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근성마저 없다면 거인유니폼 입을 자격도 없다."

'탱크' 박정태의 사진이 들어간 현수막에 적혀 있는 문구다. 롯데 경기가 열리는 날이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 현수막이 내걸린다. '근성(根性)'은 물론 모든 스포츠 선수에게 요구되는 게 사실이지만, 롯데 팬들에게 있어 근성의 의미는 남다르다. 롯데의 역사가 곧 근성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동원은 '84 한국 시리즈에서 6경기 등판해 4승을 따내는 거짓말 같은 체력을 자랑했다. 물론 환영식 도중 병원에 후송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최다 완투에 빛나는 '고독한 황태자' 윤학길 역시 롯데 출신이다. 더러 사구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던 공필성도 빼놓을 수 없는 근성의 사나이. 물론, 박정태 또한 박정태=근성이라는 공식이 성립할 정도로 대단한 투지를 자랑했다.

그래서 '99년 임재철의 등장에 롯데 팬들은 환호했다. 비록 23경기밖에 출전하지 않았지만, 임재철은 타율 .322/출루율 .403/장타율 .508을 때려내며 자신의 가능성을 롯데 팬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그러나 임채철이 기록만으로 팬들에게 어필했던 것은 아니었다. 팬들이 임재철에 푹 빠지게 된 건 다름 아닌 그의 눈빛이었다. 롯데 팬들이 애타게 찾던 '근성 있는 눈빛'.

1999년 삼성과 롯데의 플레이오프 7차전은 롯데의 '근성'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경기였다. 호세의 홈런과 관중 소동, 롯데 선수들의 퇴장 등으로 대구 야구장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그리고 '박정태 현수막' 상단에 적힌 멘트가 등장한다. "오늘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

결국 9회초 1사에 임수혁의 2점 홈런이 터지며 롯데는 경기를 원점으로 이끌었다. 그리고는 기어이 연장 11회에 결승점을 뽑아내며 한국 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팀을 한국 시리즈에 진출시킨 득점의 주인공이 바로 임재철이었다. 그의 앞날엔 영광만이 가득할 것 같았다.

하지만 임재철은 '근성'은 딱 거기까지밖에 보여주지 못했다. '99 플레이오프 이후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한 임재철은 '02시즌부터 삼성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한화('03)를 거쳐 지난 시즌까지 두산에서 뛰었다. 롯데 근성의 후계자에서 저니맨(journey man)으로 신세가 전락하고 만 것이다. 그나마 현재는 군문제로 늦깎이 입대를 한 상태다.


"10배 더 든 셈이지, 뭐."

1997년 롯데는 부산 출신 에이스 문동환을 아마 현대 피닉스에서 돌려받는 조건으로 전준호를 현대 유니콘스에 내줬다. 돈 4억이 문제였다. 누가 뭐래도 전준호는 당시 최고의 리드오프 타자였다. 이후 김응국이 1번으로 나서는 등 내부에서 대안을 찾았지만, 결국 롯데는 외부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선택된 주인공이 바로 정수근. 2004년 FA로 풀린 정수근은 계약 총액은 40억 6천만원에 롯데와 계약했다. 공교롭게도 정수근의 보상 선수는 왕년의 그 문동환이었다. 한 인터뷰에서 전준호가 밝힌 그대로, 10배가 더 든 선수 수급이었던 셈이다.


ⓒ 사진 - 롯데 자이언츠

하지만 정수근 역시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기엔 역부족이었다. 타율은 3할을 넘기지 못했고, 도루 숫자만큼이나 도루자도 많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차곡차곡 쌓여 가는 주루사 역시 문제였다. 부상 또한 빼놓지 않고 정수근을 뒤흔들었다. '40억 짜리 대주자'라는 비아냥도 들려왔고, 정수근이 롯데에 와서 한 일이라곤 사직 구장의 잔디를 바꾼 것밖에 없다는 소리도 들렸다.

게다가 경기장 밖에서 들려오는 소식 역시 유쾌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팬들은 물론 코칭 스탭의 불신도 커져만 갔다. 결정타가 터진 건 지난 7월 5일 현대戰. 서튼의 평범한 플라이 타구를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떨어뜨리고 만 것이다. 누가 봐도 집중력 부족이 확연히 느껴지는 플레이였다. 실책 직후 정수근은 곧바로 이승화와 교체됐다.

강병철 감독은 다음날 곧바로 정수근의 2군행을 지시했다. 그리고 7월이 다 지나서야 정수근은 겨우 다시 1군에 복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롯데 외야에서 정수근의 자리는 그리 눈에 띄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팬들은 새로운 스타의 등장에 열광하고 있었다. 너무도 박정태의 눈빛을 닮은 황성용이 그 주인공이었다.


"다시는 2군에 내려가지 않겠다."

황성용은 2001년 부산고 재학시절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한 바 있다. 하지만 대졸 외야수가 신인 드래프트에서 높은 순번을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2005년 드래프트 2차 6라운드. 이 정도라면 거의 '꼴찌'로 선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황성용은 고향 팀에 뽑혔다는 사실에 뛸 듯이 기뻐했다. 그러나 구멍이 많은 롯데 외야에도 그의 자리는 없었다. 4월 23일, 기막힌 기습 번트로 커리어 첫 안타를 터뜨렸지만 기회가 그리 자주 찾아오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2군에서조차 황성용은 타율 .207밖에 때려내지 못하는 타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1경기에서 베이스를 12번이나 훔친 건 확실히 매력적인 기록이었다. 결국 강병철 감독은 정수근의 대안으로 황성용을 선택했다. 1군 선수단을 향하는 기차 안, 황성용은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다시는 2군에 내려가지 않겠다."

그날 이후 황성용의 활약은 별명 그대로 '폭주기관차'급이었다. 7월 한 달 간 황성용의 타율은 무려 .386, OPS 역시 .915에 달하는 굉장한 수치였다. 비단 방망이뿐 아니었다. 빠른 발을 이용한 넓은 수비 범위와 이치로!를 연상케 하는 강한 레이저빔 송구. 그리고 무엇보다 근성.


ⓒ 사진 - 롯데 자이언츠

사실 황성용의 8월 타율은 .239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362의 출루율은 여전히 준수한 수준. 그만큼 볼넷을 많이 얻었다는 뜻이다. 상대 에이스와 풀카운트 승부를 벌인 끝에 당당히 1루로 걸어 나가는 모습. 어느덧 황성용의 트레이드마크가 돼 버린 풍경이었다. 몸에 맞는 공 역시 8월에만 세 개. 공필성의 기운이 느껴진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결국 황성용은 .253/.344/.291의 성적으로 2006 시즌을 마감했다. 분명 7월달에 보여준 가능성에 비해서는 많이 아쉬운 기록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황성용에 관한 재미있는 기록 하나는 왜 기록에 비해 황성용에 대한 롯데 팬들의 기대치가 큰가를 말해준다.

황성용이 1루에 있을 때 롯데 타자들은 .438의 타율을 기록했다. OPS 역시 1.146으로 어마어마한 수치. 한마디로 황성용이야 말로 롯데 공격의 기폭제였다는 뜻이다. 황성용의 기록은 타율과 OPS 모두 45 타수 이상을 기록한 주자 가운데 리그에서 가장 좋은 성적이다.


<표> 1루 주자시 팀 타자 성적

물론 황성용은 주로 2번으로 나섰고, 그 뒤를 호세-이대호 라인이 떠받쳤다. 따라서 황성용의 기록에는 이들의 성적이 반영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둘을 제외하고도 모두 17명의 타자가 1루에 황성용을 둔 상태에서 타석에 들어섰다. 1루 주자가 황성용이 아닐 때 이 타자들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타율 .250에 OPS .686이 전부다.


"가을에도 야구하자."


가을 야구에 맺힌 롯데 팬의 한(恨)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금송아지‘ 레퍼토리 역시 롯데 팬들에게는 익숙한 이야기다. 하지만 마지막 가을 야구의 마침표를 찍었던 선수는 이미 유니폼을 세 개나 갈아입었고, '금송아지'의 유일한 증거 역시 오히려 팬들의 한숨만 늘려온 게 사실이다.

그래서 롯데 팬들에게 황성용의 존재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금송아지가 전혀 필요 없는 연고지 출신. 거기에 롯데 유니폼의 필요조건 '근성'을 갖춘 차세대 리드오프감. 어쩌면 팬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에 가장 필요로 하는 유형의 스타가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야구 실력만 보자면, 황성용에게는 아직도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 선구안은 뛰어난 편이지만 방망이 솜씨엔 물음표가 붙는다. 발은 빠르지만 도루 센스 역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여러모로 황성용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라는 뜻이다.

결국 황성용 스스로가 실력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제 2의 임재철이 되느냐, 아니면 박정태가 되느냐는 순전히 본인에게 달려 있다. 바라건대, 언젠가 세월이 흘러 '황성용의 눈빛'을 닮은 루키가 등장했다는 기사를 꼭 볼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아마 그날엔 가을 야구에 맺힌 롯데 팬들의 한(恨) 역시 많이 수그려져 있을 것이다.


댓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