원회를 운영해 샐러리캡과 옵션캡 준수 검증 시스템을 체계회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면서 "규정을 위반한 구단은 신인 드래프트 1, 2순위 지명권을 박탈하기로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와 함께 내부 고발자 포상 제도도 신설하기로 했습니다.



여기까지 들여다 보면 아주 큰 '구멍'이 일단 하나 보입니다.


시기를 못 박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수가 현역에서 은퇴한 다음에 뒷돈을 건네면 검증위원회에서 잡아낼 수 있을까요?


한국 프로배구 팀은 별도 독립법인이 아니라 대기업 안에 있는 부서 형태로 존재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은퇴 후에 돈을 주기로 이면 계약을 맺었을 때 KOVO에서 자금을 추적할 권한이 있을까요?


샐러리캡 제도가 없는 프로야구조차 민사 소송 과정에서 실제 FA 계약 내용이 드러날 정도입니다.



그리고 여자부에서 '추가 캡'을 허용한 건 샐러리캡 존재 이유 자체를 흔드는 일이라고 풀이할 수도 있습니다.


여자부 샐러리캡 최소 소진율은 50%이고 보수에만 이 비율을 적용합니다.


어떤 팀이 26억 원을 선수단 몸값으로 쓸 때 다른 팀은 9억 원만 지급해도 그만인 겁니다.


이러면 이 두 팀 사이에 선수단 몸값이 2.9배 차이가 납니다.


남자부도 2.8배까지 차이가 벌어질 수 있도록 규정을 마련해 두고 있는 상태입니다.


샐러리캡은 리그에 참여하는 구단이 서로 비슷하게 몸값 총액을 유지하자는 게 = 전력을 엇비슷하게 꾸릴 수 있는 리그 환경을 조성하자는 게 존재 이유입니다.


샐러리캡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북미 프로 스포츠 리그 자료를 찾아 보면 2019~2020 시즌 기준으로 미국프로농구(NBA)는 1.2배,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는 1.3배, 북미프로아이스하키리그(NHL)는 1.4배 차이가 전부입니다.


아직 샐러리캡 도입 전인 한국 프로야구도 올해 기준으로 1.7배 차이입니다.



그런데 샐러리캡 제도를 채택하고도 프로배구가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는 이유는 더 쓰고 싶어하는 구단과 못 쓰겠다는 구단이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이렇게 샐러리캡 규정 강화라는 '바람'이 별 효과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대신 사치세라는 '해님'이 한국 리그 상황에는 더 잘 어울린다고 봅니다.


어차피 전력 절반을 차지한다는 외국인 선수를 '트라이아웃'(공개 선/수 평가)을 거쳐 뽑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돈을 쓰고 싶은 구단은 쓰고 싶은 대로 하는 대신 일정 금액 이상을 쓰면 사치세를 부과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걷은 사치세는 유소년 배구에 투자해야 합니다.


원곡고 졸업생이 모두 지명을 받았던 2015~2016 여자부 드래프트.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현재 한국 유소년 배구 상황이 장난이 아닙니다.


여고부에서는 김수지(33·IBK기업은행) 아버지이기도 한 김동열 감독(60)이 지휘하던 원곡고가, 남고부에서는 송명근(27) 이민규(28) 정지석(25) 황경민(24) 등을 배출한 송림고가 해체 위기입니다.


네, 맞습니다. 현재도 한국 초중고 배구부는 졸업생이 프로 선수가 되면 지명 순번에 따라 운영 지원금을 받습니다.


그리고 유소년 배구 지원 사업은 KOVO가 아니라 대한민국배구협회(KVA)가 주체가 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학교 배구부가 자꾸 사라진다면 '수요자'인 프로배구 쪽에서 추가 지원하는 게 아주 이상한 일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국내 복귀 기자회견을 연 김연경. 흥국생명 제공


샐러리캡을 없애면 스타 선수가 특정 구단으로만 몰리는 것 아니냐고요?


샐러리캡이 버젓이 존재하는데도 김연경(32) 이재(24) 이다영(24)이 한 팀에서 뛸 수 있는 리그에서 지금 그게 급한 문제인가요? 


정말 샐러리캡을 이렇게 엄격하게 지키게 되면 KB손해보험 유니폼을 입겠다는 'FA 대어'가 정말 늘어날까요?


KB손해보험이 한국전력보다 돈이 없어서 박철우(35) 못 잡는 게 아니잖아요?


진짜 원하는 선수를 데려오고 싶다면 차라리 캡 없이 한 번 시원하게 지르는 게 낫지 않을까요?



댓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