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스포츠 2.0> 최민규 기자는 '야구 기사는 야구 담론의 일부'라는 표현을 썼다. 나 역시 우리 야구팬들 사이에서 보다 생산적인 담론이 오갈수록 우리 야구 문화가 더 풍성해지고 다양해진다고 믿는다. 사회라는 곳은 결국 각자의 이야기로 구성된 공간일 테니 말이다.

그럼 점에서 아이스탯(www.istat.co.kr) 개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인의 주관과 느낌에만 의존하던 우리 야구 문화에 '기록'이라는 객관적인 도구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도 공식 기록을 관리한다. 하지만 말 그대로 '공식' 기록이어서 팬들이 원하는 눈높이의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었던 게 사실. 이런 팬들 갈증을 해소시켜준 청량제가 바로 아이스탯이다.

팬들 목마름이 얼마나 심했는지는 가입자 수에서 알 수 있다. 첫날 200명이 넘는 회원이 가입한 데 이어 다음날에는 500명이 넘는 유저가 새로 생겼다. 기대치 못한 폭발적 반응에 서버는 다운 됐고, 3일 째인 19일 오후 늦게 다시 개통하자마자 100여명의 가입 러시가 이어졌다. 사업장이었다면 '대박'이라는 낱말을 떠올릴 법한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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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탯은 지난 2년간 야구 기록 관리에 매달려 온 김범수(36) 씨가 중심. 건축 기사로 일하고 있는 김 씨는 매일 평균 3시간을 투자해 야구 기록을 정리한다. 직업과 취미를 병행하는 게 힘들고 고된 일이지만 야구에 미쳐 힘든 길을 선택했다고.

그렇게 쌓인 자료를 데이터베이스(DB)화 시킨 건 유일상(31) 씨의 몫. 1년 여의 시간을 투자해 오프라인으로만 확인 가능하던 자료를 웹사이트에서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하게 만들었다. KBO에서 발행한 <기록대백과>, <프로야구연감>에도 각자 다르게 나온 기록이 있는데 자신이 본 것만 가지고 기록이 틀렸다고 나무랄 때 제일 속상하다는 게 유 씨 전언. 개인들이 노력해 만든 사이트인 만큼 비난보다 격려가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만으로 사이트가 탄생할 수는 없었다. 정작 사이트 개설을 현실로 만들어준 이는 선정구(36) 씨였다. 웹사이트를 기획하고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것이 그의 역할. 선 씨에게 있어 가장 큰 아쉬움은 이런 사이트를 야구팬 개인의 노력으로 만들어야 했던 것이라고 한다. 국내에서 오히려 미국의 야구 기록 찾기가 더 쉬운 현실이 아이스탯의 문을 여는 결정적인 계기였던 것이다.

사실 야구팬들은 계속해서 KBO에 기록 공개를 요구했고 하일성 사무총장 역시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약속이 나오고 1년이 지나도록 전자 서적(e북) 형태로 펴 낸 책 몇 권이 전부다. 이런 책은 야구팬들의 눈높이가 얼마나 높아졌는지, 그리고 관심이 얼마나 다양해졌는지 KBO에서 여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정성이 부족했다는 소리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야구팬들이 직접 나서 이런 사이트를 만들어야 했던 것일까. 경제적 이득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 회원들의 작은 정성, 그것도 사이트 유지비로 쓰기에도 빡빡한 기부금이 이들이 사이트를 운영해 벌 수 있는 수입의 전부다. 야구를 향한 열정, 이것이 없었다면 이 사이트는 결코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참다 못한 야구팬들이 직접 나서 기록을 정리하고, DB를 구축하고,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사실 이는 마땅히 KBO에서 했어야 할 일이다. 우여곡절 끝에 사이트를 열었지만 김범수 씨는 차라리 빨리 사이트가 없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KBO에서 똑같은 내용을 담은 홈페이지를 열어서 저희 사이트 방문객이 끊기면 좋겠어요. 그래야 저도 좀더 생업에 전념할 수 있을 테니까요. 기록 정리하는 파일 있죠. 그거 열어보면 어쩔 땐 저도 어지러워서 그냥 내버려둘 때가 많아요. 하지만 응원해 주시는 야구팬 여러분이 계시니 계속해서 정리해 나갈 계획입니다.

제 꿈이 무엇인 줄 아세요? 인터넷에서 제 닉네임이 '별보며한잔'입니다. 그냥 야구장이 잘 보이는 곳이 닉네임을 딴 술집을 하나 내고 싶어요. 거기서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야구 이야기를 하면서 그렇게 야구에 취해 늙어가고 싶어요.

'사장님 사이트 때문에 야구를 보는 또 다른 재미를 알게 됐습니다.' 이렇게 말해주는 손님이 한 둘 쯤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이 사이트를 운영하는 이유는 딱 그것뿐입니다."

야구에 대한 따뜻한 열정이 느껴지는 저 말을 듣고,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개인이 만들어도 이 정도라면, KBO에서 만들면 얼마나 대단한 사이트가 나올지 절로 기대가 됐으니 말이다. 아이스탯, 정말 굉장한 사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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