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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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해냈다. '마린보이' 박태환이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세계수영남자선수권 대회 남자 400m 부분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획득하며, 세계 최정상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우리 선수가 수영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메달을 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쾌거는 이뿐만 아니다. 박태환의 결승전 성적은 3분 44초 30. 지난 8월 범태평양 대회에서 세운 자신의 아시아기록(3분 45초 72)보다도 1초 42나 빠른 기록이다. 박태환의 지속적인 성장이 기대된다는 점에서 기록 경신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김연아도 해냈다. 비록 엉덩방아 두 번에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던 게 사실. 하지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김연아 이전 국내 선수의 최고 기록이 2001년 박빛나의 21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괄목한 만한 성과라 할 수 있다.

비록 3위라고는 하지만 총점 186.14점은 개인 최고 점수다. 뿐만 아니라 김연아의 선전 덕분에 이제 우리나라는 세계선수권 대회에 3장의 출전권을 배당받을 수 있게 됐다. 김연아 개인에게는 물론 우리나라 피겨스케이팅에도 확실한 선물인 셈이다.

본격적인 경제 개발이 시작된 60년대 이래 우리 사회는 정부 주도의 계획과 통제를 당연시 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왔다. 스포츠계의 사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태릉선수촌 규모의 종합 국가대표 합숙 훈련 시설은 舊공산권 국가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덕분에 우리는 자랑스러운 스포츠 강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급속한 산업화가 불러일으킨 여러 사회 문제처럼, 우리 스포츠 역시 어두운 그늘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기본 산업 인프라 미비는 그대로 우리 기초 종목의 사정을 말해주고, 특정 지역과 산업에 편중된 경제 구조 역시 소위 '효자 종목', '메달 밭'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

국내 남자 100m 최고 기록은 서말구의 10초 34. 만 24세에 이 기록을 세운 서말구는 2007년 현재 쉰 살을 넘겼지만(만 52세), 1억이 걸린 최고 기록 경신 포상금은 그 주인공을 여전히 애타게 찾고 있다. 사실 10.3초대의 세계 기록 역시 이미 1930년대의 유물이다. 세계 수준과 견줘 무려 70년가량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런 기초 종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1992년 알베르빌 동계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김윤만. 하지만 최근 인터뷰에서 김윤만은 "빙상에는 쇼트트랙만 있는 것이 아니다."며 스피드스케이팅에 대한 무관심에 서운해 하고 있음을 토로했다. 지난 10일 이강석의 500m 세계 신기록 경신에도 국내 언론에서는 단신으로 짤막하게 처리했던 게 사실.

그런 점에서 박태환과 김연아의 스타성이 참으로 반갑다. 수영은 육상과 함께 종합 대회에서 가장 많은 메달이 내걸린 종목이다. 하지만 '조오련' 이후 이렇다 할 스타 선수가 탄생되지 못했다. 박태환은 뛰어난 기량은 물론, 시원시원한 외모까지 스타성을 두루 갖춰 지금보다 더 많은 인기가 기대된다. 뿐만 아니라 인기가수 아이비와 사촌지간이라는 점 역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한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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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역시 마찬가지다. 은반 위의 요정, 이 표현은 비유로서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다. 가늘고 긴 팔 다리, 그리고 깜찍한 외모까지. 김연아는 얼핏 판타지 소설에서나 등장할 법한 엘프족(族)을 떠올리게 만든다. 트리플액셀이 세 바퀴인지 세 바퀴 반인지는 몰라도, 은반 위를 유유히 미끄러지는 김연아의 모습은 '한국 선두, 한국 선두 전이경~'을 외치던 때와는 또 다른 신선함을 안기는 게 사실이다.

언론은 물론 관련 체육 협회 역시 이들의 스타 만들기를 망설여서는 안 된다. 물론 이미 이들은 스타다. 하지만 광고 출연 정도에서 스타 만들기가 그쳐서는 곤란하다. 제 2의 김연아가, 제 2의 박태환이 탄생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한 때다. 단지 수영계, 피겨스케이팅계뿐 아니라 체육계 전반이 각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분야를 막론하고 '기본'만큼 중요한 게 없다. 그리고 획일적이고 단편적인 것보다 다양하고 이채로운 편이 훨씬 풍요로운 발전을 이룩하기 마련이다. 물론 지금껏 우리를 스포츠 강국으로 만들어준 레슬링, 양궁, 유도, 쇼트트랙 등이 잘못됐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제는 좀더 희망찬 미래를 지향하는 마음으로, 기초와 다양성에 관해 생각할 때가 됐다는 얘기다.

핸드볼 국가 대표팀을 소재로 한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참 반가운 일이다. 영화가 흥행에 성공을 거둬 핸드볼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좀더 이끌어 내주길 부탁하고 싶다. 그리고 누구보다 박태환, 김연아가 앞으로도 세계 정상을 향한 도전을 계속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이들이야 말로, 우리 스포츠의 기본과 다양성을 상징하는 확실한 표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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