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통산 715호 홈런을 날리고 있는 행크 에런. 동아일보DB

33년 3개월 30일 동안 메이저리그(MLB) 통산 최다 홈런 1위 자리를 지켰던 헨리 '행크' 에런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에런이 21년간 몸담았던 애틀랜타는 "에런이 잠을 자던 중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고 22일(이하 현지시간) 발표했습니다. 향년 87세.

 

에런은 MLB에서 23년간 뛰면서 통산 755홈런을 남겼습니다.

 

이는 배리 본즈*(57)가 756번째 홈런을 친 2007년 8월 7일까지 역대 최다 통산 홈런 기록이었습니다.

 

문제는 이후 본즈가 경기력 향상 물질(PED·Performance Enhancing Drugs)을 사용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밝혀졌다는 것.

 

이 때문에 여전히 에런을 MLB 역대 최고 홈런왕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에런 이런까지 MLB 최다 홈런 기록 보유자는 조지 허먼 '베이브' 루스(1985~1948)였습니다. 

 

MLB에 '홈런 바람'을 불러일으킨 루스는 22년간 타구 714개를 외야 담장 바깥으로 날려버린 뒤 유니폼을 벗었습니다.

 

에런은 데뷔 후 스무 번째 시즌이었던 1973년을 통산 713홈런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신시내티 방문 경기로 열린 1974년 4월 4일 개막전에서 홈런을 추가하면서 루스와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에런이 루스 기록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각종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는 건 MLB 팬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야기.

 

에런은 결국 안방 개막전이었던 4월 8일 경기에서 루스를 넘어서게 됩니다.

 

통산 715호 홈런을 날리고 있는 행크 에런. 메이저리그 유튜브 캡처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와 맞붙은 이날 경기에서 에런이 715번째 홈런을 날린 건 4회말 두 번째 타석이었습니다.

 

무사 주자 1루 상황에 타석에 들어선 에런은 다저스 선발 알 다우닝(80)이 두 번째 공으로 던진 슬라이더를 받아쳐 왼쪽 담장을 넘겼습니다.

 

일부 야구 기자로부터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평가를 들을 만큼 조용하고 차분한 플레이를 선보였던 에런은 이 역사적인 홈런을 치고도 그저 묵묵히 베이스를 돌았습니다.

 

대신 관중 두 명이 그라운드에 난입해 에런의 신기록 달성을 대신(?) 축하해줬습니다.

 

이들은 그저 흥에 취한 팬이었지만 살해 협박을 받고 있던 에런 가족은 이들이 그라운드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고 식겁했다는 후문입니다.

 

커리어 마지막으로 40홈런을 날린 1973년 행크 에런. AP

루스는 1927년 60홈런을 기록한 것을 비롯해 1920년(54개), 1921년(59개), 1928년(54개) 등 총 네 차례에 걸쳐 50홈런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반면 에런은 MLB 생활 23년 동안 한 번도 50개가 넘는 홈런을 날린 적이 없습니다.

 

한 시즌 최다 홈런은 1971년 기록한 47개지만 정작 이 시즌에는 윌리 스타젤(1940~2001·당시 피츠버그)보다 하나가 적어 홈런왕 타이틀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1957년(44개), 1963년(44개), 1966년(44개), 1967년(39개) 등 네 차례에 걸쳐 리그 최다 홈런 1위 기록을 남겼습니다.

 

1957년에는 홈런은 물론 타점에서도 1위(132타점) 기록을 남기면서 MLB 생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리그 최우수선수(MVP)로 뽑혔습니다.

 

에런은 이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1957년 월드시리즈 4차전에서 4회말 3점 홈런을 치고 있는 행크 에런. AP

현재 애틀랜타에 둥지를 들고 있는 브레이브스는 당시만 해도 밀워키 카운티 스타디움을 안방으로 썼습니다.

 

그리고 1953년 밀워키로 연고지를 옮기기 전까지는 보스턴이 원래 이 팀 안방 도시였습니다.

 

(브레이브스가 애틀랜타로 옮긴 건 1966년입니다.)

 

고교 졸업 후 니그로 아메리칸리그 소속 인디애나폴리스에서 뛰던 에런은 1952년 6월 10일 이 팀과 계약하면서 MLB를 꿈꾸게 됐습니다.

 

이후 마이너리그에서 때를 기다리던 에런은 1954년 시즌을 앞두고 팀에서 야심차게 영입한 바비 톰슨(1923~2010)이 발목을 다치면서 그해 4월 13일 MLB 데뷔전을 치릅니다.

 

참고로 데뷔 첫 타석 기록은 6-4-3 병살타였습니다.

 

날쌘돌이 시절 행크 에런. AP

키 183㎝에 현역 시절 몸무게가 81㎏ 안팎이었던 에런은 전형적인 거포 타입은 아니었습니다.

 

에런은 호타준족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20홈런-20도루 클럽에 다섯 번 가입했고 1963년에는 44홈런-31홈런으로 MLB 역사상 세 번째 30-30 클럽 회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에런은 또 통산 3771안타를 남기고 유니폼을 벗었습니다.

 

은퇴 시점 기준으로 타이 콥(1886~1961) 한 명만이 통산 안타 4189개로 최다 안타 리스트에서 에런보다 위에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애런은 또 1958년부터 3년 연속으로 골드글러브를 받을 만큼 수비도 빼어난 선수였습니다.

 

1951~1973년 MLB 무대를 호령한 윌리 메이스(90)와 활동 기간이 겹치는 바람에 다재다능함이 덜 드러났을 뿐입니다.

 

1982년 명예의 전당 회원 자격을 얻은 행크 에런과 그를 축하하는 보위 쿤 당시 커미셔너. AP

715호 홈런을 날린 뒤로도 1974 시즌이 끝날 때까지 홈런 18개를 추가한 에런은 이듬해 21년간 몸담았던 브레이브스를 떠나 밀워키로 돌아갑니다.

 

밀워키에서 2년간 홈런 22개를 추가하면서 통산 홈런을 755개까지 늘린 그는 1976년을 마지막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합니다.

 

그리고 처음 명예의 전당 회원 자격을 얻은 1982년 입회 자격 투표에서 전체 415표 중 406표(97.8%)를 받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이보다 득표율이 높았던 건 1936년 투표 때 98.2%를 기록한 콥 한 명뿐이었습니다. 심지어 루스도 95.1%로 에런보다 득표율이 낮았습니다.

 

MLB 최다 홈런왕 타이틀을 빼앗겼지만 에런은 여전히 타점(2297타점)과 총루타(6856루타), 장타 숫자(1477개)에서 통산 1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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