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우리는 곧잘 1회를 놓치고는 한다. 평일 경기 시작 시간이었던 18시 30분은 직장인들이 퇴근 시각에 맞춰 야구장을 찾기 버거웠던 게 사실이다. 또한 관중이 많은 주말에는 표를 구입하는 데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에 또 1회를 놓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1회초는 여유 있게 야구장에 도착해 애국가를 함께 부른 관중이 아니면 구경하기 힘든 이닝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우리는 야구장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밝히면서도 경기 시작을 곧잘 까먹고는 한다. 도대체 1회초엔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총 2145타석에서 타율 .240/ 출루율 .330/ 장타율 .351이 기록됐다. 볼넷은 215개가 나왔고 삼진은 358개였다. 홈런은 40개, 원정팀은 1회초에 총 242점을 올렸다. 이는 리그 평균에 비해 떨어지는 기록이다. 사실 리그 평균 비율 넘버는 타율 .263/ 출루율 .342/ 장타율 .392였다. 그러니까 그만큼 홈팀 선발 투수들이 손님맞이에 야박했다는 뜻이다. 야구 격언 가운데 1회를 잘 넘겨야 한다는 충고를 '05 시즌 선발 투수들은 잘 지켰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거꾸로 홈 팬 시각에서 어쩌면 1회초는 안심하고 건너뛰어도 좋은 이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반면, 1회말에 홈 타자들은 타율 .291/ 출루율 .378/ 장타율 .438을 기록하며 리그 평균을 웃도는 수치를 기록했다. 게다가 원정팀에 비해 60%나 더 많은 홈런(64)을 때려내기도 했다. 그러니까 1회말은 놓치면 곤란하다.

그럼 어느 팀이 1회초에 강했을까? 비율 넘버상 가장 강한 팀은 SK였다. .276/ .388/ .346을 기록하며 GPA .261로 리그 평균에 비해 25포인트 높은 수치를 올렸다. 그 덕에 35점이라는 준수한 득점을 홈 팀으로부터 빼앗아 올 수 있었다. 하지만 득점이라는 측면에서만 보자면 모두 39점을 기록한 한화가 선두에 있다. 한화의 공격적인 타선은 1회초라고 다르지 않았다. 1회초에 기록한 장타율이 .423에 달한다. 홈런은 7개. 2루타도 무려 16개나 때려냈다. 비록 8개의 홈런을 기록한 삼성이 상대 투수를 가장 공포에 떨게 만들었을지는 몰라도, 홈 팀 팬들의 한숨을 자아낸 팀이라면 역시 한화라고 보는 편이 옳겠다. 원래 깡패들이란 나와바리 확장 없이는 꾸준한 명성을 얻기 어려운 법이다. 가장 무서운 손님은 한화였다.

거꾸로 1회초에 상대를 가장 텃세가 심했던 팀은 그럼 어딜까? 역시나 '짠물야구'로 유명한 인천의 주인장 SK 와이번스였다. 피안타율은 .203밖에 되지 않았고, 출루 허용률 역시 겨우 .292로 볼넷을 남발하는 일도 없었다. 피장타율 또한 .293을 기록하면서, 많은 장타를 얻어맞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점에 있어서는 22점으로 비록 삼성의 21점에 비해 한 점이 더 많기는 했지만 비율 넘버에 있어선 .235/ .314/ .330를 기록하며 GPA로 볼 때 SK에 비해 20포인트 가까이 높았다. 거꾸로 현대는 .280/ .358/ .458을 허용하며 1회초부터 지나치게 손님들을 반겼다. 실점은 SK의 거의 두 배 수준인 42점에 달하고 홈런도 9개나 얻어맞았다. 최종 성적이 말해주듯, 좋은 성적을 위해서는 손님에게 좀 야박한 첫인상을 남기는 게 확실히 도움이 되는 모양이다.

결론적으로 SK는 1회초엔 상대를 적절하게 공략하며 상대로부터 비교적 많은 점수를 얻은 채 시작했고, 거꾸로 홈에서는 철저하게 상대하게 '짠돌이' 인상을 풍기며 실점을 최소화 했다. 따라서 1회초의 최강자는 SK 와이번스였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정말 못된 손님이고, 불친절한 주인이었다.

이어서 선수들을 한번 알아보자. 선수 개개인으로 볼 때는 누가 가장 무서운 손님이었고, 또 누가 가장 야박한 주인장이었을까? 먼저 30타석 이상 들어선 타자들을 대상으로 정말 주인장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던 손님들을 알아보자면, 롯데의 신명철 선수를 언급하고 지나지 않을 수가 없다. 신명철의 1회초 타격 라인은 .457/ .537/ .714였다. GPA는 .420으로 본즈급이다. 이건 진담인데, 원정 경기에서 신명철을 1번으로 써보는 건 어떨까? 정수근은 .256/ .383/ .282로 .243의 GPA밖에는 기록하지 못했다. 거꾸로 홈에서 신명철은 1회말에 .121/ .171/ .152, GPA .115밖에 치지 못했다. 정수근은 .214/ .389/ .286, GPA .246으로 출루율에서 게임이 안 되니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또한 한화의 고동진 역시 주목할 만하다. 원정에서 1회초에 .348/ .500/ .609, GPA .377의 초특급 기록을 낸 반면, 홈에서는 1회말에 .296/ .367/ .370, GPA .258에 그쳤다. 그밖에도 1회초에만 5개의 홈런을 때려낸 심정수(GPA .389) 역시 무서운 타자였고, 김재현(.358) · 박재홍(.341) 등 SK의 중심 타자들 역시 상위권에 랭크되면서 왜 SK가 1회초에 강했는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조동화 역시 13개의 희생번트를 1회초에 성공시키며 두 선수 가운데서 훌륭한 가교 역할을 소화해 냈다.

(이병규가 없다고 의아해 하실 두산 팬 여러분, 왜 없겠습니까? 두산이 홈이었던 양 팀간의 경기에서 9타석 6타수 3안타 볼넷도 하나, 출루율 .667로 깔끔하게 이닝을 시작하셨군요. LG가 홈일 때요? 9타석 8타수 4안타 몸에 맞는 볼 하나, 출루율 .556. 사실 이런 선수를 물어 와야 되는 거죠 -_-)

이어서 야박한 주인장들. 현대의 황두성 선수는 1회초에 11타자를 상대하는 동안 볼넷 2개만을 허용했을 뿐 안타는 단 하나도 내주지 않았다. 그 결과 허용한 GPA가 .082밖에 안 된다. 하지만 겨우 3이닝뿐이다. 대상을 10이닝 이상으로 늘리면 한화의 두 투수 김해님과 문동환이 눈에 들어온다. GPA로 따졌을 때 각각 .141, .161밖에 허용하지 않았다. 이어서 롯데의 염종석(.176), SK의 채병룡(.193), 삼성의 바르가스(.196), 두산의 김명제(.196) 등이 .200 미만의 GPA만을 허용하며 손님들을 야박하게 맞이했다. SK 선수가 적다고 의아해 하실 분들을 위해 밝히자면 고효준(.129), 윤길현(.186) 등이 .200 미만이었지만 10이닝, 즉 10경기를 넘기지 못했고 신승현(.209)은 아깝게 .200을 초과했다. 그래서 그랬던 것뿐이다.

그럼 인심 좋은 주인은? 인심은 역시 전라도 인심이었다. 김진우 선수는 멀리 광주까지 내려온 손님들을 맞이하여 13이닝 동안 .306/ .471/ .490, GPA .344를 허용 손님들을 몹시 반겼다. 볼넷은 16개나 내주며 좁은 버스와 불편한 잠자리에 굳어졌을지 모를 손님들의 다리 근육을 풀어줬고, 홈런 역시 2개를 맞아주며 기지개를 할 수 있게 해줬다. 하지만 홈런에 있어서라면 서울 인심도 뒤지지 않는다. 이승호(LG)와 이혜천은 잠실에서는 홈런을 때려내기 어려울 거라는 손님들의 우려를 씻어주기라도 하듯, 각각 세 개씩의 홈런을 선물하는 인자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자 그럼 이제 위에서 인심이 후하다고 자랑한 현대 투수들을 얘기해 보자. 임선동(.475), 이대환(.394), 김수경(.347), 손승락(.309), 정민태(.305) 등이 .300 이상의 GPA를 허용했다. 물론 임선동과 정민태는 단 한 이닝만을 던졌을 뿐이다. 하지만 이들이 예전에 가지고 있던 야박한 이미지를 생각할 때 얼마나 인자해졌는지를 확인해 보자는 취지에서 집어넣었다. 이대환, 김수경, 손승락은 각각 세 개씩의 홈런까지 선물하며 수원 인심 역시 서울 인심 못지않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게다가 손승락의 경우 11개의 볼넷까지 선물하며 신인으로서 선배 손님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손님은 최대한 친절하고 공손하게 맞이하는 게 예의다. 그런 점에서 멀리서 찾아온 손님께 작은 감사의 선물을 주는 것도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두산 팬 여러분, 네, 이병규는 멀리서 오는 것도 아닙니다. -_-) 그런데 '05 시즌 홈팀 선발 투수들은 대체로 너무 손님들에게 박하게 굴었다. 이래서는 어쩔 수 없이 찾아와야 하는 손님들이 꺼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인터뷰 결과 뛰어나고 편리한 시설만 아니라면 문학 구장엔 가고 싶지 않다던 선수들이 꽤 있었다. (올스타전 불참 사건은 그런 연유였다. - 네 위험한 발언이죠 -_-;)

그런데도 각 팀 팬들은 여전히 자기 팀 선수들이 손님들에게 불친절하기를 원한다. 못된 손님이 되고, 또 야박한 주인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야구팬들은 참 못 됐다. 하지만 그래서 야구는 재미있다. 못된 손님이 공손한 손님이 되고, 또 야박한 주인이 갑자기 너무 인자한 주인이 될 때가 있으니까 말이다. 늘 그 순간을 함께하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 경기 시각을 좀 늦춰져 우리 팀은 어떤 손님, 주인인지 직접 확인해 보는 기회가 더 늘어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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