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NFL

충돌, 풋볼의 매력



덕분에 결국 무릎에 무리가 찾아왔지만, 몇 년 전만해도 저녁 시간이면 늘 복장을 갖추고 농구 코트로 향할 때가 있었다. 공 하나 들고 다른 사람 몸과 부딪히는 느낌, 마침내 침투에 성공했을 때의 쾌감. 그게 내가 농구를 사랑하는 이유였다.

그렇다고 해서 몸싸움을 마냥 사랑했던 건 아니었다. 상대가 먼저 지나친 몸싸움을 걸어오면 사실 나는 피하는 쪽에 가까웠다. 소위 '비빈다'고 표현하는 플레이 자체는 그리 유쾌하지가 못했다. 나는 플레이의 일부로서 '신체의 충돌'을 사랑했던 것이지 '레슬링'을 원했던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레슬링은 곧잘 농구를 난장판으로 만든다. 승부가 부담 갈 정도로 타이트해질 때도 적지 않았다. 농구가 주는 상쾌함이 주먹다짐으로 변하는 것 역시 한 순간. 단지 저녁에 '놀고 싶던' 나는 피하고 싶은 패턴이었다.

하지만 정당한 몸싸움은 다르다. 내가 수비하고 있던 사람을 부지런히 쫓다가 견고히 스크린을 서고 있는 상대와 부딪히는 그 느낌. 그럴 때면 "나이스 스크린"이라는 말이 절로 튀어 나온다. 상대의 파워 있는 돌파에 정면으로 맞설 때도 마찬가지다. 그럴 때 충돌은 짜증이 아닌 아드레날린을 부른다.

내가 미식축구를 좋아하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레슬링이 아닌 '충돌'의 몸싸움을 한다는 점. TV를 통해 본 충돌만으로도 내 피를 끓게 만든다는 점. 몸싸움을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다음엔 이겨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는 바로 그 점 말이다.


사실 풋볼은 무식하거나 폭력적이지 않다. 풋볼은 오히려 '절제'의 미덕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도전'에서 승자가 되기 위한 '헌신'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주는 세련된 종목이다. '자기희생'이 무엇이며 '협력'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도 우리에게 잊지 않고 일러준다.

어쩌면 모든 스포츠가 그렇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사실이 그럴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경기 내내 공을 단 한 번도 만지지 않는 선수들이 즐비한 구기 종목은 그리 흔치 않다. 게다가 그들이야 말로 '충돌'을 통해 팀을 지켜내지만, 크게 주목받지도 못한다.


어쩌면 그것이야 말로 가장 풋볼답다. 남을 부숴야만 하지만 부순 상대에게 경의를 표해야 하는 충돌. 자기 일을 제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해도 결국 스포트라이트는 남의 것이라는 사실. 그렇다고 해도 자신이 무너져서는 안 되는 거친 절박함.

물론 야구도 인생이다. 축구 역시 그렇다. 하지만 각기 보여주는 인생의 단면에는 차이가 난다. 풋볼은 진짜 '다이나믹'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충돌'의 가치를 알려준다. 그래서 나는 풋볼을 사랑한다.


+
쓰고 보니, 럭비도 그렇군 ㅡㅡ;


댓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