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로나쌩 클럽'. 인터넷 최고의 재치꾼들이 모인 DC 인사이드에서 출발한 이 낱말은 이제 어지간한 야구팬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낱말이 됐다. '로나쌩'은 다름 아닌 '롯데만 만나면 쌩큐'라는 뜻으로, 롯데와의 경기에서 유독 강한 면모를 자랑한 투수들을 일컫는 표현이다.

하지만 이런 경향은 투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야구 경기를 가만히 지켜보다 보면 특정 팀만 만나면 펄펄 날아다니는 타자들을 볼 수 있다. 이런 선수들에게도 역시 '삼성 킬러‘ 같은 별명이 뒤따라 다니고는 한다. 과연 이번 시즌엔 어떤 선수들이 어떤 팀의 킬러로 활약했을까?


▶ 삼성 라이온즈

삼성과의 경기에서 가장 강한 면모를 보여준 선수는 뜻밖에도 박재홍이다. 뜻밖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5승 13패의 초라한 팀 상대 전적 때문이다. 하지만 박재홍은 삼성 투수들을 상대로 타율 .333/출루율 .417/장타율 .587을 기록하며 OPS 1.004를 쳤다.

그 뒤를 쫓는 선수는 OPS 1.002를 기록한 현대의 이택근. 평소 이택근의 모습을 생각할 때 장타율 .627의 기록은 확실히 놀랄만한 수준이다. 여기에 도루까지 3개를 추가했으니 삼성에서는 분명 박재홍 못지않게 까다로웠을 것이다. 이택근의 팀 동료인 이숭용 역시 타율 .362를 기록하며 삼성을 상대로 한 타자들 가운데 가장 높은 성적을 올렸다.


▶ 현대 유니콘스

유한준의 뛰어난 외야 수비로 이대호는 최소 2루타를 2개 정도 도둑맞았다. 하지만 이 수비도 이대호의 괴력을 막지는 못했다. 이대호는 현대와의 경기에서 .414/.500/.828을 쳤다. OPS는 무려 1.328이나 된다. 현대 투수들은 이대호의 장타력을 감당해 낼 수 없었다는 얘기다.

현대 관점에서 더욱 심각한 건 이대호 다음에 나오는 타자가 호세였다는 점이다. 호세 역시 .348/.438/.565로 1이 넘는 OPS(1.003)을 기록하며 현대 투수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이대호를 거른다고 해서 결코 만만한 상대가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  한화 이글스

지난 2000년 박경완은 한화를 상대로 한 개막전에서 4연타석 홈런을 때려낸 적이 있다. 그리고 올해 역시 박경완은 한화에 강했다. OPS 1.054는 KIA의 이재주(1.043)과 함께 유이하게 1이 넘어가는 성적이다. 두 선수 모두 현대에 몸담은 적이 있는 포수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특히 박경완의 타율 .390은 분명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수치다.

하지만 물 만난 물고기는 이들만이 아니었다. 팀 도루 저지율 꼴찌가 보여주듯 신경현, 심광호 두 포수 모두 어깨를 가지고는 좋은 칭찬을 받기가 어려운 게 사실. 이종욱(도루 9개), 정근우(9), 박용택(8) 등의 선수들은 이점을 이용해 많은 도루를 기록하기도 했다. 굳이 방망이가 아니더라도 이들 역시 '독수리 킬러'로 불릴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  KIA 타이거즈

올해 KIA는 현대에게 참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당했다. 그래서 아마 KIA 팬이라면 현대 정성훈의 이름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성훈의 기아戰 타율은 .286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이택근(.417)과 전준호(.415)는 4할이 넘는 타율을 기록하며 팀 공격을 주도했다. 게다가 전준호는 이번 시즌 유일한 홈런을 광주 구장에서 때려내기도 했다.

하지만 진짜 주인공은 다시 한번 이대호다. 이 롯데의 4번 타자는 KIA 투수를 상대로 OPS 1.225를 때려내며 현대 투수들만 자신을 두려워했던 게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 뒤를 잇는 선수는 한화의 이범호(OPS 1.011). 준플레이오프에서만 KIA 팬들의 마음을 울렸던 게 아니었다는 방증인 셈이다.


▶  두산 베어스

서울 라이벌이라 그랬던 걸까? 지난 해 두산과의 경기에서는 LG의 이병규가 가장 무서운 타자였고, LG를 상대로 할 때는 김동주가 그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병규는 시즌 초반의 부진, 김동주는 WBC에서 입은 부상 탓으로 정상적인 성적을 내지 못했다.

이병규의 자리를 빼앗은 선수는 다름 아닌 한화의 데이비스. 비록 OPS에서는 한화의 박재상(1.153)이 1위다. 하지만 데이비스는 두산을 상대로 홈런 8개에 21타점을 올렸다. OPS 역시 1.113으로 충분히 칭찬 받을만한 수준이었다. 다른 팀 팬들에게도 그렇겠지만, 데이비스는 확실히 두산 팬들에게 두려운 존재였다.


▶  SK 와이번스

호세와 신승현의 싸움은 2006 시즌을 되돌아 볼 때 빠질 수 없는 장면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SK는 호세가 얼마나 얄미웠을지도 이해가 간다. 호세는 SK를 상대로 홈런 5개에, 18 타점이나 올렸다. 두 부문에서 모두 1위 기록이다. (홈런은 공동) 일부러 그랬다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SK로서는 호세에 대한 견제가 필요했다는 뜻이다.

또 하나 특이한 건, 평균 이상의 성적을 거둔 외국인 타자 셋 - 호세, 데이비스, 서튼 - 모두 SK를 상대로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는 것이다. 데이비스(1.217)와 서튼(1.130) 모두 1이 넘어가는 OPS를 기록했고, 홈런 역시 각각 5개와 4개를 때려냈다. 한편, 양준혁 역시 SK를 상대로 4할이 넘는 타율(.403)을 기록하며 상대 전적 우위의 이유를 보여준다.


▶  롯데 자이언츠

올해 이대호는 타격 3관왕을 차지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이런 이대호가 가장 자주 비교되는 상대는 다름 아닌 한화의 김태균. 하지만 김태균 역시 이대호 앞에서는 호락호락 물러나지 않았다. 1.198의 롯데 상대 OPS가 이를 증명한다. 타율이 무려 .429나 됐다.

이렇게 출루한 김태균을 불러들이는 것 이도형의 몫. 이도형은 롯데를 만나 7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20타점을 곁들였다. 김태균의 17타점을 제치고 롯데를 상대로 가장 많은 타점을 기록한 것이다. 출루율 역시 .373으로 평소 이도형의 모습을 감안하면 뛰어난 성적이다. 롯데를 만나서는 이도형 역시 '공갈포'가 아니었던 셈이다.


▶ LG 트윈스

롯데는 시즌 중반 마이로우를 퇴출시키고 존 갈을 대체용병으로 데려왔다. 비록 11경기밖에 출전하지 않았지만, 마이로우는 LG를 상대로 OPS 1.314를 기록하며 특급 용병의 모습을 보였다. 퇴출 사유가 됐던 타율 역시 LG를 만나서는 .303이나 됐다. 몇 경기 출전 못하고도 홈런 5개를 때려낸 것 역시 칭찬해줄 만한 대목. LG를 상대로 가장 많은 홈런을 때려낸 선수가 바로 마이로우였던 것이다.

흥미로운 건 지난 해 롯데에서 뛰었던 외국인 선수 라이온 역시 LG를 상대로는 강한 면모를 보였다는 사실이다. 롯데 타자들의 이런 전통(?)은 팀을 옮긴 최준석에게도 그대로 적용됐다. 최준석의 LG 상대 OPS는 1.058, 모든 경기가 투수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잠실에서 벌어진다는 점을 감안하자면 칭찬해주지 않을 수 없는 기록이다. 소위 '잠실대첩'이라 불린 지난 해 5월 26일 경기에서 롯데가 대역전승을 이뤄낼 수 있던 원동력 역시 최준석이었다.


스포츠의 세계에 영원한 천적이란 없다. 영원한 천적으로 남는 길은 은퇴뿐이다. 그렇게 선동열 삼성 감독은 영원한 롯데의 천적으로 남았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를 제외하자면, 위에 열거된 타자들이 내년 시즌에도 계속 뛸 확률은 100% 수렴한다. 결국 복수의 시간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영원히 '로나쌩 클럽'을 탈퇴할 것 같지 않던 삼성의 전병호는 이번 시즌 너무도 호된 탈퇴식을 치러야 했다. 천적을 향한 응징의 의지는 내년 시즌에도 분명 그라운드를 가득 채울 것이 틀림없다. 과연 몇 명이나 내년에도 이 명단의 주인공을 차지할 수 있을까? 이를 지켜보는 것도 야구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를 선사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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