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 본부. 모스크바=타스

러시아가 결국 내년에 열리는 2020 도쿄(東京) 올림픽 때 자국 이름과 국기(國旗)와 국가(國歌)를 사용할 수 없게 됐습니다.

 

2022 베이징(北京) 올림픽과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러시아도핑방지위원회(RUSADA)의 샘플 조작 혐의를 인정해 러시아가 앞으로 2년간 '주요' 국제 대회에 국가 자격으로 참가하는 걸 제한하기로 17일(현지시간) 결정했습니다.

 

이 기간 러시아는 주요 국제 대회를 개최할 수 있는 권리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도핑 검사용 샘플. 모스크바=타스

이에 앞서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자체 조사를 거쳐 러시아가 양성 반응이 나온 도핑 테스트 결과를 숨기는 등 도핑 샘플을 조작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이 조사 결과를 토대로 러시아에게 4년간 주요 국제대회 출전 금지라는 징계를 내렸습니다.

 

이 결정에 대해 RUSADA는 "기술적인 문제가 있던 건 사실이지만 의도적인 조작은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CAS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 결과 러시아는 징계 기간을 절반으로 줄이는 효과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WADA 징계 이후 마이크 앞에 선 유리 가누스 RUSADA 대표. 모스크바=타스

러시아가 각종 주요 대회에 '국가 자격으로 참가하지 못한다'고 해서 러시아 대표 선수가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길이 아예 막히는 건 아닙니다.

 

러시아는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때도 도핑 테스트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2017년 12월 6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회원 자격 정지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때도 징계 대상은 선수 개개인이 아니라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였기 때문에 도핑으로부터 자유로운 선수는 '개인 자격'으로 2018 평창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대신 국기나 국가를 쓸 수 없없기 때문에 이들은 '러시아에서 온 올림픽 선수(OAR)'라는 이름을 썼습니다.

 

오륜기를 앞세우고 평창 올림픽 개회식에 입장하는 러시아에서 온 올림픽 선수단. 평창=로이터 뉴스1

이런 일이 가능한 건 올림픽 경기는 원래 국가 간 경쟁이 아니라 개인 또는 팀 간 경쟁이기 때문입니다.

잠깐 당시에 썼떤 기사 '[황규인의 잡학사전]러시아는 평창 출전 No..러시아 선수는 Yes, 이유?'에서 인용하면:

 

많은 사람이 흔히 착각하는 것과 달리 올림픽 경기는 개인 또는 팀 간 경쟁이지 국가 간 경쟁이 아닙니다(The Olympic Games are competitions between athletes in individual or team events and not between countries)

 

IOC 올림픽 헌장 6조 1항에 분명히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아래 사진 참조).

네, 그런데 우리가 올림픽에 참가하는 개인 또는 팀을 흔히 '국가대표'라 부르는 건 이 조항에 나온 것처럼 각 국가 올림픽 위원회(NOC·National Olympic Committee)에 자국 국적 선수 가운데 올림픽에 누구를 내보낼지 선택할 권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한국올림픽위원회가 2009년 대한체육회와 완전히 통합해 현재 대한체육회가 NOC 기능을 맡고 있습니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NOC가 바로 당연히 ROC입니다.

 

그런데 IOC에서 ROC에 자격 정지 처분을 내렸으니 러시아 국적 선수 중에는 누가 평창 올림픽에 나가야 할지 결정할 수 있는 단체가 일시적으로 사라진 셈이 됩니다.

 

그래서 IOC에서 러시아 선수를 올림픽에 '초청'하는 형식을 취하겠다는 겁니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닙니다.

 

IOC는 쿠웨이트 정부가 쿠웨이트 올림픽 위원회 선거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2015년 이 나라 올림픽 위원회에 자격 정지 처분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쿠웨이트 사격 대표 페하이드 알디하니(51)는 개인 선수 자격으로 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해 남자 더블트랩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올림픽 여섯 번째 금메달을 노리는 스브텔라나 로마시나. 모스크바=타스

그런 이유로 내년 도쿄 올림픽 때도 러시아 대표 선수는 또 OAR라는 팀 이름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이번에는 ROC를 쓸 수도 있습니다. 이번 징계 대상은 ROC가 아니라 RUSADA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어떤 쪽을 선택할지는 모르지만 러시아라는 이름을 쓸 수 없다는 건 확실합니다.

 

그러니 도쿄 올림픽 때 러시아 대표팀을 낯선 이름으로 부르고 있더라도 놀라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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