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일본 프로야구 한신 지휘봉을 다시 잡게 된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왼쪽)과 현역 시절 야노 히키이로 현 감독. 아사히(朝日) 신문 제공

오카다 아키노부(岡田彰布·65) 전 감독이 다시 일본 프로야구 한신(阪神) 지휘봉을 잡습니다.

 

아사히(朝日) 신문 등 일본 언론은 한신이 사퇴 의사를 밝힌 야노 아키히로(矢野曜大·54) 감독 후임으로 오카다 전 감독을 내정했다고 27일 보도했습니다.

 

야노 감독은 스프링캠프 시작 전날이었던 1월 31일 '시즌이 끝나면 자리를 내놓겠다'고 발표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면서 히라타 가쓰오(平田勝男·63) 2군 감독이 1군으로 승격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결국 오카다 감독을 재등판시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시즌 종료 후 사퇴 의사를 밝힌 야노 아키히로 한신 감독. 아사히(朝日) 신문 제공

한신은 올 시즌 개막 후 9연패에 빠지면서 센트럴리그(CL) 최장 기록을 세웠지만 전반기를 46승 2무 46패(승률 .500)로 마치면서 후반기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나 26일까지 후반기 경기에서 20승 1무 25패(승률 .444)에 그치면서 66승 3무 71패(승률 .482)로 CL 5위에 머물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제 남은 세 경기에서 모두 이긴다고 해도 승률 .500 이상은 불가능한 상황.

 

한신이 승률 5할 미만으로 시즌을 마치는 건 가네모토 도모아키(金本知憲·한국명 김지헌·54) 감독이 마지막으로 지휘봉을 잡고 있던 2018년 이후 4년 만입니다.

 

한신 입단식 당시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오른쪽). 아사히(朝日) 신문 제공

오카다 감독은 성덕 중에 성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난 그는 힘깨나 쓰는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고시엔(甲子園) 구장에서 한신 선수들과 캐치볼을 주고 받으면서 야구 선수 꿈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와세다대(早稻大) 3학년이던 1979년에는 당시 최다 기록이던 6개 구단으로부터 1차 지명을 받았습니다.

 

추첨 결과 한신이 우선 협상권을 따내면서 오카다는 결국 한신 유니폼을 입고 프로 무대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현역 시절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 아사히(朝日) 신문 제공

그리고 데뷔 시즌이던 1980년 타율 .290, 18홈런, 54타점을 기록하면서 CL 신인상을 받았습니다.

 

또 1985년에는 3번 랜디 바스(68), 4번 가케후 마사유키(掛布雅之·67) 다음에 자리한 5번 타자로 팀이 니혼이치(日本一)를 이루는 데 일조했습니다.

 

1935년 창단한 한신이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한 건 오카다 감독이 주장이었던 1985년 딱 한 번뿐입니다.

 

오카다 감독은 결국 1993년까지 한신에서 1554경기에 나와 .277/.351/.466에 245홈런, 822타점을 남긴 뒤 방출 통보를 받았습니다.

 

 

1994년 시즌 개막 전 오릭스에 입단한 오카다 감독은 "앞으로도 계속 한신 팬으로 남을 것"이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듬해 오릭스에서 10년 만에 우승을 경험한 그는 1996년 3월 26일 시범경기를 마지막으로 유니폼을 벗었습니다.

 

당시 시범경기 상대가 바로 친정팀 한신이었습니다.

 

오카다 감독은 양 팀 선수단으로부터 헹가래를 받으면서 16년에 걸친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마감했습니다.

 

 

오카다 감독이 다시 헹가래 주인공이 된 건 2005년이었습니다.

 

전년도부터 한신 지휘봉을 잡은 그는 2005년 팀을 CL 정규시즌 1위로 이끌었습니다.

 

한신은 이후 2014년에도 일본시리즈에 올랐지만 당시는 정규시즌 순위는 2위였습니다.

 

그러니까 한신이 정규시즌을 1위로 마친 건 2005년이 마지막입니다.

 

2005년 센트럴리그 정규시즌 우승 후 헹가래를 받고 있는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 니시노미야=지지(時事)

오카타 감독은 2루수였던 이마오카 마코토(今岡誠·48)를 3루수로 바꿔 타격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 결과 이마오카는 일본 프로야구 역대 3위에 해당하는 147타점을 올리면서 팀 우승에 앞장섰습니다.

 

또 마운드 쪽에서는 제프 윌리엄스(50), 후지카와 규지(藤川球兒·42), 구보타 도모유키(久保田智之·41)로 'JFK 트리오'를 구성해 경기 후반을 틀어 막는 데 성공했습니다.

 

한신은 그렇게 정규시즌에 87승 54패를 기록하고 일본시리즈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전설로 남은 2005년 일본시리즈 결과

한국 팬들에게는 지바(千葉) 롯데에서 뛰던 이승엽(46)이 1, 2, 4차전에서 홈런을 남긴 걸로 유명한 이해 일본시리즈에서 한신은 4경기 합계 점수 4-33을 기록하면서 4전 전패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한신이 이렇게 점수를 많이 내준 데는 'JFK 트리오는 앞선 상황에서만 등판시킨다'는 오카다 감독 X고집이 제일 큰 이유였습니다.

 

오카다 감독은 이후로도 팀을 2위 - 3위 - 2위로 이끌었지만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늘 주니치(中日)에게 막히면서 2008 시즌을 마치고 감독 자리를 내놓고 말았습니다.

 

이후 오릭스로 건너가 2010년부터 감독 겸 단장으로 활동하다가 2012년 시즌 종료를 앞두고 경질 당했습니다.

 

첫 취임 당시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 니시노미야=지지(時事)

그리고 감독석을 떠난 지 11년, 한신 지휘봉을 내려 놓은 지 15년 만에 다시 한신 감독으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이전까지 이 팀 감독 35명 중 8명이 두 차례 이상 한신 감독을 맡았기 때문에 오카다 감독이 돌아오는 게 아주 놀랄 일은 아닙니다.

 

'두 차례 이상'인 건 요시다 요시오(吉田義男·89) 감독은 △1975~1977년 △1985~1987년 △1997, 1998년 등 세 차례에 걸쳐 한신을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요시다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오카다 감독도 두 번째 임기 때는 니혼이치를 경험했으면 좋겠지만, 아마, 늘 그랬듯, 안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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