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이만큼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빅 리그 무대를 밟은 루키가 몇이나 될까? 오죽하면 그를 부르는 호칭이 펠릭스 "킹(king)" 에르난데스였다. 겨우 루키 투수의 데뷔전을 보기 위해 MLB 팬들이 TV 앞에 몰릴 정도였으니, 그에게 쏟아진 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만 할 정도다.


비록 패전의 멍에를 쓰기는 했지만, 에르난데스는 데뷔전에서 5이닝 2실점(1자책)에 삼진 4개를 솎아내며 자신에게 쏟아진 기대치가 거짓이 아님을 증명했다. 이후로도 그는 상승세를 거듭했다. "빅 유닛" 랜디 존슨과의 맞대결 카드로 에르난데스를 내놓을 정도였다.

성급한 컬럼리스트들은 그를 '84 시즌 메츠에서 19세의 나이에 17승을 거둔 드와이트 구든과 비교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아니, 그를 뛰어 넘는 최고의 영건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의 빅 리그 생활 첫 두 달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 지나갔다.

그리고 '06 시즌이 시작됐다. 이번엔 작년과 분위기가 좀 달랐다. 내리 3연패를 경험한 것이다. 네 번째 경기부터는 징검다리로 승리와 패전을 반복했다. 5월 31일 경기부터 4연승을 기록했지만, 다시 징검다리. 결국 전반기 최종 기록은 8승 8패, 방어율 4.89였다. 지난해 너무 많은 이닝(84.1)을 던져 이번 시즌 신인왕 자격을 놓친 걸 아쉬워하던 팬들의 목소리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무엇이 우리의 "왕"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지난해에 비해 삼진 비율은 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수준급이다. 볼넷 차이도 거의 없다. 다만 피홈런이 급격하게 늘었다. 1.5%에서 3.1%로의 변화는 두 배가 넘는 기록이다. 세이프코 필드를 홈으로 쓴다는 점에서 이는 확실히 에르난데스 본인이 개선해 나가야 할 점이다. 홈런으로 인한 실점은 수비수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비지원 역시 DER .742에서 .666으로 10%이상 나빠졌다. 자기 자신이 허용하는 라인드라이브 타구의 비율이 14.0%에서 18.9%로 4.9%p 늘어난 결과다. 이 역시 수비진의 책임으로 돌리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게다가 플라이타구 허용 비율 역시 18.9%에서 25.2%로 크게 늘었는데 이 가운데 17.9%가 담장 밖으로 넘어가니 이 역시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내용이다. 지난해에는 이 비율이 11.9%밖에 되지 않았다.

말하자면, 운이 나쁜 결과였다기보다 본인 자체의 투구 매커니즘에 내재돼 있던 문제가 노출되면서 타자들에게 두들겨 맞고 있다고 보는 편이 옳다는 얘기다. 엄청난 싱킹성 직구에 커브, 체인지업 그리고 구단에서 일부러 투구를 자제할 정도로 민감하게 신경 쓰고 있는 슬라이더까지 갖춘 투수가 어떻게 이렇게 얻어맞기 시작한 걸까? 혹시 투구폼 자체에 어떤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한번 펠릭스 에르난데스의 투구 폼을 마크 프라이어와 비교해 보자. 비교 대상으로 마크 프라이어를 선정한 이유는 그의 투구폼이 빅 리그 투수 가운데서 가장 교과서적이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아래 사진은 투구 과정에서 두 투수의 양 팔 벌린 모양새(소위 Flex-T 자세)를 비교한 것이다.


물론 이 자세에 어떤 정석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프라이어는 두 팔과 지면이 이루고 있는 각이 거의 평행에 가깝다. 반면 에르난데스는 비스듬히 기운 상태다. 미리 선을 그어 둔 모자챙의 각 역시 마찬가지다. 프라이어는 모자챙이 지면과 평행을 이루고 있지만, 에르난데스는 위로 들려 있다. 머리가 심하게 한쪽으로 기울어 있고, 이것이 두 팔의 각도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아래 사진을 보면 더더욱 확실히 알아볼 수 있다.


왼쪽 사진을 보면, 투구 동작이 이뤄지는 동안 몸의 중심선으로부터 머리가 크게 뒤로 젖혀진 상태라는 것이 확인된다. 뿐만 아니라 1루측을 향해서도 크게 쏠려 있는 모습이다. 홈플레이트를 기준으로 할 때 2시 방향으로 머리가 크게 뒤틀려 있는 것이다. 물론 마크 프라이어의 경우엔 지면과도 평면, 홈플레이트와도 거의 일직선을 유지하고 있다. 에르난데스의 투구 매커니즘은 확실히 교과서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머리는 우리 몸 가운데서 가장 무거운 신체 부위다. 따라서 머리가 한쪽으로 쏠리면 이동 중인 우리 몸의 무게 중심 역시 한쪽으로 쏠리게 된다. 이는 상하체간에서 벌어지는 힘의 전달을 방해하는 한 원인이 된다. 투구하는 팔에 집중되어야 할 에너지가 몸이 틀어짐으로써 방출돼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자세가 펠릭스 에르난데스에게는 가장 익숙한 폼이기 때문에 지금 현재는 가장 편하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이를 수정해 주지 않으면 부상의 위험이 뒤따를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물론 투구폼에는 딱 정해진 유일한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투수가 던지면서 가장 편하고, 또 자신이 가진 최고의 구질을 원하는 곳에 정확히 던져넣을 수 있다면 그 자세가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폼인 것이다. 하지만 당장 편하다고 해서 잘못된 버릇을 계속 유지한다면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것 역시 틀림없는 일이다.

실제로 머리가 빨리 넘어가기 때문에 에르난데스는 좌타자를 상대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좌타자를 상대로 할 때 바깥쪽으로 던지는 투구의 제구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홈플레이트 3루측의 높은 코스로 날아가는 투구는 좌/우 타자 가릴 것 없이 많다. 이 역시 머리가 너무 일찍 기울어져 버리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로 보인다.

그래도 그는 벌써 8승이나 거뒀고, 탈삼진이나 볼넷 허용 모두 굉장히 안정적이다. 현재까지의 xFIP 역시 방어율보다 1.37 낮은 3.52다. 따라서 후반기에는 표면적으로도 좀더 좋은 성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현재만 이런 기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이제 '86년生으로 엄청나게 어리다. 발전 가능성으로 따지자면 어느 못지않다는 얘기다. 현재엔 완벽하지 않지만, 아마 완벽에 가까워질 확률이라면 그 누구 못잖게 높은 펠릭스 에르난데스다.


그는 겨우 빅 리그 두 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데뷔와 곧바로 "킹"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과연 야구팬들은 에르난데스에게 그 이상의 칭호를 허락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에르난데스가 스스로의 힘으로 증명해 보여야 모두가 알게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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