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제25회 일본 전국고등학교여자경식야구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한 고베고료학원 선수단. 아사히(朝日)신문 제공

효고(兵庫)현 대표 고베고료가구엔(神戶弘陵學園)고가 초대 '여자 고시엔(甲子園)' 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고베고료는 23일 열린 제25회 일본 젠코쿠고토갓코조시고시키야큐센슈켄다이카이(全國高等學校女子硬式野球選手權大會) 결승전에서 고치주오(高知中央)고를 4-0으로 물리쳤습니다.

 

올해가 제25회 대회니까 이 '전국고등학교여자경식야구선수권대회'는 1997년에 시작했을 터.

 

그런데 '초대'라는 표현을 쓴 건 이 대회 결승전을 올해 처음으로 한신(阪神) 고시엔 구장에서 치렀기 때문입니다.

 

경기가 끝나고 모인 양 팀 선수단. 아사히(朝日)신문 제공 

한신 고시엔 구장은 설명이 따로 필요 없는 일본 고교 야구 성지(聖地).

 

이 구장에서 진행하는 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를 아예 그냥 '고시엔'이라고 부를 정도입니다.

 

여자 고교 야구 인기도 올라가면서 전일본여자야구연맹, 일본고교야구연맹, 한신전기철도 등은 올해 여고 대회 결승전도 이 구장에서 개최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25년 대회 역사상 처음으로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일본 전국고교여자경식야구대회 결승전. 아사히(朝日)신문 제공

지난해까지 이 대회는 효고현 단바(丹波)시에 있는 스포츠 피어 이치지마(一島)에서 결승전을 치렀습니다.

 

올해도 지난달 24일 개막 때부터 1일 준결승 때까지는 이 구장을 사용했습니다.

 

25년 동안 여느 여름에 그렇지 않았겠냐마는 '고시엔'이라는 세 글자만으로도 올해 '야구 소녀들' 마음이 더욱 크게 부풀어 올랐습니다.

 

고베고료학원 우승 소식을 전한 아사히(朝日)신문 호외

아, '경식(硬式) 야구'는 프로야구 경기에서 쓰는 그 공으로 경기를 한다는 뜻입니다.

 

일본에서는 고무 등을 소재로 만든 말랑한 공으로 경기를 치르는 연식(軟式) 야구가 따로 있기에 이를 구분하는 것.

 

단, 이날 경기는 9이닝제가 아니라 7이닝제로 진행했습니다.

 

고베고료는 이날 2회말에 넉 점을 뽑은 뒤 이 점수를 끝까지 잘 지켜 결국 승리를 따냈습니다.

 

고베고료학원 주장 고뱌야시 메이. 아사히(朝日)신문 제공

팀은 초대 챔피언에 올랐지만 고베고료 주장 고바야시 메이(小林芽生·3학년)는 이 대회 출전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대신 공격 때는 3루 주루 코치로, 수비 때는 수비 코치로 변신해 팀을 진두지휘했습니다.

 

고바야시 주장이 원래 코치로만 활약했던 건 아닙니다.

 

봄에 열린 센바츠(選拔) 때만 해도 팀 주전 2루수를 맡았던 고바야시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대회가 끝나고 오른쪽 무릎 전방 십자인대 파열 진단을 받으면서 전력에서 이탈하고 말았습니다.

 

시상식이 끝난 뒤 기념촬영하는 고베고료학원 선수단. 한신전기철도 제공

결승전을 고시엔에서 열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고베고료 선수단은 "우리는 캡틴을 고시엔으로 데리고 간다"면서 똘똘 뭉쳤습니다.

 

배팅볼 투수로 변신해 팀 연습을 돕던 고바야시 주장은 "우리 목표는 고시엔이 아니라 니혼이치(日本一)"라면서 더욱 분발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기어이 우승을 차지한 뒤 고베고료 선수단은 "고바야시 주장을 니혼이치 캡틴으로 만들었다"면서 기뻐했습니다.

 

고바야시는 이날 경기 후 "야구는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다. 다 같이 힘을 합치면 즐겁다. 오늘 모두들 고마웠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몸을 날리는 수비를 선보이고 있는 우지하라 마나카. 아사히(朝日)신문 제공

그 순간 고치주오 주장 우지하라 마나카(氏原まなか·3학년)도 팀 슬로건에 어울리지 않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고치주오 팀 슬로건은 '웃으면서 마무리할 수 있는 유일한 팀'(笑って終われる唯一のチーム).

 

우지하라는 "고베고료에서 '니혼이치 주장'이라고 말하는 걸 듣는 순간 '아, 나도 저런 말이 듣고 싶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뒤 "고시엔에서 경기를 할 수 있던 건 고교 생활 3년 동안 모든 고생을 잊을 만큼 좋았다"면서 웃었습니다. 

 

고베고료학원 우승 소식을 전한 아사히(朝日)신문 호외. 타자가 우치하라

이번 대회에서 팀 4번 타자를 맡은 우지하라는 사실 '청소년기 근간대뇌전증(Juvenile myoclonic epilepsy)'이라는 난치병을 앓고 있습니다.

 

우지하라는 "발작으로 쓰러질 때를 대비해 팀 동료들이 긴급 연락망도 만들어줬다. 이 동료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야구를 계속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감사를 표했습니다.

 

우지하라는 "나 같은 병이 있는 어린 친구들에게 꿈을 주고 싶다"면서 고교 졸업 후 간호사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왜 우리는 장소 그 자체가 꿈이 되는 공간을 만들지 못할까요?

 

왜 우리는 이렇게 마음껏 울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지 못할까요?

 

이 시간과 공간에 우리가 다 찾을 수 없는 얼마나 많은 많은 이야기가 녹아 있을까요?

 

2020 도쿄 올림픽이 끝나고 썼던 것처럼 이제 우리도 아이들에게 태권도장 그 이상을 선물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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