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스케이팅 금지 기술 대명사였던 '백플립'이 마침내 빛을 보게 됐습니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은 14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총회에서 2024~2025시즌부터는 백플립 같은 공중제비 기술을 구사해도 점수를 깎지 않기로 했습니다.
2023~2024시즌까지는 공중에서 뒤로 한 바퀴를 도는 백플립을 구사하면 총점에서 2점을 깎았습니다.
ISU는 "더 이상 이 기술을 금지해야 하는 논리적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최근 들어 백플립을 가장 열심히 구사한 선수로는 아당 샤오잉파(23·프랑스)를 꼽을 수 있습니다.
샤오잉파는 1월 ISU 유럽피겨선수권대회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마지막 점프로 백플립을 선택했습니다.
객가인(客家人) 피가 흘러 중국에서는 샤오촨원(蕭傳文)이라고 부르는 그는 "감점을 받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피겨스케이팅 발전을 위해 이 기술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샤오잉파는 백플립으로 감점을 당하고도 총점 276.17점으로 이 대회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샤오잉파는 동메달을 딴 올해 3월 세계선수권대회 때도 또 한 번 이 금지된 기술을 선보였습니다.
백플립을 금지하고 있었다는 건 샤오잉파에 앞서 누군가 실전에서 이 기술을 시도한 적이 있다는 뜻.
보통은 테리 쿠비츠카(68·미국)를 실전에서 이 기술을 처음 성공시킨 선수로 꼽습니다.
쿠비츠카는 1976 인스부르크 겨울 올림픽 때 백플립을 성공시켰습니다.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기록이 정확하게 남아 있지 않은) 시점에 ISU는 백플립을 금지 기술 목록에 포함했습니다.
기록이 정확하게 남아 있지 않아 백플립을 금지한 이유도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대신 표면적으로는 부상 방지 차원에서 실제로는 꼴 보기 싫어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백인 중장년 남성이 즐비한 ISU 어르신들이 보시기에 백플립이 단정해 보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ISU는 1892년 설립 때부터 2022년 김재열(56) 현 회장이 당선되기까지 130년 동안 모든 수장이 백인 남성이었던 조직입니다.
거의 모든 국제 스포츠 연맹이 출범 초기에는 비슷한 길을 걸었지만 ISU는 변화가 늦어도 너무 늦었습니다.
특히 '귀족적 스포츠'라는 이미지가 있는 피겨는 그중에서도 정도가 더 심했습니다.
피겨 여자 싱글 심사 기준이 '백인 관점에서 본 전형적인 여성미'에 가깝다는 게 대표 사례입니다.
이에 가장 불만이 많았던 건 선수로는 수리야 보날리(51·프랑스)를 꼽을 수 있습니다.
여자 선수로는 처음으로 공식 경기에서 4회전 점프를 구사했던 보날리는 1993~1995년 3회 연속으로 세계선수권 은메달에 그쳤습니다.
지금도 피겨에서 보기 드문 흑인 선수였던 보날리는 "내 피부 색깔이 달랐더라면 메달 색깔도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보날리는 원래 체조를 했기 때문에 다른 피겨 선수들보다 몸에 큰 근육도 더 많았습니다.
7년 전에 이 블로그에 썼던 것처럼 보날리는 1998 나가노(長野) 대회를 통해 올림픽 금메달 획득 마지막 도전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아킬레스힘줄 부상 때문에 정상적인 경기력을 유지할 수 없던 상황.
쇼트프로그램을 6위로 마쳐 금메달은커녕 메달도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보날리는 프리스케이팅 마지막 점프로 원래 예정했던 트리플 러츠 대신 백플립을 선택했습니다.
사실 보날리는 이전에도 공식 연습 때나 갈라쇼 등에서는 백플립을 어려움 없이 구사하곤 했습니다.
실전에서는 감점이 기다리고 있어 이를 구사하지 못하다가 모든 욕심을 내려놓으면서 마음 가는 대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
보날리는 "'이번에는 심사위원들이 마음에 들어 할까?'라는 의구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도 피겨 선수들은 백플립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게 되는 데는 26년이 더 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