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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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뉴욕 양키스가 데릭 지터의 팀이라면 그 이전 양키스는 돈 매팅리의 팀이었습니다. 매팅리는 1985년부터 10년 동안 1990년을 제외하고 매해 아메리칸리그 1루수 부문 골드글러브를 차지할 정도로 수비력이 빼어났습니다. 야구 전문가들은 여전히 매팅리보다 3-6-3 더블 플레이가 나은 선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이 때문이었을까요? 1957년 이후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2, 3루수로 모두 출전한 경험이 있는 왼손잡이 선수는 매팅리뿐입니다.

1957년 이후 왼손잡이 MLB 3루수는 4명뿐

지난 글에서는 메이저리그에 등장했던 '왼손잡이 2루수'를 다뤘습니다. 박스스코어 기록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1957년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왼손잡이 2루수는 6경기에 등장했습니다.

3루수는 어떨까요? 왼손잡이 3루수가 등장한 경기는 19경기로 2루수보다 많습니다.

 선수  날짜  팀  소화 포지션
 마이크 스콰이어스  1983-08-23  시카고 화이트삭스  3B
 1984-04-08  PH-3B
 1984-04-22  1B-3B-RP
 1984-04-27  PH-3B
 1984-05-02  3B(스타팅)-1B
 1984-05-12  PH-3B
 1984-05-20  3B(스타팅)-1B
 1984-05-27  PH-3B
 1984-06-02  PH-3B
 1984-06-12  3B
 1984-06-16  PH-3B
 1984-06-29  3B(스타팅)-1B
 1984-07-01  PH-3B
 1984-07-15  3B(스타팅)
 테리 프랑코나  1985-10-06  몬트리올 엑스포스  3B
 돈 매팅리  1986-08-29  뉴욕 양키스  1B-3B
 1986-08-30  3B(스타팅)-1B
 1986-08-31  3B(스타팅)
 마리오 발데스  1997-07-02  시카고 화이트삭스  PH-3B

전체 19경기 중 14경기(73.7%)를 마이크 스콰이어스가 책임진 게 흥미롭습니다. 스콰이어스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주로 1루수 활약했던 선수입니다. 1981년에는 아메리칸리그 1루수 부문 골드글러브도 수상했던 선수죠.


3루수는 물론 투수, 포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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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8월 23일 경기는 1957년 이후 첫 번째 왼손잡이 3루수가 등장한 경기였지만 내용 자체는 대단할 게 없습니다. 팀이 크게 지고 있었고 선수들을 바꾸다 보니 빈자리가 없어서 왼손잡이가 3루수로 들어갔던 것뿐이죠. 스콰이어스 쪽으로 날아간 공도 하나 없었습니다.

왼손잡이 3루수가 1957년 이후 처음으로 '진짜 수비'를 책임진 건 이듬해 4월 8일이었습니다. 7회말 대타로 경기에 나섰던 스콰이어스는 2-7로 뒤진 8회초 수비 때 3루수로 들어갑니다. "바뀐 수비수에게 공이 간다"는 속설을 증명하듯 선두 타자는 3루 땅볼을 때렸고 스콰이어스는 무난하게 공을 처리하면서 첫 번째 보살(Assist)을 기록합니다.

그 뒤로 1984시즌 내내 3루수로 38이닝을 소화하면서 실책을 하나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자살(Putout)은 3개, 보살은 9개였습니다. 당시 화이트삭스를 맡고 있던 토니 라루사 감독도 스콰이어스 수비가 마음에 들었는지 5월 2, 20일, 6월 29일, 7월 15일 경기에서는 아예 선발 3루수로 출전시키기도 했습니다.

스콰이어스가 라루사 감독에게 믿음을 굳힌 건 4월 22일 경기였는지 모릅니다. 선발 1루수 출장했던 스콰이어스는 8회말 수비 때 3루수로 옮겨 땅볼 하나를 깔끔하게 처리합니다. 반면 투수 브릿 번즈는 8회에만 5점을 내준 상태였죠. 라루사 감독은 번즈를 빼고 스콰이어스를 마운드에 올렸습니다. 결과는 중견수 플라이로 이닝 종료.

스콰이어스는 사실 1980년부터 유틸리티(Utility) 플레이어로서 가능성을 보였습니다. 이 해 포수 마스크를 쓰고 2게임에서 2이닝을 소화했던 거죠. 1900년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2게임 이상 포수로 뛴 왼손잡이 선수는 9명뿐입니다.


전년도 1루 골드글러버니까 3루도 되겠지?

테리 프랑코나나 마리오 발데스가 3루수로 뛰게 된 건 '경기 상황'에 영향을 받은 겁니다. 선수들 수비 위치를 바꾸다 보니 왼손잡이 3루수가 '실험적'으로 나오게 된 거죠. 돈 매팅리는 선발로 출장했기 때문에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

뉴욕 양키스는 1986년 8월 서부 원정길에 나섰지만 주전 3루수 마이크 파그리아룰로는 팀과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햄스트링 부상으로 전력에서 제외됐기 때문이죠. 팀을 맡아 첫 시즌을 치르던 루 피넬라 감독은 8월 29일 경기 전 타격 연습 때부터 매팅리에게 3루 연습을 주문합니다. 머릿속에 이미 매팅리를 3루수로 쓸 그림을 그려두고 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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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글러브를 빌려 끼우고 5회말 수비 때부터 1루에서 3루로 자리를 옮긴 매팅리는 더블 플레이를 이끌어 낸 것을 포함해 깔끔하게 3루 신고식을 마칩니다. 당시 뉴욕 타임즈는 "Mattingly Plays 3D in Victory"라고 헤드라인을 달았죠. 3차원 플레이를 펼쳤다고 해야 할까요? 피넬라 감독은 이 기사에서 "사람들이 나를 돌아이(nuts)라고 생각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런데 매팅리 말고 내보낼 선수가 있어야죠"하고 인터뷰했습니다.

피넬라 감독은 30일 더블헤더 1차전에는 아예 선발 3루수로 매팅리를 내보냅니다. 31일 경기에서는 아예 3루수로 경기 전체를 소화했습니다. 감독이 정말 작정하고 3루수로 내보냈던 거죠.

매팅리의 3루 출전이 멈춘 건 9월 1일입니다. 매해 9월 1일은 메이저리그 로스터가 25인에서 40인으로 늘어나는 날입니다. 마이너리그에서 레오 에르난데스가 올라와 3루 자리를 맡으면서 매팅리는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왼손잡이 3루수로 출전한 소감은 어땠을까요? 매팅리는 "제가 자원한 일입니다. 시즌 막바지지만 아직도 시즌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매팅리의 분전에도 이 해 양키스는 5게임 차이로 동부지구 우승을 라이벌 보스턴 레드삭스에 내줍니다.

양키스는 4년에 한 번꼴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메이저리그 최다 우승팀이지만 매팅리가 뛴 14년 동안에는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습니다. 매팅리는 'Hit Man'이라는 별명과 달리 3000안타도 달성하지 못했죠. 그래도 그의 등번호 23번이 영구결번되고 여전히 양키스 팬들이 그를 '캡틴'이라고 부르는 건 이런 희생정신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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