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시작 전 퀴즈: 삼성 배영수와 넥센 심수창 중 나이가 더 많은 선수는?

100은 끝이자 시작이다. 도전이고 완성이다. 인류가 10진법을 표준으로 삼은 이상 이 사실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100은 그저 한 과정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어차피 너무 시어서 못 먹어' 하는 신 포도일 뿐이다.

배영수에게 100은 뜻밖의 긴 기다림이었다. 배영수는 선발 로테이션에 처음 들었던 2001년 이후 4년 동안 49승을 거뒀다. 2005년에도 11패나 당했지만 승수 역시 11개였다. 그의 100승 정복을 의심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배영수는 금세 높게 매달린 포도를 손에 넣을 것 같았다.

그러나 2006년 팔꿈치에 탈이 나며 8승에 그쳤다. 이듬해에는 결국 팔꿈치 인대접합(토미 존) 수술을 받았다. 2007년을 통째로 쉬고 2008년 마운드에 올랐을 때 강속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있는 힘껏 던졌는데 (시속) 128㎞밖에 안 나오더라"고 배영수는 회상했다. 2009년에는 단 1승밖에 거두지 못했다.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따르던 다이묘(大名)들이 조선으로 건너 와 임진왜란을 벌이는 동안 일본에서 조용히 자기 차례를 준비하던 인물이 있었다. '기다림의 리더십'으로 유명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다.

이에야스는 원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2인자였다. 도요토미, 도쿠가와, 오다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마쓰라 세이잔(松浦靜山)은 '갑자야화(甲子夜話)'에서 이 셋의 리더십을 아래처럼 비교했다.

누군가 두견새를 보내왔는데, 두견새가 울지를 않았다. 울지 않는 두견새를 두고 세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다: 울지 않는 새는 죽여버리자
-도요토미: 울지 않는 새는 울도록 만들어보자
-도쿠가와: 울지 않는 새는 울 때까지 기다리자

그랬다. 도쿠가와는 신 포도도 제철이 되면 달콤하게 익는다는 걸 알고 기다리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포도는 정말 익었다. 우리에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도쿠가와가 없었다면 일본은 지금 모습과 많이 다를 것이다.


포도가 익는 동안…

배영수는 조금이라도 빨리 빠른 공을 던지고 싶었다. 배영수는 마운드에서 계속 속구를 고집했다. 그는 "속구를 던지면 자꾸 얻어 맞는데 그걸 인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오기로 속구를 던지면 다시 또 어김없이 얻어 맞았다"고 말했다. 변화가 필요했다. 변화구가 필요했다.

배영수는 레퍼토리를 늘리는 데 중점을 뒀다. 이제 속구, 슬라이더 투 피치로는 무리였다. 배영수는 포크볼과 체인지업, 투심패스트볼까지 집중 연마했다. 2010시즌 6승으로 회복세를 보였지만 2011시즌에도 제자리걸음이었다. 2011시즌을 앞두고 "올 시즌 목표는 100승"이라고 말한 게 무색하게 시즌을 마칠 때는 90승이 전부였다.

지난해부터 공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150㎞를 던지지는 못했지만 지난해 속구 평균 구속은 142㎞였다. 배영수는 "볼 끝이 조금 좋아진 정도"라며 담담해 했다. 그는 "수술하고 스피드를 찾으려고 세게 던져봤는데 안 되더라"며 "자연스럽게 현재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스피드가 나오기를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150㎞를 되찾아도) 예전처럼 힘으로 타자를 상대하지는 않겠다. 힘과 기교를 가미해 긴 이닝을 던지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다.

100승을 거둔 26일 경기에서 최고 속구 구속은 145㎞였다. 속구가 좋아진 건 물론 변화구도 날카롭게 빛났다. 배영수는 2005년 이후 7년 만에 10승 투수가 됐다. 경기 후 배영수는 "내가 봐도 인간 승리인 것 같다"며 "스스로 재기할 수 있고, 이길 수 있다고 마인드컨트롤을 하면서 살아 왔다"고 말했다. 이제 배영수도 잘 익은 포도는 참 달다는 걸 안다. 그래서 배영수에게 100은 도전이고 시작이다.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서두르면 안 된다. 무슨 일이든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 굳이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 마음에 욕망이 생기거든 곤궁할 때를 생각하라. 인내는 무사장구(無事長久)의 근본, 분노는 적이라 생각하라. 승리만 알고 패배를 모르면 해가 자기 몸에 미친다. 자신을 탓하되 남을 나무라면 안 된다. 미치지 못하는 것은 지나친 것보다 나은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유훈(遺訓) 중에서

정답: 두 선수 모두 1981년생 동갑내기. 그런데 얼핏 보면 여전히 심수창은 여전히 유망주, 배영수는 이미 베테랑 같은 느낌이 든다. 그게 꼭 틀렸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포도가 익는 동안 거름을 주고, 가위에 기름칠을 해낸 사내라면 그렇게 보인다고 투덜댈 필요는 없는 테니까.


+
프로야구 역대 100승 투수 명단
선수 소속팀 날짜 상대팀 구장 비고
김시진 삼성 1987.10.03 OB 잠실 최소 경기(186)
최동원 삼성 1990.07.12 OB 대구  
선동열 해태 1990.09.02 OB 잠실  
장호연 OB 1993.09.14 롯데 사직  
윤학길 롯데 1994.07.13 쌍방울 전주  
정삼흠 LG 1996.04.21 해태 광주  
이강철 해태 1996.05.18 롯데 사직  
조계현 해태 1996.09.14 OB 광주  
송진우 한화 1997.09.20 현대 인천  
김용수 LG 1998.04.22 쌍방울 잠실  
정민철 한화 1999.06.30 해태 대전 최연소(27세3개월2일)
김상진 삼성 1999.08.16 현대 대구  
이상군 한화 2000.04.30 LG 잠실 최고령(38세 9일)
한용덕 한화 2000.08.23 두산 대전  
정민태 현대 2000.10.09 두산 잠실  
김원형 SK 2005.04.28 KIA 광주  
임창용 삼성 2007.04.08 두산 대구  
김수경 현대 2007.08.02 롯데 수원  
이상목 삼성 2008.08.26 히어로즈 목동  
손민한 롯데 2009.06.26 한화 대전  
이대진 KIA 2009.09.11 한화 대전  
박명환 LG 2010.04.24 한화 잠실  
배영수 삼성 2012.08.26 LG 잠실  



댓글,

더 보기